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통로봇의 노래

엄마처럼 살지 않을꺼야

영혼기병깡통로봇 2003. 4. 22. 17:06
작년에 작가언니와 함께 동거를 하던 시절에 있었던 일이다.
작가언니의 후배가 우리집에 놀러와서 가볍게 술을 한잔하다가 주고받았던 얘기중에 나는 나중에 자식을 어떻게 키우고 싶다에 대한 얘기였다.

나는 보충수업이 끝나면 밤늦게 엄마가 데리러 오는 아이들이 젤 부러웠다. 그리고 늦게 들어오면 늦게 들어온다고 죽도록 혼나고 어딜 가면 간다고 허락을 맞고 가는 애들이 부러웠다..(이건 좀 불편하겠다 ㅡ.ㅡ)
아뭏든 부모로부터 지대한 관심과 애정속에서 과보호 받으며 공주처럼 자랐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살아온지라... 내가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정말 해주고 싶은 거 다해주고 공주처럼 키울 거라고 말했다.
아이가 아무리 싫다고 투정을 부리더라도 지금 강남의 부모처럼 빚을 내서라고 교육을 시켜서 나중에 아이가 진로를 결정할때 해보지 못해서 못하는 일은 없도록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때 언니와 그 후배는 나를 강남의 골빈 아줌마 같은 소리 한다면서 아이들은 자연과 함께 편하게 살게 해주는 게 좋다고 했다.
자신들도 그다지 행복하게 살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아이들에게 내성도 키워주지 못하고 공주처럼 키우는 것은 반대한다면서 말이다.

그런데 지금 작가언니.. 그녀..
그녀가 키우는 강아지는 과보호와 과다애정속에 갖힌 어리광쟁이의 결정체다. ㅡ.ㅡ
ㅋㅋㅋ
그러나 그녀... 불쌍해서 어떻게 그래라는 말을 할뿐 자신이 지금 강아지에게 무슨짓을 하고 있는지 깨닫지 못한다.
강아지를 혼자 집에 두거나 밥투정을 하면 굶긴다거나 말썽피우면 몽둥이로 패는 일따위는 그녀의 사고의 범주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다.
강아지를 위한 각종 간식과 과자... 강아지 전용 고기를 볼때마다 그때의 그녀를 생각하며 웃게 되곤한다.
역시 이성과 본능은 평행선일 수 밖에 없는 것일까?

반대로 아이를 공주처럼 키우겠다던 나는 어떤 편이냐 하면 그 언니처럼 끝없는 애정과 티끌만큼의 원망도 없이 사랑만을 쏟아 부을 자신이 없다. 미울땐 밉기도 하고 집에서 혼자 기다리는 강아지를 안스러워 하며 안절부절 못하며 살 자신도 없다.
우리 강아지는 집에 혼자 있는 날이 더많고 함께 하는 즐거운 산책 따위는 기대할 수도 없으며 간식은 커녕 사료가 떨어지는 날도 많고 실수라도 하는 날엔 죽도록 얻어맞는 일이 다반사다.

그리고 어느날 문득 깨달은 것은 그런 식의 어설프로 뻣뻣하기 짝이 없는 애정표현이 바로 우리 엄마와 나의 관계였다는 것이다.

엄마처럼 살지 않겠노라던 나의 양육 방법은 엄마가
엄마의 그것을 고스란히 닮아 있었다.
어린시절 엄마와의 기억을 되돌아 보면 엄마는 보통엄마들처럼 따뜻하고 자상한 것 과는 약간 거리감이 있었다. ㅡ.ㅡ 물론 아이가 바글바글 한데다가 많은 식구가 배불리 먹자면 밥보다는 밀가루 수제비를 한솥해야만 그나마 맘이 편했던 시절이었으니 자상과 꿀맛같은 애정의 바다를 허우적 대는 것은 기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걸 감안하더라고 우리 엄마는 너무나... 너무나...살가운 맛이라고는 없는 여인이었다.
보통 손님이 오면 아이들은 기회는 찬스임을 본능적으로 알게 된다.
그리하여 군것질 또는 용돈을 소홀찮게 뜯어 내기도 하고 조금 맘껏 행동해도 손님이 돌아가시기 전엔 그다지 큰 타격을 입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우리 냉정한 어머니...

