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통로봇의 노래

나는 밤이 좋다

영혼기병깡통로봇 2004. 1. 7. 01:27
저녁 내내 중고차 사이트를 뒤지면서도 내가 과연 차를 살 수 있기나 할까하는 의심이 계속 되었다.
게다가 me, mx 기타등등... 똑같은 제목의 차인데도 왜이리 종류가 많은지 도저히 차이가 뭔지도 모르겠다.
더우기 이게 싼건지 비싼건지도 모르겠고 그것보다 신제품에 비해서 얼마나 싼지도 모르겠다.
머리속에서 혼자 염불을 외듯 모니터 안에 열거된 사양들을 훓어 내고 있을때 방안에서 혼자 티비를 보던 언니가 이렇게 말했다.

야... 내가 참.. .얘기 해줬나? 엄마가 어제 점봤는데 너 올해 차조심 하라더라... 차사고가 아주 크게 살꺼래...

내가 중고차 사이트에서 한시간째 헤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건 절대 아니었다.

본시 점이란 것이 믿을 만한 것은 못되었다.
몇일전에 본 타로점에서는 올해 운수가 6월과 12월의 가벼운 고비빼곤 운수 대통이라했다. 그러나 남자운은 없다고 했다.
그에 반해 엄마가 보고 온 점괘를 요약하면 올해 운세가 그다지 좋아뵈진 않으나 좋은 남자 만나서 결혼을 할꺼라 했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사이드에서 봄날 단단한 씨앗을 뚫고 밭고랑 틈새로 서로 경쟁하듯 불쑥 대가리 디미는 새싹 마냥 불끈불끈 솟아나는 소름때문에 결국 브라우저를 닫고야 말았다.

그래... 차를 살생각은 애초에 없었어...

올해도 이렇게 한해를 시작했다.
지난 한해동안 참 많은 것을 잃었다.
그중 인생을 뒤돌아 가장 크고 굵은 것이라면 친구를 잃은 것이다.
아마 남은 삶동안에도 내내 그만큼 두고두고 후회하는 일은 없을것이다.
13년을 살과 같이 여기던 친구를 잃은 것은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그 상실감의 깊이를 감히 가늠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도대체 얼만큼 많은 시간이 지나야 한 사람에 대해서 온전히 알게 되는 것일까..
인생은 아마도 누군가를 알아 가기 위한 끝없는 진군의 연속일 뿐 그이상도 이하도...
아무것도 아닐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그리하여 결국 지금의 나는 아무런 존재도 될 수 없다고 믿게 만드는 이 상실감의 근원인것만 같다.

몇년짼지 모르겠다. 매년 크리스마스를 친구와 보냈다. 늘 그렇듯이 우린 돈이 없다.
맥주 몇병을 사서 좁은 나의 자취방에서 밤을 새는 것이 고작이었다.

올 크리스마스는 좋은 친구와 좋은 사람과 다시 없을 만큼 즐겁고 유쾌한 하루를 보냈다..
그런데도 그친구가 없다는 사실은... 마치.. 지금의 나는 혼자 방안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던 것 처럼 생각된다.

이렇게 많은 것을 잃고...

또 얻고..

또 잃고...

그러나 나는 또 그렇게 하루를 배설하면서 밤을 얻는다.

그래... 그러자...밤을 얻어서 좋다.

나는 밤이 좋다.

그저 깜깜해서 좋다.

하루를 잃은 사람에게 밤을 선물 하듯이 새롭게 시작한 이 한해도 내가 잃을것이 무엇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무언가 내게 얻어 지느 것이 있을 것이다.

그게 무엇일지 모르겠다.
지나고 나면 알게 되는 일이다.
사는것은 늘 그러하다.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묵직한 질문에 대해 정답이란 것이 없지 아니한가... 그저 지나고 나면 알게 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또 지나보면 알게 될 것이다.
하루만큼... 한해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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