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통로봇의 노래

상견례에 관한 추억

영혼기병깡통로봇 2004. 5. 27. 02:01

시간이 많이 지났다.

나이를 먹는 게 좋을때가 있느니라... 시간이 해결해주는게 스무가지쯤 되다보니

그사실을 진즉 알지 못하고 가슴앓이 했던 날들을 땅을 치고 후회하게 해주는것...

 

그... 시간의 힘을 알게 되는 것이다.

뭐.. 아직 다 알진 못한다. 다알거라고 기대도 않는다.

내가 알게 되었노라 얘기해봤자 이미 코웃음 치신분 여럿 되시는거

알고 있다..

 

콧바람이 여기까지 날아오네.. 쌩...

 

 

얼마전에 사무실에서 점심을 먹다가 직원 한명이 이런 말을 했다..

 

"와.. 어제요.. 우리 누나 신랑 될사람네 부모님하고 우리 식구하고 상견례를

했어요.. 분위기 묘하대요... 혹시 상견례 자리 가본적 있어요?

 

하길래...

 

"가봤지.." 했다..

 

"아.. 그래요? 누구 결혼식때요?"

 

"나.."

 

(...)

 

아 예....

 

그랬던가.. 하하하

 

어쨌든...

 

깡통이 그 언제던가...

한 3년쯤 전이었던가... 기억이 다 가물가물 할려고 하네..

 

음 상견례라는 걸 한적이 있다.

 

3년쯤 연애를 하고 허구헌날 티격태격 싸우긴 했지만

여자 나이  서른이 넘어가니 어쩔 수 있나..

근데 이놈은 또 천하태평이네... 여자마음을 조금도 헤아릴줄 모르던

천하의 오갈데 없는 귀염둥이 막내!!! 더도 덜도 아닌 철없는 막내일뿐인

남자를 믿고 3년을 연애하다가 어찌어찌...상견례라는걸 하게 된거였다.

 

일요일 천안 어디쯤의 한정식집을 예약하고

우리 부모님은 대천서 상경을... 나와 남친과 남친네 부모님은 서울서 내려가고..

 

그렇게 천안서 부킹을 시도 했다.

 

아침일찍 나타난 울엄니...

넓디 넓은 천안역광장에서 울엄니를 만나는 순간...

 

내 일평생 가장 서럽고 속상한 순간 베스트 5안에 높은 순위를 차지하는

시츄에이션이다.

 

왕가위감독의 영화를 보면 주변인물과 배경이 아주 빠르게 돌아가고

주인공만 주변에 섞이지 못한채 더디게 서성이는 장면같은 울엄니의 모습..

 

울엄니.. 아침일찍 미장원가서 뽀글뽀글한 짧은머리를 고데기로

힘껏 둥글리고 오래되고 낡은 부츠에 반짝이는 홈드레스를 입고

 

큰언니가 코바늘뜨기로 짜서 맹그러준 쑥색 손가방을 들고 나타나셨다..

 

영락 없이 엄청 꾸민 , 정말 나름대로 열씨미 꾸민 시골 할매여따.

 

나참.. 울엄니가 얼마나 멋쟁이였는데...

멋부리는 거 하나는 남부럽지 않은 사람이었는데 십여년을

거지같이 살다보니 이성과 감성이 무덤파고 들어갔나보다...

 

그순간...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아.. 내가 왜.. 좀더 울엄니 젊었을때..

울엄니 좀더 젊고 이뻐서 당당하셨을때 이런 자리를 못만들고

울엄니 스스로 죄인인양 하고싶은말 못하고 저리 늙고 소심해지셨을때

이런 자리에 모시게 되쓰까... 하는 거였다.

 

그리고.. 생각하니 점 억울하기도 하더만.

울엄니는 그렇게 미장원도 가따왔는데 아들 가진 부모는 뭐가 당당해서

쥐뿔도 없는 인간들이 동네 마실갈때 같은 복장으로

나타났나.. 하는 거여따..

 

게다가 이넘의 어머니는 울엄니가 날짜 잡자고 좀 서두르듯이 말하니까

고개를 옆으로 스윽 돌리면서.. 때되면 하게찌요... 라고 하시네?

