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밤늦은 시각 혼자누워 티비를 보구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그 늦은 시각 번호를 알수 없는 전화를 받을까 말까 하다 받았더니...
"민형언니?"
한다.
"어... 난데... 누구?"
"언니... 나야.. 나 주희야"
주희.. 주희라.. 아무리 생각해도 내주변에 주희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없다.
직장에서도... 학교에서도 심지어 고등학교 중학교 시절에도 주희라는 이름을 가진이와 더불어 본적이 없다. 하물며 동생이라는데.. 주희라는 이름이 있을리 만무했다.
"누구? 누군데..? 누구세요... 죄송하지만... 주희라는 사람이 제주변이 없는데요?"
수화기속의 여인은 계속, 언니.. 나야 나 주희.. 나 몰라? 라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었다.
차츰 화가 나기 시작했다.
내이름도 알고 있다면 전혀 모르는 사람은 아닐텐데...
어디의 누구라던가.. 언제 만났던 누구라던가 생각의 근원이 될만한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그저 그녀는 주희라는 말만을 되풀이 하고 있었다...
그러다 결국 그녀는
언니가 나모른대... 하며 울먹이다가 결국 전화를 끊어버렸다.
한밤중에 걸려온, 상쾌하지 못한 전화로 어이없어 하고 있을즈음 다시 전화가 왔다...
엄마였다..
액정에 엄마의 전화번호가 찍히는 순간부터...
아... 그제서야 생각이났다.
조금 미안할 즈음 약간 취한 듯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다시금 짜증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오밤중에 다짜고짜 전화 해서 주희라고 하면 내가 어떻게 알아 20년이나 잊고 살았던 사람을..."
엄마에게 짜증을 한껏 내고 조금 미안한 엄마는 여기 오지 않겠냐고 조심 스럽게 물었고 난 오밤중에 가긴 어딜 가냐고 된소리를 내뱉었다.
그래 하며 가만히 전화를 끊는 엄마...
그리고 다시 20여년간 잊고 지냈던 이종사촌여동생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녀는 서럽게 울어대면서.. 언니.. 보고 싶었어 옛날 생각 많이나를 연발했다...
나는 그녀처럼 감동적이지도 않았고 예전일들이 그립지도 않았다..아니 되도록이면 그시절이 없었으면 또는 그시절 조금 다르게 살았더라면 하는 생각으로 원망만 늘어가는 날이 더 많았다.
그녀가 수화기를 붙잡고 혼자 떠드는 동안 다만 그시절의 일상들이 머리속을 뒤엎어 놓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학구열에 불탄 우리 부모님덕에 서울유학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모네 집에 더부살이를 하며 밥을 얻어 먹었다. 이모집에 무임승차한건 아니었고 당시 한 유지 하던 아버님이 이모댁의 모든 생활비를 비롯한 도우미아줌마까지 기타등등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니 이모로서도 손해나는 장사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 더부살이 가족의 눈치밥의 한계는 끝이 없었다.
이모네 막내 아들을 엎고 동네 한바퀴를 돌았던 저녁, 다음날 그꼴을 본 같은 반 남자놈이 식모라고 놀리는 통에 지우개를 던져서 복도에 나가 벌을 섰던 기억...
그리고.. 그녀 주희...
지금은 애엄마가 되어 성공한 엄마덕에 외제차를 몰고 다닌다는 그녀...
그아이가 나랑 몇살이나 차이 나는지 기억은 잘 안나지만 한 네다섯살쯤 차이가 나지 않나 싶다.
그 여인의 어린시절 만행은 정말 말로 다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곁방 살이 하느라 새우깡도 소리내서 씹어 먹지 못하고 입안에다 녹여 먹던 그때... 우리방을 드나들면서 갖은 못된짓을 저질렀던 그녀가 그리울리 없다.
숙제좀 하려고 바닥에 엎어져 있으면 책위에 앉아서 안내려 온다.
과자라도 먹고 있으면 자기 안주구 혼자 먹는다고 엄마한테 이르고...
친구랑 전화 통화좀 하면 저녁때 지아빠한테 내가 전화 많이 썼다고 고자질을 한다.
