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엄마에게 매번 화를 낸다.
김장 하지 말라고... 안먹을 거라고... 종갓집 김치가 제일 맛있다고...
소통의 오류를 바로잡는 일은 나의 몫이다.
남편은 장모님의 건강을, 고생을... 온마음을 다해 지독하게 격정적으로 걱정하고 있다.
엄마는 음... 말해 뭐하겠는가...
사위놈이 종갓집 김치가 맛있다는데...
사위의 거친 마음은 왠만해선 장모님에게 전달 되기 힘들다.
그 와중에 엄마는 올해 김장에 영혼을 쓸어 담았다.
언제 부턴가 시작된 일인데, 엄마는 아마도 마지막을 준비 하는 일에 마지막을 다 바칠 모양이었다.
평소의 엄마는 실력만 믿고 살았다. 티비에나 나오는 멋내기를 따라하지 않았다.
육수를 내서 풀을 쑨다던가, 사과나 홍시로 단맛을 낸다던가... 이건 다 실력 없는 것들이 하는 짓이었다. 엄마 입장에선..
엄마의 레어템은 사실,
7년 동안 마당에 묵혀 뒀다가 지난 가을에 걸러낸 깡치액젓이라던가,
태안의 고모 할머님을 통해 어렵게 구한 "진짜배기" 천일염과 15년 묵힌 매실액 같은 것과
곰팡이 가득한 창고에서 이날만 기다리며 잠자던 50년 된 갈바구니 같은 것들인데
마당 한가운데에 갈바구니를 던져 놓고 절인 배추를 척척 얹어 놓으면
나도 일부 한 50년 동안 엄마에게 중독되었겠지만... 그건 참 멋지다.
그랬지만.. 올해 엄마는
티비에나 나오는 그 모든 실력없는 것들의 불량한 부지런을 장착했다.
액젓은 조금만 넣고 새우젓으로 간을 했다. 짜지 않게,
매실청은 조금만 넣고 사과, 배, 양파 기타 등등을 갈아 넣었다. 너무 달지 않게,
옆집 사는 선장님네 배에서 직접 고른 디포리와 꼴뚜기, 다시마, 새우, 파뿌리, 양파껍질을 푹푹 삶은 육수로 풀을 쑤고
맵지 않고 색이 아주 예쁜 청양초를 잘 말려서 씨를 분리하고 곱고 고운 붉은 색을 내었다.
그래도 미원은 포기하지 못했다.
뭔가 맛이 아쉬울 때 엄마가 미원을 안넣었다고 하길래...
아놔.. 무조건 넣으라고 했다.
아니... 맛이 없다고 하기엔 매우 맛있고.. 맛이 있다고 하기엔 뭔가 건조하고 단단한 고급 아파트 같았던 맛이
미원 한수저 넣었더니 에버렌드 T익스프레스를 타고 3단 높이에서 하강하는 짜릿한 맛으로 폭발하는데.. 어쩌란 말이야..
올해도 부지런히 새벽 4시 부터 움직여서 이렇게 미션 클리어 하고 서울로 복귀했다.
엄마가 올해 김장에 영혼을 쏟아 넣은 것은 자꾸만 엄마가..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는 조급한 마음임을 알기에
엄마를 말리지 못했다.
엄마의 자개 장농도 어서 가져 가라 하시고
아버지가 쓰시던 벼루와 60년된 가위 같은 것들을 내가 쓰고 싶다 하면 반가워라 하시고 뭘 자꾸 꺼내 놓는다.
서랍 속에 꼭꼭 숨겨 놓았던 금반지 들을 꺼내 3남매에게 골고루 나눠 주시더니
다음 단계는 엄마 없으면 먹지 못할 것들을 준비 하는 일이다.
세상 어디서도 구하지 못할 엄마 간장, 엄마고추장, 엄마 조미료를 꼼꼼히 3등분 해서 언니와 동생에게 주시고
나에게는 그 두배 만큼을 주신다. 시어머니 가져다 주라고...
맥문동을 말려서 가루를 낸다거나, 봄에는 쑥을 뜯어다 방앗간에 가서 떡을 해서 열려 두었다가 보내준다거나
은행가루, 양파껍질가루, 청국장가루, 더덕도라지가루... 가루 가루 가루...
오래 두고 먹어도 되는 것들이 뭐가 있나... 그 연구 하느라 엄마의 하루가 저무는 건 아닐까
슬프다고 하기엔 어쩐지 두려운, 폭탄주머니 처럼 냉장고 바닥에 가득 쌓인 이 아이들을 끌어 안고
나는 이제 화를 낼 수도 없다.
쓸데 없는 소리 하지 말고 맛난거나 해드시라고 하고 싶지만...
왠지 그랬다가 후회할 것 같아서 나도 자꾸만 준비를 하게 된다.
김장만 끝나면 앓아 눕는 엄마에게 보통은 내년엔 김장 하지 말자고 할텐데
내년엔 내가 일찍 내려가서 배추 절이는 것 부터 김장하는 걸 배워야 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언니에게도 남동생에게도 보내주겠다고...
엄마가 없으면... 어떡하지?
이 한줄을 쓰고도 눈물이 나는데... 정말로 없으면 어떡하나...
철없는 남편은 김장 안먹겠다는 소리나 하고..
엄마는 억장이 무너지고.... 나는 하늘이 무너지고... 엄마의 이 마음을 남편에게 설명하는건 너무 바보 같고...
이렇게 억지를 쓰는 것으로 내년에도 내 후년에도 그리고 10년 후에도 엄마가 김장을 할 수만 있다면야...
내나이 60에도 남편은 엄마에게 또 쉰소리를 하고
그러면 엄마는, 김장도 안하면 엄마 그냥 죽으라는 소리냐고 화를 내시고
그럴 수만 있다면
그 바램 하나만 들어 주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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