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통로봇의 노래

미련한 기억을 떠나 보내며

영혼기병깡통로봇 2004. 3. 2. 08:47

지독한 열병을 앓고 난 후 또 다시 눈을 뜨는 아침... 너무나 기운이 없는데도 마음은 개운하다.
가슴을 토해낼 것처럼 오열을 하던 지난 밤의 쇠잔한 나는 이제 다시 없을 것이다.
하나만 묻자...
하나만...

너 결혼하니..?

...

어떻게 알았니...

어떻게 알았냐구... 글쎄 어떻게 알았냐구... 그걸 질문이라고.. 아니 그걸 대답이라고...

녀석은 그렇게 대답한다. 어떻게 알았니...

좀더 그럴듯하게 대답했으면 좋았을 것을...

아니다...


녀석의 간결하고 비겁했던 대답이란 것이.. 녀석에게 그따위 말밖에 할 수 없도록 만들었던 나의 교만과 어리석은 방종의 끝일터이니...

오늘은 길고 지루한 터널의 끝에서 갈길을 찾고 있는 나의 밤이다.
나에게 축배를 드는 밤이다.
이 더러운 이별의 시작이 나에게 있었던 것일뿐.. 그 마지막 말을 녀석이 먼저 했다 해서 녀석의 죄는 아닐 것이다.

행복을 빌어 주는 것 까지야 차마 내가 할 짓이 아닐 터이니.. 그저 잊어주고 싶다.

녀석의 결혼식 이야기를 듣고 친구와 함께 찾았던  속초의 새벽..

그것도 이제 잊어 줄 것이다.

녀석이 결혼한지 이제... 두달이 채 못되었다.

오늘은 녀석의 결혼 소식을 들은날도 아니고 녀석의 입에서 어떻게 알았느냐는 말을 들은날도 아니며 하물며 녀석이 결혼하는날도 아니다.

녀석이 결혼한지 한달도 두달도.. 1년도 아닌 참 애매한 날이다. 그다지 기념할 만한 날도 못되었다.

그러나 이날을 기념하자.

녀석에게 아무 의미 없는날을 기념하는 것이 좋겠다.
녀석에게 의미있는 날은 나의 상처일터이니..

난 그저 나의 날만을 기념하고 싶다.

그리고... 미련없이 뒤돌아 가자.

눈물 한줌 흘리는 일따위 없이 가자...

그러나 나는 참 바보 같으다.


평생 잊혀지지 않을지라도, 너무 지쳐서 잊는 노력 따위조차 하지 않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가 밉지 아니하다.

나를 책망하고 나의 미련한 애증에 화가 치밀어 나를 떠난 사람에게 독을 던지는 하루하루에도 틈틈히 그가 밉지 아니하다.

나의 차가운 독을 보듬어줄 착한 누군가가 내게 다가올때조차 그를 발견하지 못할 만큼 내가 무너지게 될지 모르지만...

그래도.. 그가 밉지 아니하다.


너무나 어리석고 미련한 네가... 밉지 아니하다.

그런데도...  축하한다고도 못하겠다.
고마웠고 사랑했다고도 못하였다.

내마음이 그러하였다.

 

그에게 준것이 너무 작고...초라한데.. 그가 준게 너무 많아서... 그 많고 커다란 사랑을 하찮게 여기던 내가 너무 미련스러워서...

차마 아무말도 하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