나에게 저녁식사를 차려주는 여인이 만약 우리 엄마고 그 아이가 내 친동생이었다면 난 절대 기죽을리 없이 죽도록 패줬을 것을...
우린 그러지 못했다.
어린 그아이는 힘없는 식민지 백성의 무력함에게 통치자의 권력이 어떤 힘을 발휘하게 되는지 제대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고등학교때 이모네 집을 나오고 이모는 이혼을 했다. 이모와도 사이가 좋지 않을 뿐더러 거기다 이혼을 하고 아이는 아빠가 부양하기로 했으니 그이후로 그녀를 만날일이 전혀 없었고 또 그녀는 내기억에서 조용히 사라져줌으로써 그나마 마지막 온정을 선사해주었다고 생각했다..
그런 그녀가...
그랬던 그녀가...
이혼후 아빠 밑에서 엄마가 그리울때마다 울었다는 신파를 던지며 옛날생각난다 언니... 하며 수화기를 붙잡고 서럽게 울어댔다.
그때.. 나는 그리 생각했다.
그래 나도 이제 옛날 생각이 난다... 너 ... 잡히믄 죽는다...
어쩌면 같이 수화기를 붙잡고 슬피울며 나도 네가 보고싶었다.. 라고 말해주길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해줬어야 했을까?
20년이나 지났고 또 난 서른을 훌쩍 넘었으며 그녀는 아이엄마가 되었고 얄밉기 그지 없던 이모가 가끔 궁금하기도 하다.. 그러니.. 함께 얼싸안고 슬피 울었어야 했을까...
난 어디서 부터 꼬였는지 모르겠지만 그시절이 그다지 용서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지난일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주문처럼 외워주는 사람들에게 묻고싶은 것이 많다.
정말 시간이 지나면 지난일이 아무것도 아닌것이 되는지...
분하고 화가 나는 지난일을 생각하며 웃을 수 있게 되려면 얼마나 더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
묻고 싶은 것이 너무 많다.
비도 오고... 마음이 조금 착잡하여 독자님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독이 가득 담긴 글을 쓰고야 말았다.
조금만 더 시간을 주면 다시 마녀부활이 있으리... ^^
"민형언니?"
한다.
"어... 난데... 누구?"
"언니... 나야.. 나 주희야"
주희.. 주희라.. 아무리 생각해도 내주변에 주희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없다.
직장에서도... 학교에서도 심지어 고등학교 중학교 시절에도 주희라는 이름을 가진이와 더불어 본적이 없다. 하물며 동생이라는데.. 주희라는 이름이 있을리 만무했다.
"누구? 누군데..? 누구세요... 죄송하지만... 주희라는 사람이 제주변이 없는데요?"
수화기속의 여인은 계속, 언니.. 나야 나 주희.. 나 몰라? 라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었다.
차츰 화가 나기 시작했다.
내이름도 알고 있다면 전혀 모르는 사람은 아닐텐데...
어디의 누구라던가.. 언제 만났던 누구라던가 생각의 근원이 될만한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그저 그녀는 주희라는 말만을 되풀이 하고 있었다...
그러다 결국 그녀는
언니가 나모른대... 하며 울먹이다가 결국 전화를 끊어버렸다.
한밤중에 걸려온, 상쾌하지 못한 전화로 어이없어 하고 있을즈음 다시 전화가 왔다...
엄마였다..
액정에 엄마의 전화번호가 찍히는 순간부터...
아... 그제서야 생각이났다.
조금 미안할 즈음 약간 취한 듯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다시금 짜증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오밤중에 다짜고짜 전화 해서 주희라고 하면 내가 어떻게 알아 20년이나 잊고 살았던 사람을..."
엄마에게 짜증을 한껏 내고 조금 미안한 엄마는 여기 오지 않겠냐고 조심 스럽게 물었고 난 오밤중에 가긴 어딜 가냐고 된소리를 내뱉었다.
그래 하며 가만히 전화를 끊는 엄마...
그리고 다시 20여년간 잊고 지냈던 이종사촌여동생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녀는 서럽게 울어대면서.. 언니.. 보고 싶었어 옛날 생각 많이나를 연발했다...
