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통로봇의 노래

친구, 그 서글픈 이름

영혼기병깡통로봇 2003. 1. 24. 21:07
좋은 친구이자.. 동료지... 여자로서 좋아하는 것은 아닌것 같다...

그사람은 그렇게 말했다.

어떤 식으로든 그의 대답을 원했고 그의 대답을 짐작하지 못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그에게 물을 수 밖에 없었다.
하루에도 몇차례 지옥을 넘나드는 듯한 괴로움에 이젠 종지부를 찍어야 했고 그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건 내 짧은 질문으로 밖에 시작할 수 없는 까닭이다.
내가 먼저 묻지 않으면 그는 돌같이 꿈쩍하지 않을터이니..

그는 그래서 그리 답했다.

그러나...그동안의 시간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대답을 듣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에겐 차마 나에게 말하지 못한 다른 여인이 있음을 알았다.

그런거였을까... 그에게 나와의 시간은 아무런 감정조차 전달할 수 없는 무의미한 시간이었을 뿐인거였을까...

차라리... 이젠 더이상 니가 내마음에 있지 않다.. 미안하다..라고 말했으면 내마음이 좀더 편했을까..는 잘 모르겠다.
그렇게 대답했다해도 난 아마 왜 내가 싫어졌느냐는 질문 따위 하지 않았을게다.

그의 대답을 조용히 존중해 준것처럼...
그러나 실은 심장의 요동을 진정시키지 못하는 하루를 무너질듯 지켜내는 날들을 보내고 있는 지금처럼.. 그에게 어떠한 대답을 듣더라도 난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다른 대답을 듣고 싶었다.

처음부터 내가 그에게 여자가 아니었다는 대답 따위는 아니었다.

사랑하지 않아도 좋았다.
그가 아주 작게, 아주 가볍게 지나가는 말처럼 니가 좋아... 라고 말했던 작은 행복들이 아직도 머리속에서 먹물처럼 번져나가고 있는데도 그시간이 아무 의미 없는 것이라 말했던 그 짧은 메세지...

그 짧은 메세지의 의미를 그사람을 알고나 던진 것일까...
그리도 내가 그에게 아무것도 아니었을까..
잊자고... 마음을 돌리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면서도 매일 아침 그의 얼굴을 보는일조차 내겐 짐이다.

저녁즈음 그가 일상과는 다른 목소리로 통화하는 내용을 들으며 수화기 건너편의 인물을 짐작하는일도 하기싫다.
어느날 갑자기 핸드폰에 어울리지 않는 커다른 강아지 인형을 매달고 왔을때도... 그 인형을 선물한 사람을 혼자 짐작하는일...

주말에는 집밖에도 나가기 싫어 하던 사람이 어느날 주말마다 영화를 보고 오는걸 알았을때의 좌절 따위.. 이제 하기 싫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늘 친절하고 가벼운 웃음 건네는 내가 끔찍 하다...

이제 그를 떠나야 할까보다.
좋은 친구로남는일..

친구, 그 서글픈 이름으로 기억되는일...
이렇게 벅차고 힘든일인줄 참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