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통로봇의 노래

길에게 길을 묻다.

영혼기병깡통로봇 2009. 1. 2. 14:05

새해 첫출근 부터
따뜻한 버스에 담겨지다 보니 잠에 취한 몰골로
2정거장이나 지나서 내리고 말았다.
갈아타고 되돌아가서 또 한 번 갈아탈 생각을 하니
새해 벽두부터 고되면 1년 내내 고될거라는 다소 억지스러운 결론을 혼자 내리고는
택시를 탄다.

택시 기사가 나에게 물었다.
어떤 길로 가실 거에요...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택시 기사가 택시를 운전 하는 것은 단지
내 두 다리가 갖는 물리적 능력을 대신 하는 것이 아니라
좀더 쉽게, 빨리, 편하게 목적지까지 안내 하는 역할까지가 포함 된 서비스 비용이었으면 한다.

하기사 택시기사도 장단 맞추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나처럼 귀차니즘이 뼈속까지 일렁이는 사람이거나 혹은
대대손손물려받은 유전적 결함 길치적 문제 때문에 원하는 길 따위는 없는 인간만 있는게 아니니
전천후 서비스 정신의 발휘를 이해하지 못하고
니맘대로 막히는 길로 골라서 가냐는 역정을 내는 인간도 더러 있을 것이다.

그래도 기사의 입장을 다 이해하긴 어렵다.
만약 그런 문제였다면 질문이 또 달라졌으면 더 좋았지 않겠냐는 생각이다.

어떤 길로 가실거에요

대신
어떤, 어떤 길이 있는데 주로 어디로 다니셨어요?
또는...
어떤 길로 가면 될 것 같은데 괜찮겠어요?
그것도 아니면 잘 다니는 길이 있으면 얘기 해주세요..

얘길 하고 보니
결국 사소한 어휘 선택의 문제인가 하는 민망한 생각이 들긴 하나

어떤길로 갈까요?

라는 말과 어떤길로 가실거에요.. 가 주는 어감의 차이가 나에게는 실로 크고도 크다.

난 4차원적 소심  OA형이니까..

인간관계의 대부분은 사소한 어휘 선택에서
결정지어지는 것이 많고 보면 중요하고 또 중요한 일이다.

더우기 새해 첫날이고 보니 더 마음에서 스멀스멀  오만가지 지나간 시츄에이션이 강림하면서
짜증이 밀려 왔다.

팀장님 기안서 어떻게 쓸까요?
팀장님 이벤트 먼저 할지 상품오픈 먼저 할지 알려 주세요
팀장님 메뉴 그루핑 먼저 바꿔야 할지 내용 먼저 정해야 할지 알려주셔야죠..
팀장님 이거 언제 하면 되요...

나는 아는 것이 별로 없다.
나의 팀장도 아마 그럴 것이다.
나의 팀원들도 그닥 아는게 많지 않을 것이다.


그 길에 대한 물음을 누가 할 것인지
물음에 대한 답을 또 누가 할 것인지 조차
나에겐 답이 없다.

새해 벽두 부터 원하는 길에 대한 답변을
재촉받고 보니 당황 스럽기 짝이 없었다.

길밖에 서성이는 저 많은 사람들은
원하는 길을 대체적으로 알고 있는 걸까

어떤 길로 갈까요...
예?

너... 어디로 갈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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