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지 않고서는 감히 인생을 걸었다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살면서 가끔씩 왜 사느냐를 묻곤 한다.
아마도 볼품없이 일그러져 있는 인간의 실존적 조건들, 절망과 부조리, 삶의 무의미성에 환멸하는 인간의 이성, 삶의 표면에 굽이치는 비참한 일상, 그것들에 대한 부정이리라.
또한 그것은 인간이 처한 일상의 그러한 삶 속에서 낙원을 발견하고자 하는 몸부림의 반대급부적 표현일 것이다.
그러나 그 고통스런 물음에 대한 답변이라는 것은 늘..
이러저러한 이유로 해서 산다는 명쾌한 대답이 아니라 삶 속에서 불현듯 느껴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살아지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거대한 바위를 산 위로 밀어 올리기를 반복하는 시지프스처럼 고통스러운 삶에의 물음에 대해 희망과 도전으로 존재를 확인해 가는 사람들…
그들의 화두는 무엇일까를 묻는다.
그들은 왜 산에 오르는가…그리고 정상은 그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산은 또 무엇인가.
단 한번의 눈사태로도 시체조차 찾을 길 없는 그곳에, 가족을 묻고, 친구를 묻고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어서야 돌아가는 그 험한 곳에 목숨을 던지는 그들의 삶 또한 살아보지 않고서는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끊임 없이 오르고, 끊임 없이 좌절하기를 반복하고도 포기하지 않는 인간에게 철저한 방관의 자세로 일관하는 자연을 향해 생명을 던져서 얻는 것은 무엇인가.
처음엔 정복에 대한 거대한 꿈을 꾸며 산을 오른다.
그러나 처음의 그 힘찬 발걸음은 거센 폭풍우를 만나고 부서지는 암벽을 만나면서 무릎이 꺾이고, 걷고 또 걸으며 정복의 의미에 대해 물음표를 찍게 될 것이다.
그리고 손과 발의 피가 얼어버릴 듯한 추위와 거대한 빙벽들을 만나면 너무나 작고 초라한 인간을 만나게 된다.
자신…
이제 더 이상 자아실현과 정복의 완성이 주는 희열은 그들의 산행이라는 범주에 있지 않을 것이다.
다만 삶과 죽음 앞에서 생존에 대한 집착이 주는 묘한 쾌감을 얻는 것일지도 모른다.
강한 의지로 자신과 싸우며 호흡과도 같이 찾아오는 고독, 두려움을 이겨내는 일일 뿐이다.
로프가 끊길지도 모르고, 추락하거나, 손과 발에 동상이 걸려 꼼짝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르며, 캠프와의 연락이 두절된 체 고립될지도 모른다.
수시로 찾아오는 불안과 두려움을 이겨내야 하는 것. 그것 뿐인 것이다.
두려움과 싸워 정상에 선 그들의 승리, 얼음 구덩이를 파내어 홀로 싸워 왔던 고귀한 눈물과 동지들의 혼을 묻고 그리고 발 아래를 내려다 보며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무념 무상의 자유를 얻게 될 것이다.
에베레스트. 태고의 신비가 가득한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산봉우리.
과 얼마 전까지 누구도 발을 들여 놓을 수 없던 성역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도전을 하기 시작했다.
정상의 그림자만 드리워진 산아래 캠프에서 자연의 위대함을 가슴에 새기고 돌아가거나 아니면 그 누구도 다시 찾아와 그를 위해 눈물 한줌 흘려줄 수 없는 얼음 땅에 육신을 묻어야만 했다.
그러나 우리는 혼이라도 그곳에 남겨둬야 할 만큼 절실한 그들의 도전을 기억한다.
그리고 왜 가야 했는지 그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과연 인간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에 대한 원초적인 질문까지도 말이다.
그들은 "공격"이라는 표현을 쓴다.
그렇다.
그것은 공격인 것이다. 무엇에 대한 공격인가. 마치 전쟁을 치르듯이 1차 공격에 실패했다는, 숨이 잦아드는 대원의 목소리가 무전기 속으로 흘러나오면 힘겨운 한숨을 내쉴 틈도 없이 또 다른 치밀한 계획과 준비로 2차 공격을 나선다.
산은 공격도, 항복도, 아무런 몸짓도 하지 않는데 말이다.
그러나 거만한 방관은 나약한 인간에게는 거부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싸워 이겨야 하는 이유가 생긴 것이다.
결코 위대한 인간이길 원한 것도 아니고 영웅이고 싶어서 생명을 담보로 산을 오르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모든 스포츠의 위대함이 승패에 있지 않듯이, 그들의 위대함 또한 "정상의 정복"이라는 결과에 있지 않다.
숱한 눈물과 인간의 본질적 두려움, 삶에의 집착과 싸워 이기는 길고 긴 여정 속에서 결국에는 집착까지도 버려내고서야 얻어지는 산악인의 정신의 자유….
위대한 인간의 모습 그것이다.
