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4벽 민이

민이와 동거를 시작하다.

영혼기병깡통로봇 2004. 4. 30. 10:48

붕가붕가

 

이녀석이 민욱이다.

내가 개를 키우면서.. 아니 동거를 시작하도록 한 최초의
강아지다.

어릴적에는 엄니가 마당에 묶어놓은 누렁이 말고는
개를 키워본적이 없다.
동네 아자씨들이 어쩌다 똥개가 눈맞아서 새끼를 낳으면
한번 키워보라고 가져다 주시긴 했다.
그럴때마다 보슬보슬한 털을 쓰다듬으면서
좋아 어쩔줄 모르는 나에게
엄니는 털빠져!!! 라면서
작별인사할 시간도 없이 훌떡 집어다가 딴집에
가져다 주시곤 해따.

 

상처받은 가슴....

 

그러다 어느샌가 나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에 대한
모든 것이 지겨워지고 있었고 따끈해떤 감수성에는
쩍 하고 잔금 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면서 어느새 일에 대한 욕심이 부쩍 부쩍 자라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나는 울산으로 장기 출장을 가게 되었다.
아마 한 5개월쯤 가있었던 거 같다.

 

그때 울 사장이 너무 고생한다며 가지고온 선물이..
바로 이녀석 민욱이다!!!

 

엽기 사장....
대체 멀리 타향에서 임시로 얻은집에 혼자사는 여인네에게
강아지를 선물하면 어쩌란 것이냐..


게다가 이름까지 떡하니 지어왔다.
민욱이... 개가 사람이냐고...


게다가 내이름의 앞글짜를 딴것이냐고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나에게
사장은.. 그게 아니고...

드라마 주인공이름이란다..


난 그당시 티비도 없는 텅빈 집에 살고 있었는데
당시에 별은 내가슴에..라는 드라마를 하고 있었더랬다.

남자 주인공의 극중 이름이 강민이고..
주역 배우가 안재욱이었다..
그래서 민욱이란다 ㅡ.ㅜ

나름대로 좋은 이름이라고 우긴다.

i


보지도 못한 드라마에서 따온 이름을 가진 내강아지 민욱이..
민욱이와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아침에 일나면 여기저기 쉬야자국이 있고,
틈만나면 기어 올라와 무릎위에서 자는녀석.,
잠시 한눈팔면 밥그릇을 엎어놓고
잠시 나가따 와보면 밥주머니를 기어이 찾아서
배가 오징어 순대처럼 빵빵해 질때까지 먹고
헥헥대는 녀석,
너무 작아서 어디 묶어 놓을 수도 없는 녀석을 대체 어쩌란 거냐고...

 

그리하여 녀석을 가방에 넣고 출근을 하기 시작했다.
발밑에서 발등을 베고 자고
내 발보다도 작은 주제에 발을 이겨보게따고 씨름을 하고..
내가 가는 곧마다 무쟈게 힘들어 하면서 뛰어 오고...
뛰다 힘들면 걍 앉아서 멀뚱멀뚱 쳐다보고...

 

이녀석.... 이녀석...어쩌면 좋을까..


녀석이 너무 좋아져 버렸다.

 

아..그리하여 비로소 나는 어린날의 상처따위는 다 잊고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의 범주에 들게 된 것이다.

 

그후에 서울로 올라와서도

어쩌다 보니 독신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혼자 사는 지라 늘 콩알만한 방한칸만 얻어서 살곤했다.
나야 잠만 자고 출근하면 되지만 하루종일
그안에 갖혀서 혼자 나를 기다리는 민욱이에게
좀더 넓게 뛰어 놀 공간을 얻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넓직한 집으로 이사를 했다.
같은 돈으로 넓은 집을 얻으려니 지하방밖에 없더군..
그래도.. 넓으니 좋았다.

 

그날... 이사를 하고 침대를 정리하면서..
신나서 뛰어 놀던 민욱이에게
침대정리해야 되니까 내려 오라고 소리쳤다..


민욱이는 침대에서 뛰어 내리다가 그만 발을 헛디뎠다.
목부터 바닥에 떨어졌고..

 

 

민욱이는 지금 하늘 나라에 있다.
겨우 3년을 살았다... 녀석의 짧고 짧은 날..

 

민욱이에게 너무 모질게 했던 것만 마음이 아프다.
좀더 녀석에게 행복하게 해줄걸...
녀석은 나보다 행복할 수 있는 시간이 짧았는데 그걸 몰랐다.
그저 화내면 화풀이하고... 못된짓하면 막무가내로 혼내고
옥상에 데려가서 겁주는 거까지...
녀석이 무서워서 바들바들 떨던 모습때문에..
내가 녀석에게 무슨짓을 한건지 그땐 잘 몰랐다.

 

녀석이 죽고나서 3일을 회사도 안가고 울고 앉아서

민욱이가 없는 빈자리를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겠기만 했다.


민욱이가 밥먹던 자리..
민욱이가 누웠던 자리.. 좋아했던 인형..
녀석의 물건을 버리면서

다시는 강아지를 키우지 말아야지..
다신 죄짓지 말자.. 했다.


했다가...
민욱이처럼 작고 하얀 아이는 말고
민욱이처럼 여리고 슬픔이 많은 아이 말고...
좀 덜 똑똑하더라도 씩씩하고 명랑한 아이에게
민욱이에게 못다한 정을 주고싶다고 생각했다.

 

인간의 이기심이란 정말 어쩔수 없나보다.
내가 외로운걸.. 그저 내 마음이 편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만난... 우리 민이다...
민욱이의 앞글자를 따서 지은 이름 민이..

벌써 민이 나이가 청년은 아니네...
내가 나이 먹는건 겁나지 않은데
민이가 나이를 먹는 건 겁난다.
민이가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아줘야 할텐데..

 

be

 

ps.

예전에 한번은 내가 혼자 좋아하던 남자가 있었는데
그놈이 강아지를 무척 싫어 했다.
그래서 민이를 어디 입양시킬까 생각한적도 있다.
아... 사랑땜에 못할짓이 없는 무정한 어매를 용서해라..
다신 그런생각안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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