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일본의 거대한 무도관에서 살떨리게 매력적인 공연을 했고
조용필은 북한의 침묵하는 관중앞에서 가슴으로 흐르는 공연으로 눈시울을 젖게 했다.
아.. 비.. 그렇지..
비와 에릭에게 광분하며 침을 흘리긴 하지만
나는 아직도 산울림과 건아들의 노래를 듣는게 좋다.
한때는 노래라고는 노래방 마이크 잡고 애매모호한 표정연기와 아낌없는 목젖의 울림으로
노래방 사장님께 서비스 20분을 받아내는 수준의 실력을 가지고
가수랍시고 나불거리는 어린 댄스그룹들을 경멸한 적도 있지만
그들의 아름다운 실루엣에 대해서도 노래만큼이나 중요한 재능임을 인정한다.
또 어린 나이에 겪는 불안과 갈등을 목도하였다.
아낌없이 갈채를 보내주어야 함을 알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조용필은 나의 영웅이며
남해바다의 부서지는 파도처럼 온몸으로 작렬하는 이승철과 부활의 음악을 사랑한다.
순수와 젊음이라는 단어가 마치 고유명사처럼 느껴질만큼 아픈세대를 이어온
옥슨80, 산울림, 어니언스, 양희은...을 기억한다.
구창모의 연애사나 이수만이 가수였던 시절을 기억하며 대학가요제에서 그대에게를
부르던 앳된 신해철의 얼굴을 기억한다.
신해철이80년도에 무한궤도라는그룹에있었나요??
사천만의 내친구, 네~~ 지식인에서 신해철이 80년도에 무한궤도라는 그룹에 있었냐는 질문을 보았다.
이런 무식한 것들!!!! 이라고 생각했다. 잠깐동안...
마치 홍수완의 4전5기 신화나 김일선수의 현해탄을 오가는 일대기를 모르는 젊은 아들에게 피를 토하는 아버지의 울분처럼.
그러나 이또한 나의 취향이며 내가 살아온 나이많은 언니오빠에 둘러싸인 환경의 영향일 뿐인 것을 안다.
그리고 아주 깊고 혹독하게 음악세계에 심취하여 포크음악과 팝의 일대기를 꿰고 있을만큼 매니아도 아니었다.
단지 거대한 라디오를 책상위에 올려놓고 나의 언니가 들었거나 오빠가 흥얼거렸던 것이 전부일 뿐이다. 나의 친구들중 건아들의 젊은미소를 처음 들어보았다고 말하는 녀석도 있었는데 그녀석이 정상인건지 내가 맞는건지 잘 모르겠다.
우리는 어쨌거나 세대가 갈려지는 어느 시점의 중간쯤에서 청춘을 보내왔던 것 같았다.
순박한 통기타와 세련되지 못한 청바지와 허름한 셔츠, 라이브가 아니면 방송이 되지 아니하던 정직한 무대, 3-4옥타브를 오르내리지 못하면
노래조금 한다는 소리도 못하던 가창력만이 최고이던 가수의 세계... 어쨌든 그시절은 그랬던 것이다.
비디오나 보여지는 게 전부가 아니라고
믿었던 날들을 지나왔다.
그리고 나는 지금
엠피쓰리나 핸드폰, 노트북을 고르는 첫번째는 디자인이라고 믿는다.
스테레오 돌비 사운드나 밧데리의 사용시간, 모니터의 해상도,
통화음이고 뭐고 간에
예뻐야 한다.
우리집 티비와 오빠가 작년에 새로사준 냉장고말고 작은 부엌에 자리잡고 있는
냉장고는 보무도 당당한 골드스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학교를 들어가고 여자친구를 데려와 큰아들의 며느리가 혼수로
성능좋은 새 텔레비젼을 사올 때까지
마르고 닳도록 세탁기와 티비를
써야 하는 새마을운동 세대는 아닌가보다.
허긴... 내가 새마을운동세대인가 아닌가의 문제가 아니라
디자인이 요즘의 대세이긴 하다.
일하기 싫을때 가끔 교보문고를 어슬렁거리다 보면 마케팅 서적의 20%쯤은 틈새시장을 공격해야 밥을 벌어 먹을 수 있다는 얘기고
나머지 80% 쯤은 앞으로의 대세는 디자인이고 디자인이 곧 브랜드며 브랜드가 힘이다.. 라고 얘기 하는 책이 대부분인걸 보면
세상은 이미 새마을운동과는 작별을 고했고 탱크주의 따위의 슬로건을 걸지도 않는다.
고객도 이미 가전제품의 선택기준이 튼튼은 아닌게다.
나는 은근 슬쩍 디자인이 최우선인 내가 낭비, 사치의 바람을 살짝쿵 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이 되었다.
아직 언니
오빠의 흥얼거림과 나도 모르게 머리속에 들어온 디자인공격 속에서
나는 구세대인가 신세대인가에만 촛점을 두고 고민하고
있었나보다.
그런문제가 아니었는데...
20년은 거뜬히 써야 하는 탱크주의는 이제 아닌거다.
세탁기는 튼튼하게 잘빨아지는 것보다 거실에 놓아도 가구보다 아름다워야 하는 것이다.
그런고로,
나는 이명세 감독의 탐미주의를 좋아한다.
특히나 스크린이 아름다운 영화에게는 기본적으로 애정공세를 퍼붓는 편이다.
나는 여러가지가 두리뭉실하게 잘 조화된 어떤것 보다는
어떤 한가지가 집중적으로 뛰어난 것이 좋다.
인간성은 더럽지만 살떨리게 천재적인 농구선수가,
사생활은 난잡하지만 세대를 거쳐 아름다움을 찬미하게 되는 한 음악가가,
스토리는 아무것도 없으나 뛰어난 음악과 편곡으로 감동의 바다를 부유하게 하는 영화,
하루 밤새 자괴감이 들만큼 완벽한 제안서를 써오는 젊은 광고쟁이의 싸가지 없음이....
좋다.
그래서 그의 탱고음악이 흐르는 액션신을,
눈내리는 슬로우 모션속의 실루엣으로만 움직이는 주인공의 뒷모습이..
투박한 시골장터에서 흐르는 장중한 클래식이..
좋았었다.
그러나 형사,
이거 좀 심해주셨다.
아마 아름다운 영상과 음악에 대한 강박때문이었을까?
강동원은 시종일관 카다록 스타일의 표정만 짓고 있고 대사는 없다.
하지원은 액션신에서는 분위기 잡고 대사만 하면 코미디를 할려고 노력했다.
강동원의 이름이 무언지가 절대 중요하지 않았었는데
강동원은 갑자기.. 내이름은... 내이름은.... 하다가 죽었다.
액션느와르...
느와르라...
얘기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정신상태가 워낙 그런인간이다... 그렇게 이해해주셨으면 싶다.
가전제품과 형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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