손님이 있건 없건 손님 앞에서 깝죽거리는 모냥새를 절대 용납하지 않았고 사람들 앞에서 까부는 것 따위는 감히 어린 애들 주제에 할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분이었다.

그로 인해 얻어진 것이라고는 어른에 대한 예의 따위 보다는 상실한 자신감과 발로 밟혔던 어린 새싹의 세상을 향한 소심함이 대부분이었고 그것들은 급기야 세상에 대한 원망과 복수심(!!) 이 더 많았다...
그런 엄마였기에 공부시킨 답시고 사춘기도 지나지 않은 아이들을 떨어뜨릴 생각을 감히 했을 것이다. 뒷날 아이의 정서에 무슨 영향을 미칠 것인가 따위는 엄마의 안중에 없는 일이었다. 엄마로서는 그것이 최선이었으니까 말이다.

딸은 엄마의 인생을 닮는다고들 한다.

20대 중반쯤까지는 믿지 않았던 그말의 의미를 조금씩 헤아릴 수 있게 된 것은 30을 바라보던 즈음 부터 였다.
어느날 문득 내가 남자친구를 대하는 모습속에 아버지를 대하던 엄마의 그림자를 발견한 순간 부터 였던 것 같다.
절대 엄마처럼은 하지 않을꺼야... 엄마는 왜 저럴까... 라고 생각했던 어린시절의 내가 있었고 지금의 내모습 속에 그때의 엄마가 살고 있다.

엄마와 실질적으로 같이 산 것이 겨우 12살까지일뿐인데도 난 설겆이를 하는 방법, 설겆이를 하고 그릇을 정리하는 방법부터 하다 못해 걸레를 쓰고난후 보관하는 위치, 방법까지... 엄마를 닮아 있었다.
엄마는 죽어라고 청소안한다고 구박을 하고, 거기에 맞서 있는대로 게으름을 피우며 내일이면 또 더러워질텐데 뭘 구러케 까지 악착을 떠냐면서 짜증을 내던 나는 지금, 누구도 모르는 사이 세뇌당해왔단 사실을 깨닫는다.

엄마의 인생을 닮는 다는 것... 그런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단순히 생활의 방법을 닮는 것 뿐만 아니라... 그녀의 인생을 답습하는 것은 모르는 사이에 엄마의 모습이 내게 투영되어진 탓인 것이다.

엄마보다 많이 배우고, 엄마보다 많은 사람을 만났다는 것 만으로 엄마처럼 살지 않을 수 있다는 자신이 얼마나 오만 스러운 것이냐..

조금 더 많이 벌고 조금 더 럭셔리 하게 살 수는 있다. 그러나 어느순간 엄마처럼 걸레를 삶는 나를 발견하고 흠칫 놀라게 되는 순간이 오리라.
그리고 엄마가 아버지에게 그랬던 것처럼 애증과 포기를 반복하며 가슴을 새카맣게 태워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그날도 있을 것이다.

몇년전에 점집을 찾아 다녔던 적이 있다.
그녀는 나를 보며 불쌍하댄다.. ㅡ.ㅡ
내가 너무 외로운 사주라 날 보면 눈물이 난다고...
악착같이 일을 해야만 하고 편하게 공주처럼 살팔자가 못되니 누구에게 의지할 생각하지 말고 밝게 살으라고..
옷도 칙칙한 옷 입지 말고 화장도 곱게 하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그말을 들고난 후의 내 결론은 그랬다.
내가 정말 엄마처럼 살지 않게되려면 무턱대고 엄마를 거부할 일이 아닐 것이라는 것이다.
점쟁이가 나를 보고 느낀 것은 내가 살아오며 나무의 나이테처럼 내얼굴에 쌓아둔 표정 이나 말투, 옷차림에서 기인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내가 보고 자란 것들이 생각과 사고방식이라는 틀속에 부어져 내안에서 너울댈테니 말이다.

나는 엄마를 불쌍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사실은 그 핑계로 무턱대고 자기연민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마치 엄마에게 버림 받았다는 듯이 말이다.

정말 내가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다면 가장 먼저 할 일이 자기연민에서 벗어 나는 것이다.
내 삶의 방향이 앞으로 어디로 가게 될지 모르는 하루하루... 그자리에서 누군가를 원망하며 연민에 빠져 있는 일만은 그만하는 것! 그것이 나의 삶을 새로이 살게 하는 첫걸음이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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