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통로봇의 노래

영원한 꼴찌 이상무...

영혼기병깡통로봇 2004. 4. 25. 05:10

이상무의 만화를 보면 언제나 신이 났었다.

이상무의 만화는 언제나 스토리의 전개가 비슷했다.  마치 무협지 같은 구성이었다. 처음 두권만 읽으면 내용을 대충은 때려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이상무의 만화는 그보다 조금 뒤에 출시된 이현세나 박봉성의 조금 더 복잡한 구도로 설정된 만화에 비해 신선감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참 요상한 것은, 어린 나이에 이상무의 만화가 주는 소재의 식상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렇게 ‘정형화’ 된 포멧을 읽다보면 반갑게 느껴지고 그리워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같은 ‘단순한’ 재미는 인터넷 오락이 가지는 ‘복잡한’ 쾌감이 주지 못하는 순수하고 때묻지 않는 우리의 ‘동심’ 을 자극하는 바로 그것이었다.  그것은 ‘당시로서는 잘 알 수 없는 가치’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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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lay I : ‘울지 않는 소년

 

울지 않는 소년’은 축구를 소재로 한 축구만화이다.  지금의 축구판과 별 다를 것 없는 축구교육과 행정에 반기를 들었던 독고룡, 그의 설 자리를 빼앗은 축구협회, 산속에서 못다 이룬 축구에의 꿈, 미래를 위한 준비를 위해 키운 아들 독고탁...

 

만화의 시작은 바로 이런 구도이다. 

축구에 대한 꿈을 이루기 위해 큰아들과 아내를 두고 작은 아들 탁이만을 데리고 산으로 오른 독고룡은 지옥 같은 훈련으로 탁이를 축구 천재로 키운후 정작 자신은 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탁이를 발견한 축구팀 감독 김석원은 그의 잠재력을 보고 독고탁을 축구팀에 넣게 된다. 그런 과정속에서 탁은 한시도 잊을 수 없었던 어머니를 만나고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형 준을 만난다. 그러나 차마 어머니라 부르지 못하고 혼자 외로움에 사무친 탁. 

 

어머니를 뺏긴 것 같은 마음에 준에게 심통도 난다.  무서운 축구실력을 가졌으나 사람들 앞에서는 이죽거리기 좋아하고 웃기 좋아하는 얄밉고 귀여운 장난꾸러기 소년이지만 혼자 있을 때는 어머니의 품을 그리고 따듯한 정이 그리운 아이인 것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주변 인물들은 일반적으로 소박하고 정이 많다.

독자들은 사춘기 소년이 갑자기 만난 어머니를 원망하고, 느닷없이 나타난 동생을 미워하거나 누군지도 모르는 아버지의 정체를 알게된 형 준의 갈등을 기대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대부분의 드라마에서 볼 수 있듯이 말이다.

 

그러나 이상무는  그러한 갈등구조를 포기했다.

드라마틱한 스토리 구조를 포기한 대신 누구나 바라는 따뜻한 인간애가 느껴지는 어리숙함을 선택한  것이다.

 

서로 이해하고 화해하는 매개체로 이상무는 축구를 선택하였다. 

 

이 만화에서 독고탁이 추구하는 가치는 화려한 미래를 위한 젊음의 도전이 아니다. ‘울지 않는 소년’에서 비춰지는 소년의 모습… 

 

그것은 어쩌면 고도 성장기에 접어든 당시, 가난한 시대를 살아온 기성세대들이 다음세대에게 남겨주고 싶은 뼈아픈 희망일 것이다.

 

힘겹게 발돋움하는 소년의 모습…한이 많은 가슴에서 흘러나오는 한가닥 노래자락이나 입술을 비집고 나오는 실소… 

이것들은 한국인의 오래된 정서를 대변해 준다.

 

그속에서 가질 수 있는 희망이라는 것이 김일 선수의 박치기와 차범근 선수의 후련한 슛이었다면 그 축소판이 바로 스포츠의 꿈을 먹과 종이로 그려낸 만화의 힘인 것이다.