 

성격 같아선 확 엎어부리고 나왔을껀데... 그땐 내가 점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못하여서 걍 서운하다.... 싶은 정도만 생각했지 억울하고 분한 생각은

못했다..

 

암턴... 그 즈음의 나는 이래저래 어렵고 힘든일이 많았고..

우린 서로에게 그다지 밝은 등불이 되어주지 못했다.

 

힘든 시기를 참지 못하고 그넘은 간간히 딴여자랑 같이 나랑 단골로 가던

술집에 나타났다는 얘기를 들었고 얼마후 결혼이란걸 햐부렀다.

뭐.. 그리하여 나의 가장 힘들고 가장 누군가가 필요한 시기에

나를 떠난 독한 넘과의 인연때문에 그후로도

쭈우욱 정신적으로 피곤한 날들이었다..

 

헤어지자마자 울아부지가 심장수술을 해따.

아직 부모님한테 말을 안했으니 수술하시기 전에 병원에 한번 들르라는

부탁을 아주 차갑게 거절하고 떠났다. 재수없는놈...

그러니 철딱서니 없는 막내라는 소리나 듣지...

 

아버지가 수술하고 병원에 계신 두달 동안 말한마디 안하고

웃지도 않고 와서 앉아 있다가 인상만  쓰고 돌아가는 내게 점 짜증 스러워

하는 거또 같았는데 그게 참 이상하다..

친구들한테는 얘길 하겠는데 집안 식구들한테는

주저리 주저리 그런 얘기들을 참 안하게댄다...

 

상견례꺼정 하고 헤어진 남자가 있었다..라고 얘기하면 다들

무신 엄청난 과거가 있는 것처럼 숙연해 진다.

사실 걍 남여상열지사의 한 단면일 뿐인데 말이다.

 

처음엔 마음이 답답하여 속이나 풀어 보자고 넋두리하듯이

지난 얘기를 했더랬다.

 

내가 좀 넋두리를 심하게 하는 편이다. 처음엔 조용히 들어주다가도

사실 몇번 듣고 나면 짜증도 나지..(난.. 누가 나한테 그러면 디게 짜증낸다 .ㅡ.ㅡ)

 

그래도 간혹 술주정처럼... 혹은 12시 넘어서 자는 놈깨워가며

주절거리기도 하고... 흐흐..

 

그러다 사람들의 반응을 보니 재미도 있더군..

위로 하는놈... 푼수같이 별얘길 다한다는 듯 쳐다보는 눈빛도 있고...

뭔가 큰 인생사가 있다는 듯 눈을 반짝이는 사람도 있고..

 

시간이 지나니까 넋두리도 차츰 줄어든다..

철이 난게 아니라 걍... 잊어가는 거 같다.

 

그때는 날 떠난 녀석에게 단 한번도 나쁜놈이라고 욕해 보지도 못했다. 그가 떠난 것은 그의 따뜻한 마음을 따뜻한 시선으로 받아주지 않았던 나였음을,

그시절의 오만과 방종의 날들을 후회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많은게 잊혀지면 아마 나쁜놈이라고 욕도 해대겠지

그러면 또 마음이 편해지겠지..

 

그랬었는데... 진짜다 ㅎㅎㅎ

요샌 절대 미안한 마음 이딴거 엄따.

그놈을 기억할때도 그당시의 나은 온갖 미사여구를 들이대며

세익스피어의 3대비극에나 나올법한 장엄하고 비극적인 묘사를

서슴지 않았더랬는데 말이지...

 

친구 혹은 후배 선배... 기타등등 넋두리 들어주신 여러분께

오늘도 온몸으로 감사를 전한다..

(시간 지나니 이런 반성도 하게 되네^^)

 

그리고 어느날 갑자기 헤어졌다는 통보만 듣고 3년이 지날때꺼정 속내 얘기 한번 듣지 못해놓고도 아무것도 묻지 않아주신 오마니랑 울언니...

 

어쨌거나.. 이젠 진짜루  시집 가야 댄다고 본다.

흐미...

 

시집 가고 싶다는 얘길 할라고 한건가..

왜이리 넋두리가 길어진게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