99년 5월, "산이 거기에 있기에…"라는 말을 세인의 가슴에 남기고 결국은 에베레스트의 빙산 속에 묻혀버렸던 산악인 조지 말로리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75년만의 일이었다.
그의 시신엔 75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허리에는 로프가 둘려져 있고, 여전히 가죽등산화를 신고, 여전히 잊혀질 수 없는 이름 "조지 말로리"라는 이름표가 재봉된 내의를 입고 있었다.
처음 그를 발견한 어느 산악인(노바 등산대의 데이브 한)은 차디찬 얼음 속에 75년간이나 누워 있던 그를 추모하는 일이 그의 오랜 평화를 깨는 듯이 죄스럽게 느껴졌다고 한다.
비록 그의 목숨을 앗아간 산이지만, 그를 추모하고 그리워 하던 어떤 속세의 인간들보다도 산은 우직하게 그에 대한 의리를 지켜온 것이다.
너무도 사랑하여 생명을 걸고 오른 산에 생명뿐 아니라 육신까지도 담보해둔 그를...
산은 마침내 평화와 안식으로 보답한 것인지도 모른다
.
산은 인생이며 산을 오르는 법을 배우는 것은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했다.
낮은 초원, 잔잔한 바람이 살갗을 스치는 산 아래에서 시작하여 거대한 빙벽과 폭풍을 만나는 정상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잠깐동안 꿈을 꾸듯이 만났을 뿐인데도 그 말의 의미를 알 듯 하다.
인생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있고부터 누구나 무미건조한 일상을 탈피하고 싶어하고 또는 무언가를 반드시 이루어 내고 싶은 희망, 아니 도전을 시도한다.
그 속에서 삶은 어디서부터 시작 될지 모르는 인생의 굴곡과 좌절을 겪지 않던가. 그리고 나서야 얻게 된 열매는 얼마나 달고 단지 우린 잘 알고 있다.
위험과 고난이야말로 인간이 산을 오르게 하는 첫번째 이유이며 자연의 위대한 힘이다.
때로는 인간을 너무나 초라하게 만드는 이토록이나 가혹한 자연의 거부가 계속되는 한 인간은 끊임 없이 정상의 고지를 탐할 것이다.
죽음의 여신이 지키고 있는 모든 순결한 땅은 숙명과도 같이 그들을 만나게 될 것이고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더 이상 갈 곳 없는 그 곳을 찾아서 끊임 없이 산을 오르는 시지프스의 후손들이 그 곳을 찾을 것이기 때문이다.
Because it is there….
살면서 가끔씩 왜 사느냐를 묻곤 한다.
아마도 볼품없이 일그러져 있는 인간의 실존적 조건들, 절망과 부조리, 삶의 무의미성에 환멸하는 인간의 이성, 삶의 표면에 굽이치는 비참한 일상, 그것들에 대한 부정이리라.
또한 그것은 인간이 처한 일상의 그러한 삶 속에서 낙원을 발견하고자 하는 몸부림의 반대급부적 표현일 것이다.
그러나 그 고통스런 물음에 대한 답변이라는 것은 늘..
이러저러한 이유로 해서 산다는 명쾌한 대답이 아니라 삶 속에서 불현듯 느껴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살아지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거대한 바위를 산 위로 밀어 올리기를 반복하는 시지프스처럼 고통스러운 삶에의 물음에 대해 희망과 도전으로 존재를 확인해 가는 사람들…
그들의 화두는 무엇일까를 묻는다.
그들은 왜 산에 오르는가…그리고 정상은 그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산은 또 무엇인가.
단 한번의 눈사태로도 시체조차 찾을 길 없는 그곳에, 가족을 묻고, 친구를 묻고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어서야 돌아가는 그 험한 곳에 목숨을 던지는 그들의 삶 또한 살아보지 않고서는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끊임 없이 오르고, 끊임 없이 좌절하기를 반복하고도 포기하지 않는 인간에게 철저한 방관의 자세로 일관하는 자연을 향해 생명을 던져서 얻는 것은 무엇인가.
처음엔 정복에 대한 거대한 꿈을 꾸며 산을 오른다.
그러나 처음의 그 힘찬 발걸음은 거센 폭풍우를 만나고 부서지는 암벽을 만나면서 무릎이 꺾이고, 걷고 또 걸으며 정복의 의미에 대해 물음표를 찍게 될 것이다.
그리고 손과 발의 피가 얼어버릴 듯한 추위와 거대한 빙벽들을 만나면 너무나 작고 초라한 인간을 만나게 된다.
자신…
이제 더 이상 자아실현과 정복의 완성이 주는 희열은 그들의 산행이라는 범주에 있지 않을 것이다.
다만 삶과 죽음 앞에서 생존에 대한 집착이 주는 묘한 쾌감을 얻는 것일지도 모른다.
강한 의지로 자신과 싸우며 호흡과도 같이 찾아오는 고독, 두려움을 이겨내는 일일 뿐이다.
