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통로봇의 노래

TV, 놈의 반란이 시작됐다.

영혼기병깡통로봇 2003. 6. 13. 19:22

우리집엔 전기 잡아 먹는 귀신들이 많다.
다른 식구많은 가정집의 전기요금 보다 두배는 더 잡아 먹는다.

처음엔 이유를 잘 몰랐는데 가전제품들이 모두 너무 오래된 구형이라서
그렇다고 한다. 게다가 정체모를 구호물자들이 많은 덕분에
110볼트를 사용하는 가전제품도 많다.

동생이 쓰다 준 오디오는 겉보기엔 멀쩡한 일본 밀수품이라 110볼트고
전기밥솥은 엄마가 쓰다버린 일제 밥솥이라 그것 역시 110볼트다.

그래서 일명 도란스, 트랜스를 사용해야 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또 컴퓨터는 어떠한가... 일반 가정용으로 쓰는 컴퓨터가 보통 250와트 짜리
파워서플라이를 사용하는데 기계욕심이 많은 나는 330와트짜리 파워에
듣도 보도 못한 장치들을 주렁주렁 달아 놓고 쓰고 있다.

컴퓨터를 제외한 우리집의 모든 가전 제품과 가구들은
재활용센타에서 구입하거나 누가 길에 버린 것들을 주워다 쓰고 있는 것이 더 많다.

안방에 놓은 장식장은 도대체 왜 버렸는지 알수 없을만큼 훌륭하다.
혹시 누가 잠깐 밖에 둔건데 주워 온것은 아닌지..ㅡ.ㅡ

그리고 TV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방 한개짜리 옥탑이나 지하방을 전전할때는
TV 수신카드를 달아 놓고 컴퓨터로 일하면서 TV를 봐도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밥을 먹을때도, 잠자리에 누울때도 모니터의 가시거리는
내눈밖을 벗어난 적이 없었으니....


그러나 방이 두칸이 되고 보니 작업실과 침실을 분리하는 화려한(ㅡㅡ) 생활을 시작한
이후 불편한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우선 잠자리에 누워서 티비를 볼수가 없다!!!

자고로 티비란 시간 지나면 지가 알아서 꺼지도록 타이밍을 조절해놓은 뒤
벼게를 두개 받쳐 놓고 비스듬히 누워서 보다가 꾸벅꾸벅 졸다가 잠이들어야 하는 물건...
바로 그런 때에 필요한 물건인 것이다.
다른건 다참아도 티비를 볼려면 작업실 의자에 앉아야 한다는 것만큼은 참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던 어느날!!


누군가 집앞에 tv를 버려둔것을 발견한 것이다.
겉보기엔 너무나 멀쩡한 21인치 티비...

게다가 94년식이니 아직 10년도 안된 제품이다. 재활용센타에 가도
LG가 아닌 골드스타가 붙어 있거나...
삼성제품도 지금의 둥그런 로고가 아닌... 향수어린 로고의 제품들이 대부분인데
이건 노다지 중에서도 왕노다지가 아닐 수 없다.

속는셈치고 낑낑 거리며 집으로 들고 들어왔다.
좀 쪽팔린 감이 없잖은터라 아무도 다니지 않는 야심한 밤에 어둠을 뚫고
단숨에 들구 들어 온것이다.. 허리가 아푼줄도 모르고 전원을 연결하고
윗집의 케이블 선을 도둑질해서 연결한 결과...

신의 축복이다.
화질, 음질... 무엇하나 나무랄데 없는 녀석을 업어 오게 된 것이다.

헙... 또 걱정된다.. 누가 잠깐 밖에 내 놓은게 아닐까..
모르겠다.. 몇일 집밖에 나가지 말자.. 내가 가져갔는지 누가 알겠는가..

누군가 티비 잃어 버렸다고 울면서 벽보라도 붙이면
또 밤에 몰래 내다 놓으면 될 것 아닌가...

그러나 그후로 티비를 찾는다는 소식은 들은 바 없다..
망태 할아버지처럼 쓰레기 주으러 다니는 나같은 사람이 있는 반면에
그 높디 높은 산동네에도 럭셔리 계급들이 살고 있나보다.
음하하... 그거시 1년 반 전의 일이다.

그랬던 저 녀석이... 요즘 지할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했는지...
지가 무슨 애 넷 낳고 하늘로 돌아가는 선녀쯤 되는줄 아는지..
맛탱이가 가기 시작했다.

어느날 갑자기 화면이 서서히 어두워지더니 까만 화면에 소리만 나오는거다..ㅡ.ㅡ
오밤중에 혼자 티비 보다 무서워 죽는줄 알았다..ㅡ.ㅡ
사다코가 기어 나올까바 얼른 티비를 껐다.

아... 이젠 진정 새 티비를 사야 할 시기가 되었단 말인가..

