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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은가구 재탕하기 - 매일 새로 시작하는 삶을 위하여

영혼기병깡통로봇 2006. 10. 17. 01:04
벽에 걸린 달력은 숫자만 세어도 날이 차고 달이 더해지는데
이놈의 통장 잔고는 매일 들여다 봐도 터럭만큼도 변할 줄을 모른다.
날이면 날마다 인터넷을 뒤지고 이것 저것 따져보아도 각이 안나오는 통장 잔고와
잔고 만큼이나 바람빠진 희망의 잔재들..

아니.. 사실 통장 잔고... 까짓거... 그것보다
그래 덤빌테면 덤벼보라지..
세상 모든 카드빚과 정면으로 마주서고라도 남들 지닌 대부분의 거시기니들은
건물이 뽀사질정도로 덕지 덕지 세워두고 싶지만
어디 하나 뭐 제대로 세워둘 만한 공간이 허락되지 않는 다는거..
역시 졸라 작았어.. 지구는..

이렇게 저렇게 궁리만 하고 손바닥 만한 벽만 사방 팔방 둘러 보고
머리속에 모눈종이를 폈다 구겼다...
밤이 깊은 줄 모르고 잠은 서산 너머 도망을 갔다.

그리고 또 밤마다 찾아 오는 짐승같은 체력에 힘입어
급기야... 또다시 미친 짓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발단은 그랬다...

그리하여 이녀석...

증산동 산꼭대기 지하 방에 세살적에
그나마 햇빛이라고는 병아리 오줌만큼 들어 오는 창문이라도
있어줘서 감지덕지 했건만
어느 버르장머리 엿바꿔먹은 좀만한 핏덩이가
밤사이 창문 앞에다 떡하니 이녀석을 버리고 갔다.

어떤 멍멍이 쉐리야~~~ 라고 외치며
잠옷바람으로 뛰어 나갔던 나는...
이녀석을 어깨에 메고, 옆구리에 꿰차고... 질질 끌면서
조용히 계단을 내려갔던 거다.
뒷판이 빵꾸가 뽕 난거 빼고는
완전 쓸만 했다는...


그 후 을지로에 가서 손잡이만 몇개 사다  
싹 바꾸고 나서
오늘날의 이런 모습으로
한 5년 질기게 안방에서 위용을 과시하며 나와 함께 서른 중반의
생사고락을 함께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밤...
생의 마감을 예감하며 폐사를 앞두던 바로 이밤에 말이다...
통장 잔고의 압박과 민생고의 역겨운 토악질에 쫒기던
주인님의 손길에 얌전히 몸을 내맡기고 재탕질의 주역이 되어 주었던 것이라고나 할까...


노트만들다 남은 천과
한복 맞추면서 한복집 사장님에게 얻어온 까만 한복원단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고운 색을 얻어 올 것을...)
노트 만들려고 사다 놓은 레이스와 하얀 핑크 쿳션을
차례...

차례...

달아 주었다.


이러저러 하게 방바닥을 뒹굴던 송곳과
본드와 기타 등등의 부속품들이 지쳐갈 무렵

새벽이슬 맞으며 버려졌다가
아침 햇살 받으며 갱생의 삶을 얻었던 녀석이...


또 한번 허락된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또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단어..
허락...
과연 "허락"이란 단어를 써도 좋을지는 의문이다.
녀석이 다시 생을 시작하는 일을 기뻐했을지
감히 허락이라는 단어 따위를 사용 한 일에 대해 불쾌해 하고 있을지...
이제 그만 흙속에서 생을 마감하기를
원하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또다시 번쩍이는 가식과 눈속임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일의
끔찍한 고통을 모르지 않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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