로프가 끊길지도 모르고, 추락하거나, 손과 발에 동상이 걸려 꼼짝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르며, 캠프와의 연락이 두절된 체 고립될지도 모른다.
수시로 찾아오는 불안과 두려움을 이겨내야 하는 것. 그것 뿐인 것이다.
두려움과 싸워 정상에 선 그들의 승리, 얼음 구덩이를 파내어 홀로 싸워 왔던 고귀한 눈물과 동지들의 혼을 묻고 그리고 발 아래를 내려다 보며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무념 무상의 자유를 얻게 될 것이다.
에베레스트. 태고의 신비가 가득한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산봉우리.
과 얼마 전까지 누구도 발을 들여 놓을 수 없던 성역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도전을 하기 시작했다.
정상의 그림자만 드리워진 산아래 캠프에서 자연의 위대함을 가슴에 새기고 돌아가거나 아니면 그 누구도 다시 찾아와 그를 위해 눈물 한줌 흘려줄 수 없는 얼음 땅에 육신을 묻어야만 했다.
그러나 우리는 혼이라도 그곳에 남겨둬야 할 만큼 절실한 그들의 도전을 기억한다.
그리고 왜 가야 했는지 그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과연 인간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에 대한 원초적인 질문까지도 말이다.
그들은 "공격"이라는 표현을 쓴다.
그렇다.
그것은 공격인 것이다. 무엇에 대한 공격인가. 마치 전쟁을 치르듯이 1차 공격에 실패했다는, 숨이 잦아드는 대원의 목소리가 무전기 속으로 흘러나오면 힘겨운 한숨을 내쉴 틈도 없이 또 다른 치밀한 계획과 준비로 2차 공격을 나선다.
산은 공격도, 항복도, 아무런 몸짓도 하지 않는데 말이다.
그러나 거만한 방관은 나약한 인간에게는 거부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싸워 이겨야 하는 이유가 생긴 것이다.
결코 위대한 인간이길 원한 것도 아니고 영웅이고 싶어서 생명을 담보로 산을 오르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모든 스포츠의 위대함이 승패에 있지 않듯이, 그들의 위대함 또한 "정상의 정복"이라는 결과에 있지 않다.
숱한 눈물과 인간의 본질적 두려움, 삶에의 집착과 싸워 이기는 길고 긴 여정 속에서 결국에는 집착까지도 버려내고서야 얻어지는 산악인의 정신의 자유….
위대한 인간의 모습 그것이다.
99년 5월, "산이 거기에 있기에…"라는 말을 세인의 가슴에 남기고 결국은 에베레스트의 빙산 속에 묻혀버렸던 산악인 조지 말로리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75년만의 일이었다.
그의 시신엔 75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허리에는 로프가 둘려져 있고, 여전히 가죽등산화를 신고, 여전히 잊혀질 수 없는 이름 "조지 말로리"라는 이름표가 재봉된 내의를 입고 있었다.
처음 그를 발견한 어느 산악인(노바 등산대의 데이브 한)은 차디찬 얼음 속에 75년간이나 누워 있던 그를 추모하는 일이 그의 오랜 평화를 깨는 듯이 죄스럽게 느껴졌다고 한다.
비록 그의 목숨을 앗아간 산이지만, 그를 추모하고 그리워 하던 어떤 속세의 인간들보다도 산은 우직하게 그에 대한 의리를 지켜온 것이다.
너무도 사랑하여 생명을 걸고 오른 산에 생명뿐 아니라 육신까지도 담보해둔 그를...
산은 마침내 평화와 안식으로 보답한 것인지도 모른다
.
산은 인생이며 산을 오르는 법을 배우는 것은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했다.
낮은 초원, 잔잔한 바람이 살갗을 스치는 산 아래에서 시작하여 거대한 빙벽과 폭풍을 만나는 정상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잠깐동안 꿈을 꾸듯이 만났을 뿐인데도 그 말의 의미를 알 듯 하다.
인생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있고부터 누구나 무미건조한 일상을 탈피하고 싶어하고 또는 무언가를 반드시 이루어 내고 싶은 희망, 아니 도전을 시도한다.
그 속에서 삶은 어디서부터 시작 될지 모르는 인생의 굴곡과 좌절을 겪지 않던가. 그리고 나서야 얻게 된 열매는 얼마나 달고 단지 우린 잘 알고 있다.
위험과 고난이야말로 인간이 산을 오르게 하는 첫번째 이유이며 자연의 위대한 힘이다.
때로는 인간을 너무나 초라하게 만드는 이토록이나 가혹한 자연의 거부가 계속되는 한 인간은 끊임 없이 정상의 고지를 탐할 것이다.
죽음의 여신이 지키고 있는 모든 순결한 땅은 숙명과도 같이 그들을 만나게 될 것이고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더 이상 갈 곳 없는 그 곳을 찾아서 끊임 없이 산을 오르는 시지프스의 후손들이 그 곳을 찾을 것이기 때문이다.
Because it is t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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