얼마전엔 세탁기를 할 수 없이 바꿨다.
쓰던 세탁기도 일명 "골드스타" 제품으로 예전 살던집에 이사갈때
그 이전에 살던 사람이 쓰다 버리고 간 거였다.
그사람도 재활용센타에서 5마넌 주고 산거란다.
그냥 두고 갈테니 쓸려면 쓰라기에 눈물어린 감사의 인사를 던지고
받아둔 거였는데 난.. 이사하면서도 악착같이 이놈을 들고 왔다 ㅡ.ㅡ

이 놈이 새집에 이사한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 버렸는지 이사하자마자
전원이 안들어 온다.
불러도 대답없는 세탁기가 된 것이다.
세탁기 때문에 사다리차까지 불러서 이사를 하였건만 이건 배신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미 영혼은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요단강 건너 멀리 떠난 것을..
그리하여 세탁기를 할 수 없이 장만 한지 1달도 채 안됐다.

나는 한푼두푼 모아서 불어가는 통장을 바라보며 흐뭇해 하는 알뜰 꼼꼼 가정주부도 아니며
범 우주의 공생을 고민하는 환경운동가는 더더욱 아니다.
설명 안해도 안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계시리라... 쑥스럽다..ㅡ.ㅡ


편하게 행복하게 즐겁게 사는 것,
그리고 돈 많이 벌어서 그돈으로 내가 행복해 질 수 있는 모든게
가능하기를 바라며
또한 10원씩 저축해서 언젠가 차를 사기 보다는 100만원 빌려서 일단 차를 산다음에
10원씩 갚아나가는 방법으로 세상을 사는 인간이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쓸데 없는데 돈쓰는 일에 망설이지 않을 수 없다.
티비를 하루종일 끼고 사는 사람도 아니고..잠 잘때 심심하지 않을라면 필요하기도 않고..

티비를 살까 말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10년이나 된 것까지는 뭐 어쩔 수 없다 쳐도 길에서 주운 티비를 A/S 받으려니
웬지 양심에 찔리는 것 같기도 하고 또 너무 추접한 것 같기도 한 생각이 들어서
한달여를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티비를 끼고 살았다.(이놈이 가끔 정신이 들어오기도 한다 ㅡ.ㅡ;;)

그러다 오늘 큰맘먹고.. A/S 센타에 전화 했다.
정말... 정말... 좋은세상이다..

고객님.. 정말 불편하셨겠어요 너무 죄송하구요... 그러면 기사님이 직접 방문을 하셔서
제품을 보셔야 겠네요 ...
한다...

감동이지 않는가...

어리숙한 나는 이러케 물었다.

"직접 오시나요?"

--;;;


그랬더니 상담직원은 "그럼요... 기사분이 가셔야죠...아... 원하시면 고객님이 직접 가지구 오셔두 되거든요.."
한다..
고객이 원하지도 않는데 그 불편한 작업을 한다는 것 자체가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나는 너무나 다른 세상에 살고 있었나보다.
내일 오전 일찍 방문 하기로 했다. 오늘 오전에 전화 했으면 오늘 방문했을텐데
조금 늦게 전화 주셔서 내일 가게 되오니 죄송하지만 조금만 참아달라고 한다.

아..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 세상에 살고 있는가.

동네마다 하나씩 있던 순돌이 아빠들은 살기가 좀 빡세졌겠다.
순돌이 아빠껜 죄송하지만 요즘 누가 티비들고 뛰어가겠는가..
솔직히 티비를 버릴까도 하다가 1층까지 들고 내려가기가 귀찮아서 여태 두고 있었던 문제도
없잖아 있다.

가전제품 하나를 버리려고 하면 귀찮은일이 어찌나 많은 세상인지..
동사무소까지 꾸역꾸역 걸어가서 나 쓰레기 버리고 싶다고... 버려도 되냐고 신고하고
버려도 된다는 허락의 증표로 1마넌짜리 쓰레기 딱지를 사서 붙인다.
그러면 끝이냐.. 아니다.
쓰레기 딱지를 붙인 세탁기를 들고 나같이 5층 꼭대기에 사는 사람이
1층까지 버리러 내려간다고 생각해보라...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일당 3마넌짜리 인부를 불러야 버릴 수 있다.
댄장...

요즘엔 가전제품을 새로 사면 전에 쓰던 가전제품을 대신 가져가 준다.

동사무소에서 하는 빌어먹을 개수작을 대신해주며 나같이 단순 과격한 고객에게
감동을 선사해 주는 것이다.

거기다...10년된, 길에서 주운 티비를 찾아다니며 고쳐준다.
돈은 받겠지... 그래도 쓰레기 값에 비하면 싸다.

기업들은 돈버는 방법을 연구한다.
돈버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동사무소처럼 벌지는 않는다.
게다가 돈벌면서도 욕먹지 않고 고객님 사랑합니다... 라는 말이 진심인것처럼 착각하게
만들기 위해 그들은 오늘도 밤을 새울 것이다.

내가 온라인 게임을 하며 밤을 새울때...
길에 버려진 전자렌지 하나 없나(전자렌지가 필요하다 ㅡ.ㅜ)눈을 부릎뜨고 돌아다닐때...
친구들과 길바닥에서 가위바위보로 누가 담배사러가나 내기를 하고 있을때..

나를 감동시키고 감동의 댓가로 내 주머니를 털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그들이 있다.

그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담아서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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