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통로봇의 노래

자기소개서

영혼기병깡통로봇 2003. 3. 27. 10:27
예전엔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정말 많이 써놓고 매일 매일 신문을 뒤적인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긴장된 적은 없었습니다. 어려운 결심을 하고, 쉬운 길을 놔두고 다시 험한 길을 선택한 탓인것 같습니다.

어린시절의 환경이나... 성장과정에 대한 장황한 설명보다 제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지금까지 일해왔고 또 앞으로 또 다른 환경에서 자신있게 우뚝 설 것인가에 대한 다짐을 들려 드리고 싶습니다. 많은 이력서를 보고 많은 사람을 만나봤지만 이력서에서 한사람의 진심을 발견하기는 참 힘든 것 같습니다.
병이 있는 사람처럼 마치 내가 하는 일에 대해 " 야 ... 넌 정말 대단하다... 너 없으면 우린 어떻게 됐을까" 라는 감탄과 칭찬을 들어야만 내가 일을 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어쩌다 한번 실패를 겪게 될때마다 남 모르게 좌절을 겪기도 했도 다시 한번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어서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됩니다.
인생이란건 이렇게 저렇게 죽을때 까지 배우는 것이 밥먹는 일보다 더 많다고 느껴지기도 합니다.

철학을 공부하고 컴퓨터로 일을 합니다.
하지만 그 일의 바탕엔 철학이 있습니다.
누구나 있습니다. 철학이란게 그런것이니까 말입니다.
처음 컴퓨터를 배운것은 특이하게도 하드웨어 부터였습니다. 조립하고, 부수고 소프트웨어를 배우고... 그 안에서도 사람들의 생각이란게 이렇게 위대하고 어찌보면 깡통같은 것을 만들어냈구나 생각하게 합니다.
디자인을 할때도 그렇습니다.
컨셉이라는 말 많이 합니다. 그것도 우리의 의식속에 있는 것이고 그것이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비주얼의 형태로 드러납니다.
그러나 사고하지 않는 자에게 새로운 디자인이 얻어지지 않으며 기술적인 부족으로도 늘 벽에 부딪히곤 합니다.

앞만 보고 달려왔던 저에게 뒤를 돌아 보게 해주시고, 새로운 일을 찾는 저를 붙잡지 않고 이해해 주셨전 전 직장 상사와 동료들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앞으로도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아직 작은방의 짐을 정리하지 못했다.
매일매일 혼자 있는 집이 새집이고 내집이면 뭐할까 하는 생각에 잠깐 잠겨 있던 아침..
문득 30을 넘기던 해에 써놓았던 자기소개서를 보게 되었다.
갓 대학을 졸업했을때 쓰던 구구절절한 자기소개서에 비해서 다소 군더더기 없는 진실이 보인다.
그리고 진실이라는 이름아래 약간은 오만하고 자존심높은 자기소개서라는 느낌도 든다.

"내가 지금 직장을 구하고 있으나 내가 부족해서도 아니고 실패해서도 아니다. 단지 또 다른 나의 출발점을 찾아나가기 위해서다. 구구절절 성장과정 따윈 설명하지 않겠다.. 일단 믿어달라... 난 나의 소신대로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했다고 믿는다..."

요약하면 대충 이런 의미였을뿐 누군가를 감동시키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아직은 정리가 덜된 새집에 앉아서 몇년 지난 자기소개서를 들추는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실은 어제 아주 신이 나서 재밌는 이사일기를 썼었다.
하지만 돌아보면 새집이 마냥 신나는 일도 아니다.
조금은 뒤를 돌아봐야겠다. 바닥난 통장도 살펴야 하고 지금과는 사뭇 다른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야겠다.

앞만 보고 달리던 스스로에게 브레이크를 걸었던 서른살의 어느날처럼...

지금 건넌방의 짐들을 풀지 못한채 잠시 상념에 잠겨본다.
그래...또 다른 환경에서 자신있게 우뚝서서.. 또다시 시작하는거다. 다시 시작하기 위해 꿈틀거렸던 새봄...

이제 겨우 물꼬를 트는 개나리처럼 또다시 이곳에서 꿈틀거려 보는 그런 아침을 맞이해봐야 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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