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장..
클라이언트면 다냐..
왜 시연회일정을 토요일, 일요일로 잡냐...
그래 다 좋다.
방까지 잡아 줄테니 같이 올 사람 있으면 같이 오고 시연회에 잠깐 참석만 하면 된다고 맘좋은 클라이언트가 배려까지 해줫는데...
문제는 같이 갈 사람이 없다는 거다.
주말에는 민이 산책시키는거 말고는 집밖에 나가는걸 싫어하는 깡통...
참으로 오랫만에 길을 나섰다.
춘천행 버스를 기다리는 중...
회사에서는 춘천얘기만 꺼내도 갑자기 바쁜척하거나 시어머니가 올라오신다는둥 전화걸러 밖에 나가고.. 그랬다.
누가 같이 가자고 그랬냐...
그래 나혼자 간다...
라고 툴툴거리긴 했지만.. 어쨋든 간만에 떠나는 여행이다보니
그것도 여행이라고 표끊어 놓고 보니 설레기도 한다. ^^
여행에 빠질 수 없는 음악..
귀찮아서 잘 쓰지도 않는 MD를 꺼내들고 조금씩 엉덩이가 들썩이는 기분에 젖어도 본다.
가평 어디쯤에 있던 배까페..
음.. 저런 멋진 까페를 찾아 다녔던 적이 그 언제쩍이어뜬가!!!!
춘천 시내에 있는 철길이다.
그리고 철길 주변의 무성한 잡풀과 들꽃들이 참 이쁘다.
춘천이 이쁘고 아름다운 도시인 건 아마도 곳곳에 숨은 이런 작은 숨결때문일거다.
일요일 아침
간밤의 음주가무중 클라이언트 몇명을 저승행기차 태워 보낸 것이 생각나
개선장군같은 기분으로 숙소를 나섰다.
좀 더 있다가 같이 식사하고 어쩌구 저쩌구 하다 같이 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야 했으나...
내얼굴을 보면 좀 민망해할 사람이 몇명 있을 것 같아
자비로운 마음으로 혼자 먼저 떠나기로 했다. 흐흐흐..
간만에 공지천에 잠깐 들러서 사진이나 몇장 찍고 가자 싶어서
택시를 탔다.
그런데 이 택시아저씨...
춘천자랑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모양이다.
춘천이 왜 깨끗한줄 혹시 아시는분 있는지 모르겠다.
택시 아저씨말이
춘천은 물이 고이는 곳이 없댄다.
태풍 불고 장마지나가도 동두천 이나 의정부 이런데처럼 물에 잠기는 곳이 없고
심지어는 도로에 잠깐 물고이는 고랑도 없단다.
그러니 비그치고 나서 먼지나 모래가 쌓일 일도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공장도 하나 없고 천혜의 강과 산에 호수까지 완벽한 자연의 혜택을
받는 지역인 것이다.
제주도 가면 신혼여행객 태우고 제주 한바퀴를 돌며 관광안내를 해준다는 택시기사...
전직이 그거 아닐까...
그러면서 한다는 말이..
" 여기는 공기가 정말 좋아요.. 인천같은데 가봐요.. 공장만 많아가지고 거기가.. 어디 사람이 살만한 곳이에요? "
불끈...
이거시.. 그럼... 나는 사람 아니고 돼지냐??
흠... 공지천 가지말고 소양댐가라고 꼬신다. 지금 비오는날 수문 열어 놓으면 장관이에요.. 사진 찍으러 오신거 같은데 소양댐 가세요..
얼결에 그러자고 했다.
바로 후회했다. 택시비가 16000원이 나왔다.. 속은게야.
아침부터 지금까지 1만원 벌었다면서 아가씨 덕에 매상올렸다고 헤헤거린다.
게다가 소양댐 도착하니
"어... 수문을 안열었구나... 음... 수문 열면 멋있는데... 한다.."
아 띠불...
소양댐에 내리고 보니 태풍 민들레에 대한 뉴스가 생각 났다.
비바람 몰아치고... 우산이 바람에 꺽이고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낼 수도 없을 만큼 비가 왔다.
결국 우산을 포기했다.
이런데 오면 꼭 이런짓하는 놈들이 있다.
뉴욕에서 찍은 사진 중에도 있다.
요 아래.. 롱아일랜드의 해변가에서 찍은 사진을 보라..
이놈들도 다 똑같다.ㅡ.ㅡ
멋지긴 하네..
비에 젖고 머리카락이 얼굴에 마구 뭉개진채 눈물나게 불쌍한 꼬락서니를 하고 비바람을 뚫고 찍은 사진...
그것두 혼자서...
