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통로봇의 노래

천박한 섬의 천박한 원숭이 이야기

영혼기병깡통로봇 2004. 1. 31. 10:55

신도림 역에서 줄을 서고 차를 기다린다.
이런 저런 생각들을 떠올리게 된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전철을 기다리면 생각속에 빨려들어가서 나의 육체따위는 아무도 모르는 사이 희미하게 사라져 없어지는 것 같이 느껴진다.
나라는 것이 없어진다는 것은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두려운 일이다. 내가 없어져선 안될 이유는 없다. 내 뒤에서서 신문을 보고 있는 남자에겐 내가 없는 편이 더 좋을지도 모른다.
그랬다. 내가 두려운 것은 그것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에게 나는 없어지는 편이 더 좋을지도 모르는 존재가 되는 것, 내 존재가 없어졌는데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게 되는 일이 두려운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끊임 없이 이런 저런 생각들을 끌어 내는 것이다. 마치 내가 무언가를 생각하는 동안에는 영원히 내가 존재하게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어느땐 내가 잠깐 몸을 뒤척이는 통에 앞사람이 중심을 잃고 그 결과 도미노 게임처럼 앞으로 밀려 넘어지면 어떨까 그래서 맨 앞사람이 철로에 떨어지고 그순간 알아차리기도 전에 전철이 밀려들어 온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한다.
그러면 나는 죄가 있는 걸까 없는걸까.. 솔로몬의 선택에서 변호사들은 나의 손을 들어줄까.. 중죄인이니 선처를 할 이유도 없다라고 말하면 어떡하지 싶은 생각까지 미치면 두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허리를 펴고 서서 두리번 거리게 된다. 누군가의 몸에 잠깐동안 닿아 있기만 해도 엄청난 일이 벌어질 것만 같다.
피터팬은 행복한 생각을 통해 날 수 있는 옵션을 얻었다. 행복한 생각은  피터팬을 날게 하지만 이렇게 쇳소리나는 차가운 생각을 하고 있으면 내안에 있는 분노와 두려움에게 그 힘이 자라나는 양분이 되는 것만 같다. 그 양분을 먹고 분노와 두려움은 점점 자라나고 결국엔 나도 내안의 분노를 제어 하기가 힘들어지는 것이다.
하루키이 소설에서 천박한 섬에 사는 천박한 원숭이에 관한 이야기를 보았다.
천박하게 생긴 천박한 섬에 아주 천박한 원숭이와 천박한 냄새를 풍기는 천박한 야자나무가 있다. 천바한 원숭이는 천박한 야자열매를 먹고 더욱 천박해지며 천박하게 배설을 한다. 그 배설물은 천박한 토양을 더욱 천박하게 하고 그 토양을 먹고 자란 야자 열매 또한 더욱 천박한 열매가 된다.
그리하여 천박한 섬의 천박한 순환이 계속 되는 것이다. 그러한 순환 속에서 천박한 사이클은 점점 더 커지게 되고 어느 시점이 되면 아무도 그것을 멈추게 할 수 없게 된다.

나는 알고 있다. 내안에 내가 만든 분노가 있고 그 분노는 그 누구가 채워 넣은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가 가진 일상의 가면 또한 내가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가 만들어낸 분노 속에 또한번 갖혀 버리고 말았다. 나는 그저... 천박한 섬을 만들고 천박한 나무 열매를 먹고 천박한 토양을 만들어 천박한 왕국을 만들어낸... 천박한 원숭이에 지나지 않았다.
인간이 정신적인 휴면을 위해 그려낸 종교와 종교의 상징이었던 신이 어느 순간 인간의 정신위에 군림 하고 인간은 스스로 만들어낸 신으로 부터 소외 당하고 복종하는 존재가 된다.
그러나 그건 상관없다. 정신의 하부에 있건 무엇으로부터 소외당하여 복종하는 존재가 되건 그건 상관없는일이다.
지금 나는 두렵다.
나를 지배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나를 지배하는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