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통로봇의 노래

다시 한번 찾아 오게 될지 모를 이별을 준비하며..

영혼기병깡통로봇 2002. 8. 16. 22:03
그 친구를 만난지 꼭 7개월 하고 3일이 더 지났다.

누굴 만나서 숫자를 세어보기도 처음이거니와 마음안에 소용돌이치던 단어를 내가 먼저 꺼내어 보기도 처음이었다.

처음이라는 사실이 놀라운건 아니지만... 술기운을 빌어 내뱉은 말인지라... 그리고 헤어진 그 녀석에 대한 기억을 하직도 아파했던 주제에 벌어진 일이라 좀 당황스럽다.

술을 많이 마신 탓이었다.
필름이 끊긴 와중에 내가 기억나는 몇마디말들은...

- 너무 좋아서...
- 나, 나쁜넘이야...
- 아냐.. 당신 저은 넘이야....
- ....
- 내일 아침에 눈뜨면 이게 다 꿈일까봐.. 그게 너무 마음아픈데... 지금 내가 꿈꾸고 있는거면 어떡하지..
(ㅡ.ㅡ;; 왜 이딴 대사가 기억나는거냐 대체 ㅡ.ㅡ;;;)
어떻게 해서 그런 얘기가 시작된건지도 모르겠고... 그외에 어떤 대사를 읊어 댔는지도 전혀 기억이 안난다. 아뭏든 민망하고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지못하겠다고 생각되는 몇일간..

그날 이후로 그를 조금씩 차지해 간다.

니가 먼저 좋아한다고 했으니까.. 라고 놀리는 그의 한마디조차 싫지 않다.
정말.. 내가 좋아한다는 말을 했던가... 전혀 기억은 안나지만... 그래서 이자식이 거짓말 하는거 아냐... ㅡ.ㅡ+ 의심도 하지만...그러면 좀 어떠랴..

나도 한번쯤 내가 갖고 싶은것... 먼저 탐해보고 싶었다 보다. 그리고 이 지긋지긋한 시린이별에서 벗어나고자 혼자 발악하는 것보다 훨씬 따뜻해 질것만 같다. 내가 원하는 것은 아마도... 마음을 덥혀줄 누군가가 곁에 있어주는것... 그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와 얼굴을 마주대하는 일...
매일 어색하고... 또 어색하다.
그의 시니컬한 말투에 늘 상처받으면서도...
그리고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임을 알면서도...
그래도 한번쯤 그렇게 가자 싶다.
어쨋든... 나는 또 그렇게 새로운 두근거림을 선택하기로 한 것이다.

그에 대한 나의 짧은 소견을 피력하자면...
그는.. 단순함의 미학! 그... 극치다...
어린애같이 단순하고 간결한 사람... 그래서 더욱
함부로 하기 힘든 한살 어린 친구다...
아마도.. 요 아래..."내 남자친구의 소개팅"이란 글을 읽으셨다면 짐작하시겠지만...^^
맞다.. 그녀석이다.

더불어 그의 매력은 독특한 "싸가지 없음!" 그것이다.

31년을 살아 오는 동안.. 단 한번도 곁에 둔적이 없는 캐릭터다.
나의 측근들의 캐릭터... 학교 다닐땐... 학생회와 편집부를 오가면서 세미나와 술을 통해 얻어지는 존재감을 위하여, 졸업하면서는 피터지는 직장생활의 성취감과 명예로운 자신감을 위하여 만나는 사람들이었고 그런 일상이었다.
그에 비하면 "싸가지 없는 시니컬한 캐릭터"는 정말 내 주변에 존재해서는 안되는 인물이다.
게다가 그는 술과 담배를 끔찍하게 혐오하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년간의 직장생활동안 친구를 만나기 위해 일을 뒷전으로 미뤘던 적이 없던 내가...그와 함께 퇴근하기 위해 하던 일을 때려치고 칼퇴근을 하는 몇달을 보냈던...이유...
그에게 마음이 가는 이유...