나는 그녀처럼 감동적이지도 않았고 예전일들이 그립지도 않았다..아니 되도록이면 그시절이 없었으면 또는 그시절 조금 다르게 살았더라면 하는 생각으로 원망만 늘어가는 날이 더 많았다.
그녀가 수화기를 붙잡고 혼자 떠드는 동안 다만 그시절의 일상들이 머리속을 뒤엎어 놓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학구열에 불탄 우리 부모님덕에 서울유학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모네 집에 더부살이를 하며 밥을 얻어 먹었다. 이모집에 무임승차한건 아니었고 당시 한 유지 하던 아버님이 이모댁의 모든 생활비를 비롯한 도우미아줌마까지 기타등등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니 이모로서도 손해나는 장사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 더부살이 가족의 눈치밥의 한계는 끝이 없었다.
이모네 막내 아들을 엎고 동네 한바퀴를 돌았던 저녁, 다음날 그꼴을 본 같은 반 남자놈이 식모라고 놀리는 통에 지우개를 던져서 복도에 나가 벌을 섰던 기억...
그리고.. 그녀 주희...
지금은 애엄마가 되어 성공한 엄마덕에 외제차를 몰고 다닌다는 그녀...
그아이가 나랑 몇살이나 차이 나는지 기억은 잘 안나지만 한 네다섯살쯤 차이가 나지 않나 싶다.
그 여인의 어린시절 만행은 정말 말로 다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곁방 살이 하느라 새우깡도 소리내서 씹어 먹지 못하고 입안에다 녹여 먹던 그때... 우리방을 드나들면서 갖은 못된짓을 저질렀던 그녀가 그리울리 없다.
숙제좀 하려고 바닥에 엎어져 있으면 책위에 앉아서 안내려 온다.
과자라도 먹고 있으면 자기 안주구 혼자 먹는다고 엄마한테 이르고...
친구랑 전화 통화좀 하면 저녁때 지아빠한테 내가 전화 많이 썼다고 고자질을 한다.
나에게 저녁식사를 차려주는 여인이 만약 우리 엄마고 그 아이가 내 친동생이었다면 난 절대 기죽을리 없이 죽도록 패줬을 것을...
우린 그러지 못했다.
어린 그아이는 힘없는 식민지 백성의 무력함에게 통치자의 권력이 어떤 힘을 발휘하게 되는지 제대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고등학교때 이모네 집을 나오고 이모는 이혼을 했다. 이모와도 사이가 좋지 않을 뿐더러 거기다 이혼을 하고 아이는 아빠가 부양하기로 했으니 그이후로 그녀를 만날일이 전혀 없었고 또 그녀는 내기억에서 조용히 사라져줌으로써 그나마 마지막 온정을 선사해주었다고 생각했다..
그런 그녀가...
그랬던 그녀가...
이혼후 아빠 밑에서 엄마가 그리울때마다 울었다는 신파를 던지며 옛날생각난다 언니... 하며 수화기를 붙잡고 서럽게 울어댔다.
그때.. 나는 그리 생각했다.
그래 나도 이제 옛날 생각이 난다... 너 ... 잡히믄 죽는다...
어쩌면 같이 수화기를 붙잡고 슬피울며 나도 네가 보고싶었다.. 라고 말해주길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해줬어야 했을까?
20년이나 지났고 또 난 서른을 훌쩍 넘었으며 그녀는 아이엄마가 되었고 얄밉기 그지 없던 이모가 가끔 궁금하기도 하다.. 그러니.. 함께 얼싸안고 슬피 울었어야 했을까...
난 어디서 부터 꼬였는지 모르겠지만 그시절이 그다지 용서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지난일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주문처럼 외워주는 사람들에게 묻고싶은 것이 많다.
정말 시간이 지나면 지난일이 아무것도 아닌것이 되는지...
분하고 화가 나는 지난일을 생각하며 웃을 수 있게 되려면 얼마나 더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
묻고 싶은 것이 너무 많다.
비도 오고... 마음이 조금 착잡하여 독자님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독이 가득 담긴 글을 쓰고야 말았다.
조금만 더 시간을 주면 다시 마녀부활이 있으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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