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
언덕길 맨끝에 우두커니 서있는 5층빌라.. 꼭대기층
창문을 열면
남산과 불빛과... 거리를 만난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기차가 무게만큼이나 큰소리로 지나가고
밤엔 네온사인 요란한 큰 건물이 존재를 확인하는 아우성을
질러댔고
언덕길 한쪽에는 밤마실 나온 동네 할머니들이
달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그네들은 그닥 나눌 말도 없으리라..
그리고 나트륨 불빛 비치는 골목어귀를 돌아
오늘도 어김없이 넥타이를 풀어헤친채 비틀거리는
아버지들의 지친
발걸음...
밤그림자 등에 지고 담장 위를 오가는 검은 고양이
저 아래 낮은 기와집으로, 어둠속으로 사라져 간다.
달마저
구름속에 가려지고 가로등 불빛 꺼지는..
조금 더 깊은 밤.
이제 창문을 닫고 새벽을 마중하러 간다.
간혹 신기하게도
매미가 울어제꼈다.
1992
눈을 감는다
졸음이 몰려오므로.
꿈을 꾸겠지..
아! 그게 싫다.
아침이 오면
개운찮은 기억의
조각들
난 벽에 기댄채
하루를 지키고 있다.
불빛마저 퇴색한 거리
침묵의 벽에 부딪히는 밤의
소음
무너지지 않는
돌같은 하루를 지키고 있다.
1994
세계..
시작은
두려움이다.
이제 나는
사막으로의 도전을 시작
아니 떠밀려졌다.
모든것이
두렵다
나를 죄어 오는 건
아버지의 한숨이 아니라.
어머니의 굵은 손마디가 아니라
불꺼진 방
겨울속에 떨고
있는
혐오스러운 얼굴..
저 얼굴이다.
이제 모든 것을 정리해야 한다.
끝은 또하나의
생동하는
힘
두려움
그건 가능성이다.
...
오늘도 삐딱선을 탔다..
아...
난 왜 참을 수 없는 분노에 휩쌓이는가...
결국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주제에
수화기에 대고
차가운 냉소를 퍼부었다.
나의 차가운 냉소는 그녀의
심연 깊숙한 곳으로
파고들어
부글거리는 드라이 아이스처럼
피를 타고 번져갔겠지.
섬찟한 독기를 또 뿜었다.
파르르 떨리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뚜뚜뚜...
결국은 제풀에 지쳐 떨어질 거였으면서
나는 왜 냉소를 퍼부어 대고
겨우 숨을 할딱이고 있던 그녀의
심장에 마지막 한 칼을 던져버렸던 걸까
더운
비가 몇일째 계속 되었다.
빗속으로 분해 되어가는
붉은 핏줄기를 끊어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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