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통로봇의 노래

이죽일놈의 사람...

영혼기병깡통로봇 2009. 2. 18. 00:54

함께 해주길 바란 것은 사실이나 끝까지 본인이 참지 못하겠다고 하면 받아들일 수 밖에...

원망할 이유도 없고 미워할 이유도 없었다.

단지... 미안할 뿐이었다.

원망스럽고 안타깝고 서럽고... 미안하고... 지켜주지 못해서 죽도록 미안할 뿐이었다.

 

새로 온 부장은 성질머리가 괴팍한데다가 사람들이 지각이 잦고 헤이해져 있는 것이 못내 마음에 안들었던 것 같다.

 

지금은 우리보다 더 지각이 잦는걸 보면 원래 시간 관념이 철저한 사람이었다기 보다 그 당시에 사람들의 헤이해진 마음을 바로잡아야 겠다는 단호한 결심을 했고 또 새로 윗사람이 왔는데 예의 차리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가시가 날카롭게 돋아 있는 상태였던 것 같다.

게다가 업무의 특성상, 그리고 내가 사람을 다루는 특성에 대해 이전 부장이 이미 인정해 주고 있던 터라 아무 생각 없이 아이들의 근무 태도에 대해 별 구속을 하지 않았기에 특히나 우리 팀에 대한 미운털이 산처럼 쌓여 있었던 모양이다.

 

밤을 새워 일을 했는데도 밥먹었냐고 묻기는 커녕 수고했단 말한 마디 없이 아이들이 다 보는 자리에서 다른팀 아이들에게, 그것도 그아이들이 일처리를 잘 못해서 독박쓰느라 눈물콧물 흘리게 했던 그아이들에게 가서 수고했다고 어깨를 두드리는 유치하기 그지 없는 행태를 보이기 까지 했다.

그사람이 어떤 사람이건 상관은 없다. 그냥 그런 사람이구나 인정하고 맞췄어야 했는데 참... 못했다. 나쁜 사람은 아니나 우리와는 맞지 않는 사람일 뿐이었다.

그리고 입버릇처럼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는 농담을 해대던 하루 하루...

 

그리고 송년회가 많은 12월의 어느날

다른 팀장들이 모두 사정이 있어서 늦는다는 문자를 보내왔고 나는 그 전날 새로온 부장 때문에 도저히 알 못하겠다며 그만두겠다고 통보를 해온 최과장을 붙잡고 새벽까지 술을 먹느라 아침잠이 늦었다. 

놀란 마음에 뛰어 나오느라 연락을 미처 못했고 당연히 나한테 붙잡혀서 새벽에 귀가한 최과장도 그날 따라 지각이었다.

아무튼 대대적으로 아침나절 부터 사무실이 텅비어 있었다.

본사는 구조조정 때문에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는데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있었던 터라 송년회가 잦은 시기... 늘 이시기에는 있는 일이었으니... 그러려니... 하다가

 

그래서 타겟이 된 것이 하필이면 최과장이었다.

내가 없는 아침에 새로온 부장은 최과장을 불러서 사람들이 모두 있는 그 뻥뚤린 사무실에서 최과장을 세워놓고

회사가 장난이야... 이렇게 늦을 거면 회사를 나오지 마라... 9시 넘을 거 같으면 차라리 나오지 마... 회사 장난하러 나와....

특유의 쌍시옷을 덛붙여가며 소리를 질러댄 모양이었다. 한참동안을...

나는 듣지 못했다.

그리고 나에게 향할 화살이 최과장에게 갔음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내탓이었지만

나는 이 상황에 그에게 어떻게 해줘야 할 지를 잘 몰랐다.

 

설득도 하고 화도내고... 같이 욕도 하고...

같이 나가자고 체념도 하다가

시간을 벌어 보면 어떨까 싶기도 했다가... 그렇게 시간만 벌어야 겠다 밖에 없었나보다.

무슨말을 해도 귀에 들리지 않는 것도 같았다.

이왕 이렇게 된거 본인이 그만두면 ... 어쩌면 구조조정에서 밀려날 후배를 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나름 기특하지만 알고보면 멍청한 생각을 하는 듯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회사의 구조조정은 급물살을 타서 최과장이 그만두겠다고 버티는 일과 관계 없이

사람들을 내보내는 일이 물위로 고개를 내밀더니 급기야 우리팀에까지 통보가 왔다.

내손으로 결국 아이들 몇을 집에 보내야 했다.

최과장이 그만 두는 것과는 정말 관계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힘들고 우울한 날들을 누구와 상의할 수도 없는 시기였고... 나름 버티기나 하는 처지인 내가 한심해서

그냥 보내줘야 겠다라고 마음 먹는 순간

 

최과장의 반응이 이상 했다.

아마... 내가 너무 시간을 끌어서 그랬던 건가... 뭔가 실수를 한 건가...

 

내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는 채 또 시간이 흘러

 

송별회 하는 날

같이한 3년의 시간이 미안하고 또 안타까운 마음에 사비를 털어 선물을 사고

술이 거나하게 들어가자 그아이가 말했다

 

다시는 내얼굴을 보지 않으려고 했다고...

자기가 뭘 잘못했냐고...

 

갑자기 억장이 무너져서 제대로 말도 못하고 울어버려서... 참 지금 생각해도 쪽팔림이 하늘을 찌르지만

 

억울한 마음이 동해서 한동안은

난 뭘 잘못했을까... 했었다.

버림 받는일이 익숙해지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마는

매번.. 가슴이 시리기도 했다.

 

남은 사람들에게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어째... 그리 사람보는 눈이 없냐고.. 그들은 너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자식들... 그게 아닌데...

그 아이들은 모를 것이다. 우리가 지나온 시간이 가진 힘을...

좋아하지야 않겠지... 좋아해달라 한적도 없다.

그러나

최과장... 이대리... 그리고 허양... 그아이들의 서운한 마음을 알 것도 같다.

내가 힘들어도 조금더 둘러보고 전과 똑같이 든든하게 웃어줬어야 했는데

내가 내 마음 힘든일에 얼굴을 묻느라

짧은 시간 그들을 돌보는 일을 잊어서.. 그랬다.

그 힘든 마음을 내가 보듬어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내가 사람보는 눈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람을 사귀는 힘이 없어서 그렇다.

사람을 얻는 재주가 없어서...

끝까지 힘을 내지 못하고 내가 주저 앉아서 그렇다.

이젠 일어날 힘이 없다.

일어날 의지라는 것도 없는 것 같아서 남은 사람에게 또 미안하다.

 

새로온 부장에게 우리가 타겟이 된 것은 이해한다. 이유도 알겠다.

그러나 본인이 실수 한 일에 대해서는 언젠가는... 언젠가는 그에게 사과 받는 일을

끝내는 해내야 겠다고 마음 먹을 뿐...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들에게는 힘들어도 웃어 주는 일 따위는

아마 앞으로도 줄곧 없을 것이다.

 

떠나는 날을 생각하는 일이 더 많아 진다.

점점더 많아 지다가 어느날을 그생각 뿐이겠지

나도 아이들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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