깡통로봇의 노래

2002년 1월 어느날의 일탈에 대한 기억

영혼기병깡통로봇 2002. 5. 16. 14:39
갑자기 보일러가 또 말썽이다.
올겨울 들어 세번째다.
보일러가 문제가 아니라 방바닥을 가로지르는 배관이 터진것 같다고 한다.
보일러가 터진거면 보일러만 고치면 되지만 어느 부분에서 물이 새기 시작하여 결국 계단홍수를 유발 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지금은 무척 난감 하기만 하다.
온통 방바닥을 뜯어 내어 누수가 시작된 지점을 100년은 간다는 동파이프로 이식을 시키고, 또 시멘트를 편편히 깔아 슬그머니 물을 흘려 보내면 다시 온방안이 온기로 가득 찰 것이다.
살다보면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사람과 사람같지 않은 사람도 만나게 되고...
사람같은 사람을 만나 놓고도 사람같지 않은 짓을 할때가 있다.
그럴때마다 이 수많은 관계의 어느 지점에서 누수가 일어 나기 시작한 것인지 모를때가 있다.
그때마다 동파이프로 땜질을 하고... 그때마다 심장을 관통하는 피를 온몸으로 흘려보내는 것처럼 그들과 나의 심장을 관통하는 온기에 흠뻑 취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번거로운 대공사 대신 차라리 수도꼭지를 잠궈 놓고 집을 나와 버린 그 아침처럼... 아마도 평생동안 심장을 잠궈 놓고 사는 일이 더 많아질 것이다.

서두가 길다.. 여전히..
그래서 슈나우저를 가장한 흑염소 민이를 데리고 기차를 타기로 했다.
내나이 서른을 훨씬 넘기던 어느날, 전혀 관측되지 않았던 혜성 하나가 뚝떨어진것과 같은 강도의 충격으로(내말은.. 전혀 충격적이지 않았다는 뜻이다ㅡ.ㅡ^)
갑자기 나타난 언니의 아이들과 40먹은 오빠라는 사람의 아내와 아이들의 얼굴을 보게 되는 날이다.
민이라도 있으면 서먹한 관계에서 조금은 도망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어쨌든 민이는 기차안에서는 무척 얌전했다. 예상외로...
천안 즈음을 지나는데 퓨리나 사료공장이 눈에 띄었다. 왜 그전엔 몰랐을까...
"민이야... 저기가 니 밥 만드는 공장이야... 어제저녁에 먹은 껌이랑 과자 있지? 그것도 저기서 만든 것이란다. 정말 놀랍지 않니?"
민이는 매우 감격스러워 하는 것 같았다.
하긴... 이순신 장군에 대한 수백권의 책을 읽는 것보다 바다에 가라앉았다는 거북선을 눈앞에서 확인하는 것만큼 가슴벅찬일도 없을 것이다. -_-;;;;

엄마네 집 대문을 여는 순간... 내가 어린 시절 이외에는 한번도 없었던 어린아이들의 소리로 북적대는 기운을 느꼈다.(다시 닫고 싶었다 -_-;;;;;;;;;;)
식구가 합이 열넷...
만약 남은 식구들이 자식들을 데리고 왔다면 합이 얼마가 되는가 하면...20명은 족히 넘겠다..

아주 오랜만에 아이들을 혼내는 소리... 우는 소리.... 싸우는 소리.. 달래는 소리...

아.. 그리고... 용돈을 뜯겼다..
난 이미.. 고모이자.. 이모가 되어 있었다.. 난 허락한적 없는 일이다.

이 대식구를 데리고 바닷가를 가서.. 회를 먹고... 바닷가에서 30분에 만원이나 하는 오토바이(?)를 탔다. 그리고 깜깜한 바닷가에서 폭죽을 터뜨렸다.

아이들이 없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 가족이 모여서 바닷가에서 폭죽을 터뜨릴 거라고 누가 감히 상상이나 했을 것이냐...
아이들이 주는 기적중의 또 한가지를 발견하는 하루 였다.


지금 창밖엔 몇일간의 봄날씨를 보상하는 함박눈이 퐁퐁 내린다.
별로 반갑지 아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