이 따뜻한 만화가 바로 386세대들을 골목으로 불러내어 공을 차게 했고, 그 정서를 가슴에 담고 잠실 운동장과 동대문 운동장을 찾게 했던 것이다.

 

 

Replay II : 아홉개의 빨간 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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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개의 빨간 모자’는 어둡다. 

‘울지 않는 소년’ 보다 더 리얼리즘을 표방하고 있는 이 작품은 고아들을 소재로 다루었다.  

 

  이 작품에서도 독고탁은 또 다시 소박하고 인간적이다. 다소 연민을 느낄 만큼 현실 순응적이다. 그래서 또 생각하게 된다. 작가는 정말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를...

 

독고탁은 걸핏하면 탈출을 꿈꾸는 고아원 원생이다.

고아원 원생들을 일꾼으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 원장에게는 그에 못지 않게 거만하고 원생들을 증오하는 고교야구부의 타자인 아들 준과, 독고탁이 몰래 짝사랑하는 준의 동생 숙이 있다.

숙 또한 탁이를 무식하고 야만적이라며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다른 아이들처럼 얌전히 주는밥만 먹으며 밭가는 일을 하지 않는 문제아 탁의 시니컬한 웃음에서 가슴시린 외로움을 발견하는 새로 온 선생으로부터 모든 것이 변하게 된다.

그리고 출신을 알 수 없는 봉구의 등장.

 

매일 밤 주먹다짐을 하던 탁과 봉구는 서로에 대해 잘 알 지는 못하지만 어느덧 우정을 쌓아가게 된다.

이런 문제아들에게 고아원 지도 교사로 새로 부임한 옥기호 선생은 야구를 가르친다. 야구가 뭔지도 모르는 아이들은 야구를 통해 잡초처럼 무시당하는 고아원생이 아닌 새로운 자아를 찾으려 하지만 결코 쉽지 않다.

그런 과정에서 봉구가 부잣집 외아들이었음이 밝혀지고 원장의 딸인 숙은 봉구를 좋아하게 된다.

탁이 너무도 좋아 했던 숙과 처음으로 마음을 주었던 친구인 봉구….

세상은 그에게 쉽게 문을 열어 주지 않는다. 또 다시 찾아오는 좌절과 증오가 무서운 힘이 되어 그를 마운드로 불러들인다.

한을 불사르듯 던지는 볼…

 

독고탁은 야구를 위해 공을 던지는 것이 아니다.

배신당한 우정에 다시한번 시니컬한 웃음을 날리며 ‘더 이상의 들러리가 아니다…더 이상의 잡초가 아니다’ 라는 처절한 몸짓으로 계속되는 경기에서 볼을 던진다.

 

그런 탁을 지켜보는 봉구와 숙의 안타까운 절망보다 더 절실한 그의 목표는 단지 봉구를 이기는 것 뿐이다.

봉구의 안타를 손으로 잡아내고 내가 녀석을 이겼어…라는 말을 숙에게 남긴채 모습을 감춘다. 

오기와 투지…더 갈 곳 없는 바닥에서 고아들의 비상구가 되어 주었으며, 그들이 호흡하게 하는 이유가 되어준 야구…그러나 그들에게 현실의 벽은 너무도 암울한 것이었다.

 마지막 경기에서 머리를 다친 채 영원히 야구 속에서 살아가는 땡보, 공을 던지면서 집념과 한을 던지던 탁… 그 가슴 허한 결말을 보면서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로트렉이라는 화가는 앉은뱅이였다고 한다.