그 근본적인 원인은 내가 세상에게 좀더 너그러워져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픈만큼 성숙해진다고 하지 않았던가..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을 이해하고... 나 아닌 다른 사람을 받아 들이는 따뜻한 마음을 이제서야 배워버린 것 같다.

그전에 그를 만났더라면 그의 "시니컬한 싸가지 없음"속에서 따뜻한 인간을 발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랬다...
그의 표정 뒤에.. 따뜻한 사람을 발견했었다.
콜롬버스의 발견보다 더 놀랍고 신비로운 경험이었다.
그리고 그에게 마음이 조금씩... 조금씩.. 다가 가는 거였다.
하하.. 살다 보니 이런 일도 다 있네...

처음 그와 함께 일했던 3개월쯤 지났을때였나...
직원 인사고과 평가서를 제출해야 하는 시기가 있었다.
난.. 그에 대한 평가서에 이렇게 썼었더랬다.
"사회성 부족... 몹시 개인적임.. 장점이라고는 없는 인간...하지만 개성있고 창의적이며 자신의 분야에 대한 열정이 있음"

틀리진 않았다. ^^
하지만... 그는 최소한 비열하진 않다.
사람좋은 웃음으로 성격좋다는 소리를 듣지만 실은 아주 비열한 얼굴을 숨기고 있는 나에 비하면 그는 차라리 영혼이 맑은 쪽에 속했다.

그는 늘 자기 자신에 대해 얘기할때면.. 싸가지 없고 나쁜넘이야... 난 날 잘알아... 라고 말한다.
맞다.. 그럴지도 모른다.
나도 예전에 그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내게 착하다고 말해주던 어떤 착한 놈에게
난 인간성 더러운 인간이라고 말했던 기억을 더듬고 나니 그의 "나쁜놈"이라는 대사가 예사롭진 않다.
나역시 진심이었고.. 나에 대한 솔직한 평가 였으니까 말이다.
착하다고 믿었던 착한 녀석의 오해가.. 3년쯤 지난 후에 "알고 보니 아니었다"는 한마디로 이별을 고하게 했으니 말이다.

사람은 참 상대적인 인격을 지니게 되나 보다.
아니면 내가 강한 사람에게 약하고 약한 사람에게 강한... 전형적인 소인배의 성향을 가져서 인지도 모르지만 그 착한 녀석에게 한 없이 잔인하게 굴었던 나는... 이 싸가지 없는 녀석에게 만큼은 숨소리도 함부로 내지 못하겠다.
이 바보...
역시.. 나는 오늘도 자연내숭모드에 돌입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그런 일들은 다 모르겠다.
혼자 가슴앓지도 않을 것이다.
마음속에 못다한 말을 담아 두지도 않을 것이다.

언젠가 이 만남이 또다시 이별을 맞이 하게 될때면 아주 차갑게... 멋지게...
그래.. 잘가라..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후회없이 최선을 다할 것이다.
후회없이... 미련도 남김 없이...

오늘은 그런 날이다.
나에게 그 약속을 하는 날이다.

바보 같이 기죽지도 말고
지나치게 배려하느라 자존심 상하지도 말고
어색하지 않을 만큼 뻔뻔해지자..
싸우고 싶을때 눈치보지 말고...고상한척 하며 조용히 말할 필요도 없다. 두려워하지 말자.
애써 감정 숨기고 차분히 말한다고 해서 내마음을 이해해주지도 않을 뿐더러...
떠날 사람이면 내가 아무리 착한척 다 받아줘도 떠날때 되면 다 떠날 터이니...

잠시잠깐 친구로 남기로 혼자 결심 했다가... 내가 기억에도 없는 술취한 밤에 혼자 고백했다가... 북과 장구를 마구 두드리던 나... 이게 꿈일까봐 두려웠던 그 잠깐의 기억...

아.. 그저 지금을 맘껏 음미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