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비가 오고 기온이 뚝떨어지던 지난 금요일, 회사로 가는 버스가 미친듯이 막히고 지랄이었다.
버스 안에 억류된 몇몇 성실한 호모샐러리우스들이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민생고의 압박을 떨쳐내지 못하고 핸드폰 바라보며 동동거릴때..
깡통여사... 회사에 전화 한통 때리기로 작정한다. 뭐라고 얘기 해야 하나... 3월 첫날인데...
"얘들아 나 오늘 연차 쓰고 하루 쉴란다. 아프진 않다. 일들 잘 마무리하고 주말 잘 보내려무나... 이만 총총" 브라보...
살다보면 머리속에 맺힌 글자들을 주루룩 엮어서 입으로 흘려 보냈더니 혓바닥 말기도 못하는, 둔탄한 열성 유전자의 혀가 지멋대로 나불거리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녀석, 마음을 엿들었나 보다.
꽃잎처럼 우산이 바람에 나부끼는 금요일 아침, 상쾌한 일탈의 이름으로 발길을 향한 곳은 동대문 종합시장의 원단상가.. 도통 어디 쓰이는지 알 수도 없을 것 같은 수 많은 단추와 오메 단풍들겄네 스러운 원단을 헤치다 보면 어디에 있었는지도 몰랐던 행복이 보푸라기처럼 몽글 몽글 드러나는 것을 느낀다.
행복이라... 금요일 아침에 문득 공기탁한 원단시장 골목안에서 만지기에는 낯부끄러운 단어다. 차라리 이 짓을 하면 행복할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걸 잘해야 되게 된다거나, 이게 돈으로 치환되어 남들 보다 10원 덜 받는게 자존심 상하는 상황이 되면 그 역시 행복은 변기물 빠져 나가듯 호로록 자취를 감출게 뻔하다고 생각한다.
이 가벼운 기분의 정체가 행복인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숨쉬기 운동이 내안에서 이루어 지듯 평화로운 일상에서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몽글몽글 작은 것들이 만들어 지고 사라져 갔다. 코로도 숨을 쉬고 입으로도 숨을 쉬고 잘 느끼지는 못하지만 피부의 수많은 땀구멍으로도 숨을 쉬지만 모르는 것처럼...
살아가는데 필요한 만큼의 숨 정도야 축농증이나 기관지염으로 고생은 되어도 찢어진 가죽 사이 사이로 그럭 저럭 해결하겠지만 그래도 숨이 잘 쉬어지지 않을때가 있다.
태풍이 몰아치는 바다 한가운데서 바람을 마주하고 서있을때 상실의 슬픔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을때 절망과 분노에 유린당한 인생에 짓눌렸을때
그리고... 늪에 빠진 것처럼 앞이 보이지 않는데 내 인생의 표면은 안정과 평화의 얼굴을 하고 있을때
숨쉬고 싶었다.
숨어 있는 행복이 눈앞에 나타나지 않는 탓일거라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꼭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말과 동의어는 아닐 것이다. 다만 숨어 있는 행복을 찾는 일이라는 것이 일상에 스러져 가는 서글픈 나를, 그래서 가끔 물이 되어 밖으로 나오지도 못한채 심장근처가 울렁거리는 나를, 조금 가볍게 해주는 일과 같은 말이라면
숨을 쉴 수 있게 하는 일이, 일상을 벗어나고 또는 고작 동대문의 원단 먼지속을 헤매는 일이 행복의 또다른 이름일거라고 나 혼자 비오는 금요일을 기특해 했더랬다.
버나드쇼가 자신의 묘비명에 새긴 글이 광고의 소재가 되었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죽음에 앞서 인생을 응시하게 되는 순간에 차분히, 쿨하게 죽을 준비를 하려면 행복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기는 다소 민망하니 "행복을 찾아서"는 윌에게 대신 부탁하고
적어도 마음이 외치는 소리에 정직하게 반응하다 죽는게 좋지 않을까...라고 조금 생각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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