그러나 후에 그는 어느 인터뷰에서 앉은뱅이가 아니었다면 그림 따위는 그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절망조차 사치일 수 밖에 없는 현실에서 뇌가 없는 사람처럼 일하고,

밥을 먹고, 굴복하고, 복종하는 일에 익숙해져 있었던 고아원의 아이들에게

야구라는 희망을 던져준 것처럼,

어두컴컴한 만화가게에서 허리를 45도쯤 기울인 채 불편한 의자에 앉아

 만화책에 골몰해 있을 청소년들에게

이상무는 희망을 던져 주고 현실의 벽을 자신의 힘으로 이겨나가길

 당부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어린 시절 가난했던 작가 자신의 청소년기를 백지 위에 수채화 그리듯 채워넣어 가는, 자신의 어린 시절 꿈을 다시 표현한 것이다.

 

또한 모든 이의 절망을 이 작품 속에 담아

그들이 공감함으로써 조금은 편안해지길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마치 정말 울고 싶을 때 누군가 어깨를 두드려 준다면 마음이 부드러워지는 것처럼 말이다.

 

 

Replay 3: 달려라 꼴찌

 

부모를 잃은 독고탁은 어린 동생과 함께 상경하여 우수고등학교의 야구선수가 된다. 단칸방에서 동생과 자취를 하면서 야구를 한다. 

 

동생은 ‘어머니로부터 전수 받은‘ 국수 마는 비법으로 포장마차를 하면서 형 탁이의 야구 생활을 돕는다.

독고탁과 같은 학교 야구부원인 동급생 봉구의 아버지는 야구에의 회한을 지닌 인물로 과거에 잘 나가던 투수였다.

탁은 우연한 기회에 봉구의 아버지로부터 ‘드라이브 볼’을 전수 받는다.

더 나아가서 드라이브 볼을 변형시킨 ‘더스트 볼’을 개발한다.

봉구와 독고탁, 그리고 찰리박이 서로 앞서거니 뒤서가니 하면서 상대방에게 뒤지지 않으려고 부단한 노력을 하는 과정을 묘사해 놓고 있는 이 만화는 이상무의 다른 작품의 면면에서도 엿볼 수 있는 페이소스와 유머가 묻어 난다.

 

 독고탁이 등장하는 많은 만화들이 부모代에 비롯된 어떠한 형태로든지의 恨을 독고 탁이 푸는 것을 기본적인 설정으로 하고 있다면 이 작품은 특별히 형제간의 우애를 강조한다.

탁의 동생은 형을 ‘神적인 숭배 대상’으로 미화시키면서 형이 야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헌신한다. 탁 또한 동생 몰래 새벽에 신문 배달을 하면서 가계를 돕는다. 

 

‘한풀이‘의 측면에서 볼 때 이 작품은 타 작품과는 다소 다른 설정이다.

이 작품 어디에서도 독고 탁의 부모로 인한 스토리 연결은 잘 눈에 띠지 않는다.

 

그대신, 봉구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개인적인 한스러움을 자기 자식이 아닌, 독고 탁의 힘을 빌어 해결한다는 설정으로 그려졌다. 

물론 그 한풀이의 매개는 야구다. 

 

 

 

‘사랑’ ‘화해’ ‘惡人에 대한 용서와 다른 시각’ ‘가족’…  이상무 선생이 우리에게 던져준 화두. 

잠시 글 읽는 것을 멈추고 이 화두들을 조용히 묵상해 보자.

 

승자만 존재하고 패자는 금새 잊혀지는 작금의 현실. 비단 스포츠 뿐만이랴…

당장 17대 국회의원선거를 마친 정치판에서도 신물나게 보면서 산다.

 

실수 몇 번에 매도 당해 버린, 우리에게 삶의 작은 의미를 주고는 돌아서 사라져 버린, 동메달을 따고도 박수 받지 못한...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며 와인드 업하고… 

그들에게 다시 한번 독고탁의 ‘더스트 볼’ 을 던져 보낸다. 

 

이상무 만화가 가진 ‘소외된 자’들에 대한 애정, ‘반골에 대한 포용’…

 

그의 만화가 던져준 그 화해의 악수를

이젠 우리가.. 서로에게 내밀어야 할 때인거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