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통로봇의 노래

관계의 끝에서 끝으로

영혼기병깡통로봇 2007. 2. 20. 09:57
회사는 어수선한 와중에도
인사고과를 위한 평가가 진행되고 있다.
한해의 행적을 뒤지다 보면
대체 목표지점이 어디였는지
그놈의 목표지점이 있기나 했던건지
잃어버리게 된 시점이 어디였는지 하는 생각으로
허탈감이 쌓인다.

녀석들은 용감하게 업적을 줄줄이 써놓고는
정작 말을 해보라고 하면 우물쭈물 말을 못한다.
어떤 녀석은 수십장의 작업물들을 갈무리 해오는가 하면
어떤 녀석은 없음, 없음, 없음...
건의사항도 없음...
이 두음절의 단어안에 숨겨진 행간을
다 헤아려야 하는 일로 마음이 무겁다.

1년동안 방치해뒀던 팀원들간에 연말을 즈음하여
분열과 충돌로 불꽃이 일었다.

조선왕독살사건이라는 책을 읽다가 잠깐 생각에 잠겼다.
의심많고 변덕이 심했던 선조를 비롯하여 리더쉽도 없이 똥고집만 많고 심약했던
수 많은 왕들이 백성들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들었던가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러고 보면 리더쉽을 발휘하지 못하는 소심한 사람이 리더가 되었을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이 작은 조직에서도 깨닫게 되는 바가 크다.

나이가 들면 조금 더 알아지게 되고 조금 더 이해하게 되지만
반대로 노엽지 않아도 되는 일로 노여워지는
일이 많다. 사소한 오해로 화투패 나뉘듯 패가 갈리고
심지어는 다툼이 없는 평화의 얼굴을 하고는
소리 없이 서로에게 등을 지기도 했다.
그 사건들의 중심에 내가 있기도 했다.
처신을 바로 하지 못해서 생긴일인지라 나름 반성중이면서도
난관을 극복하는 일에 여전히 무책임한 와중이다.

둘이거나 셋이거나 천명이거나..
사람과 사람사이에 벌어지는 일은 대동 소이하다.
사람마다 살아온 환경이 다른 만큼 각각의 성향도 다르다는
사실을 우린 모두 잘 알고 있다. 잘 받아 들이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일이 없을때는 문제 되지 않았던 일들이
사소한 사건 하나가 상처가 되고
그 말들이 말을 타고 흐르다 보면
생각과 환경도 관계의 장애가 된다.

그들이 머리속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만 같다.
무슨 생각인지 다 알 것 같으면서도 그래서
그다음에 내가 해야 할 일이 뭔지 잘 모를 때가 있다.
녀석들에게 주저리 주저리 얘길 해서 너희 편이야~ 라고 알게 해주는게 좋을지
끄덕끄덕 해주는게 좋을지..
아니면 무슨 결론을 내려 줘서 속시원하게
길을 열어주는게 좋지 않을까 하는 강박에 시달리기도 한다.
사실 팀원들에게 내가 무엇을 해줘야 하는지 모르지는 않았다.
내가 할일이란 그저
끄덕이거나 추임새를 넣어주거나 더 많은 말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일일텐데
나는 그네들과 대화하기가 겁이 났다.

금성여자 화성남자던가 하는 책에서
아직도 기억나는 한구절은
남자가 대화를 두려워 하는 이유는 결론을 내려줘야 한다는 강박 때문이라고 한다.
여자와 남자의 거리란 그런 거구나.. 하고
깨닫게 했던 구절이었다.
아닌데.. 여자는 그저 들어 주고 끄덕여 주길 바랄 뿐인데 말이다.

나 역시 늘 내가 뭔가를 해결해야 하는 부담감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았다.
아무것도 해주지 못해서 불안하고
저들이 나를 필요로 하지 않을까봐 불안하고
나에게 원하는게 많은데 아무도 말하지 않는 다는 것 때문에 불안해 하고 있는 것 같다.
근본적으로는 자신감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하지만그것 역시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중 하나였다.

돌아보건대 내가 진실로 무엇인가를 원하면서 직장 생활을 했던 것 같지는 않다.
사회적인 성공이나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나만의 아우라를 형성하는 것 보다
그저 쪽팔리지 않게 살자고만 생각해왔다.

내가 하는 일에, 내가 해온일에 대해 나스스로 부끄럽지 않도록,
내가 없는 빈자리가 아쉬워 지게 되어
이자리를 떠나도 후회하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 뿐이었다.

아마 내가 의사가 되었거나 변호사가 되었어도 마찬가지 였을 것이다.
종합병원의 과장이 되고 병원장이 되어 권세를 휘어잡는 거시적인 인생관 따위는
애초에 없었을게 분명하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나는 내스스로의 인생관이라는 이름으로 무관심 했거나
무책임 했던거였다.

다만 우린 좀더 서로에게 열정적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들이 원하는건 나의 입에서 나오는 결론보다
그들의 삶의 대부분을 차지 하는 직장에서 그래도 구심점을 잡고 있는
누군가를 통해 느껴지는 사소한 에너지...
그걸 원하고 있는게 아닐까 싶다.

내가 얼만큼의 진도를 나가게 될지는 모르겠다.
지금도 방법은 모르고 있는게 분명하다.
그러나 일단은 내딛기로 한다.

못할 일이라는게 없다고 믿는다.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같은 것이다.
그래서 버텨 올 수 있었던 나의 방식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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