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책:생각

붉은 트럭의 매트리스.., 파란대문집 새장여인숙

영혼기병깡통로봇 2004. 6. 30. 01:47
 

몇일째 날이 스산하다.
비가 오지도 않을 거면서 하늘은 어둡고 해가 나지도 않을 거면서 날은 덥다.
결계에 갖혀 버린 느낌이다.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고 아무런 향도 느껴지지 않으며

눈을 감기엔 너무 밝고 앞을 내다 보기엔 너무나 암담한 낮의 기운으로

사방이 둘러 쌓여 있는 듯 하다.
어쩌면 다시는 청명하고 파란 하늘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내일은 파란 하늘을 볼 수 있지 않을까...
모레쯤엔 누굴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그 다음날엔...

아니다.. 어젯밤... 하루를 접으면서 오늘을 소망하였던가...
머리속에도 희뿌연 결계가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것이 분명하다.

아니다. 간밤에 본 영화때문이다.


김기덕의 영화라니... 왜 하필 이런날 그를 택했을까..

나는 그의 시선이 너무나 힘겹다.

인생의 밑바닥을 굴러 온 삶만이 진정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말하는 듯한 그의 영화가 싫다.


그러나 그의 아득한 우울과 소름끼치도록 실존적인 감성에 대고 쓰레기라  말할수 있을까...

그게 나의 모순이며 사치스러운 딜레마이다.

만약 한기와 선화의 바닷가에서 수채와 같은 사랑을 만난다면...

새장여인숙의 남루한 수돗가에 서있는 진아와 혜미에게서 파릇파릇한 사춘기 소녀의 우정을 만난다면...

그리하여 인생은 무지하게 아름다웠노라고 말한다면 하하하...

그것역시 빌어먹을 영화였을 게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고 해도 빌어먹을 일이지...

빌어먹을 깡패새끼를 만나 낯선 곳에서 깡패새끼를 사랑하고 깡패새끼를 사랑하고도 깡패새끼와 함께 몸을 파는게 전부야...
그게 이쁘고 사랑스러운 스무살 여대생이 어느날 만나게된 인생이다.

그녀를 만났고 한기의 방식으로 사랑했고 그 사랑을 빨간 트럭에 깔린 한장의 매트리스로 다른 남자에게 팔았다.

그리고 또 그렇게 인생이 흘러간다.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한기도.. 선화도 가볍기 짝이 없는 정태도 대학생인 선화의 남자친구 조차도... 사랑이란 단어를 단 한번도 입에 담지 않았다.


깡패새끼가 사랑은 무슨 사랑이야...

그게 영화가 말한 사랑... 전부다.

 

나는 그의 영화에서 내가 진정 원하는게 무엇인지 모르겠다.

무덤처럼 차갑고 습한 사랑을 가슴에 지닌 한기

사신의 옷을 얻어입은 사람마냥

거울뒤에 숨어 있는 그 놈을 만나고

 

증오가 사랑으로 바뀌면 그 사랑이란건

어느날 갑자기 밝은 햇살이 되는게 아니라

증오를 먹어버린  솜뭉치처럼 무겁게 어깨를 짓누른다.

선화..를 만났다.

 

사랑이란 말을 죽도록 되뇌이며 주말마다 놀이동산에서 바이킹을 타는

그런 사랑만 있는게 아니라고 까발리고 싶었던 걸까?

 

어쩌면 운명 같은걸 얘기하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런거... 인생은 원하는대로 흘러가는게 아니라는거..

인생이란건 적절하지 않은 타이밍에 나타난 날카로운 바람한줄기에도

방향을 잃는다는걸 말하고 싶은것일까...

인생은 뜻하지 않은 곳에서 낯선 타인을 만나게 되는것이라고

그게 운명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