다 포기하고 시내버스에 올라타고 바라본 바깥...
비바람에 어찌할 줄을 모르는 사람들이 보인다.
여러명이 같이 저러고 있어도 한심하고 불쌍해 보인다.
근데 여자혼자 저러고 있었구나...싶은 생각이 드니.. 갑자기 정말 내가 미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양댐에서의 폭풍우를 가른 솔로의 푸닥거리는
차창에 어린 물방울을 마지막으로 이젠 잊어줘야 할 것 같다.
이게 모냐...
도저히 사진 원본 그대로 올리면 너무 불쌍하고 처참해서 보는 사람들이 눈물을 흘릴것만 같아서...
흑백으로 처리해서 올린다.
그래도 대충 얼마나 한심한 꼬락서니 였을지 짐작되고도 남음이 있지 아니한가... 쿨쩍..
하다보니 조금 더 오버를 했다.
헤헤헤헤.....
디지탈의 승리...
폭풍우에 처참하게 망가진 얼굴을 너무 심하게 승화시켜버린듯...
# 에필로그..
토요일, 도착하자마자 프리젠테이션을 끝내고 술을 한잔 했다.
근데 이사람들... 참 술을 미치도록 퍼마셨다.
고량주에서 시작하여 이과두주를 소주 마시듯이 들이키더니
결국엔 양주를 보리차 마시듯이 마셔댔다.
2차 3차... 4차까지 룸을 잡고 양주를 마셔대네..
깡통?
전날의 사건을 잊을리가 있나..
정신 말짱하게 차리느라 주문을 수도 없이 외워댔다.
이과두주를 한꺼번에 네잔을 따라서 손가락 네개에 끼더니
내앞에 턱 놓고 네잔을 완샷하란다...
난...
술자리에서 술로 지는게 제일 싫다.
술로 싸움을 걸어 오는 사람에게 반드시 피의 아침을 맛보게 해주고 마는 깡통!
계속 술 주지 마시라고 빼고 사양하다가
불이 붙어 버린게다!!
네잔을 완샷하고 그쪽 대빵인 상무앞으로 손가락네개를 홀랑홀랑 담군
술잔 네개를 던지듯 탁 내려놓고 한마디 했다.
"잔 받으시지요...."
그렇게 시작된 그날의 술과의 전쟁은 결국 나의 완벽한 승리와 함께
나땜에 부킹 안들어 온다고 나가라고 술주정을 하던 한놈은 잠깐 나갔다 오더니 어디서 긁었는지 얼굴에 고속도로가 생겼다.(클라이언트만 아니면 넌 뒤졌어...)
그중 몇명은 사망에 이를때까지 대작을 해주고 멀쩡하게 걸어서 숙소로 돌아왔다.
물론 비싸고 좋은술을 먹어서 그런거 같기도 하다..
다음날 이다지도 멀쩡하다니...
뭐 내돈내고 먹는 술 아니니까 상관이야 없지만
대기업에 다니는 놈들이 참 한심해 보이기도 하고
불쌍해 보이기도 하다.
저놈들도 입사할때는 청운의 꿈을 품고 군기 바짝 들어서
선배들 시중들며 컸을텐데 말이다.
어쨌든 술자리에서 끝까지 버티고 여자 불러오라고 꼬장 부리던 놈한테도
"내가 밖에 있는 애들 다 봤는데.. 물 진짜 안좋아요.. 나랑 노는게 훨재밌을껄"
하며 버텨줬더니... 성격 짱좋다고..
고맙다고.. 이제 친구 먹잔다.
헐...
술상무가 된 기분이다.
내가 클라이언트만 아니었으면 니눔들을 참아줄 이유가 없다..
싶으면서도
남자들이 술마시면 다 그렇지 뭐... 괜찮아.
아... 친구되면 좋지.. 그러자.
대기업 있을때 중소기업 다니는 친구좀 잘 봐주구 구래..헐헐헐
그랬다 ㅡ.ㅜ
살다보면 태풍이 몰아치고 비바람이 부는날, 뒤로 꺽이는 우산을 바로 잡아 볼려고 낑낑대다가 가방이 바닥에 떨어지고, 바닥에 떨어진 가방을 줍다가 우산이 날아가 버리고 그래도 카메라로 사진 한번 찍어 보겠다고 생쇼를 하는 그런날이 있는거다.
그렇더라도 불쌍하다는 듯 바라보는 아저씨들의 시선과 눈이 마주치면
방긋...
웃어줘야 하는 그런 것이다.
태풍 민들레가 몰아치는 소양강댐에서 숙취로 흔들리는 해골을 또다시 태풍에 강타당한 깡통로봇으로 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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