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통로봇의 노래

주변인이야기 1 - 팜므파탈(리바이벌임)

영혼기병깡통로봇 2005. 5. 17. 20:50

팻 매스니의 공연에 대한 얘기를 쓰면서 술나방 선배의 이야기를 썼던 걸 계기로 살아 가면서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보려고 한다.



참고로 팻매스니 공연은 정말 감동적이었다.

혼자 보는 공연이 얼마가 감동이었겠냐고 비웃는 인간들고 있었지만 참으로 리얼리티 감동의 세계를 모르는 사람들이다.

정말 큰 감동은 옆사람과 함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도 좋지만 그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공연에 빠져들 수 있을때 태풍처럼 나를 덮쳐온다.


퍼커션과 베이스, 피아노, 드럼, 트럼펫과 쿠옹부의 천상의 목소리같은 코러스가 광폭하게 울려퍼지는 공연장 한가운데세 감동을 주체못하고 눈물을 흘려대는 나의 모습이 어찌나 기특하고 대견하던지..

 

오늘만큼은 너의 날이다..

라고 크게 외쳐주고 싶을만큼 행복했었다.



각설하고...


팜므 파탈...
불어로 "치명적인 여자"라고 해석하곤 한다. 치명적인 여자라...

대충 사전적의미를 찾아 볼 수도 있겠지만 사전적의미보다는 대중적인 유행성을 통해 느껴지는 의미를 찾는게 더 와닿을 것 같다. 

인터넷을 떠도는 아햏햏 라는 단어의 의미처럼 말이다.

아마 영화를 보면 쉽게 느껴지지 않을까 한다. 


베티블루에서 보여준 베아트리체 달의 광기어린 사랑(강력히 추천하는 영화다!!)니키타, 레옹의 마틸다, 원초적본능의 샤론스톤 등등...


차갑고 이지적이면서 뇌쇄적인 본능으로 남자를 유혹하고 결국은 파멸로 이르게 하는 강한 카리스마의 여성... 뭐 대충 그런식으로 정리하면 될까...

팜므파탈에 가까운 느낌을 지닌 여배우로 나는 심은하를 꼽는다.

많고 많은 배우중에 왜 하필 심은하냐고 물으면 난 그냥.. 내 마음이다.

그녀의 가녀리고 순수해 보이는 얼굴 이면에 느껴지는 강렬한 카리스마가 내게로 온다.

외국 언론에서도 그녀의 팜프파탈적인 이미지에 찬사를 보냈다고도 하니...

대충 느낌은 동양이나 서양이나 비슷하지 않을까.. 그리고 남들도 조금은 그렇게 느낄거라고

믿는다. 소심하게..


남자들이 대부분 이상형의 여인을 물으면

순수하다거나.. 착하다거나... 지혜롭다거나..

뭐 그런걸 들면서도, 그리고 착하고 현명한 여인을 옆에 두고도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길에서 만난,

 혹은 어둡고 습한 바에서 만난 짙은 화장의 어느 여인에게 빠져들게 되곤 한다.

그건 그가 나쁜 놈이어서도 아니고 나쁜 여인이어서도 아닐 것이다.

마치 꿈을 꾸듯이, 마치 눈앞에 섬광이 터지면서 온몸에 불길이 번지듯이 순식간에...

아주 순식간에 일어난 지각변동일 뿐이다.

그러나 그 독이란것은 순식간에 온몸으로 번지고 그들은

폐쇄회로에 갇힌 푸른비늘의 고등어처럼 위태로운 자아속에서 눈이 멀고 심장이 멎는다.


아마..여자가 바람둥이 남자에게 위험하다고 느끼면서도 끌리는 것과 같은 느낌인 것일까 하고

아주 통속적으로 이해하고 넘어가기로 한다.

거기 까지가 나의 이해의 범주일테니 말이다.


몇해전에 잠깐 알게 됐던 작가가 있었다.

그는 참 글을 잘쓰는 작가였다.

글을 잘 쓴다기보다... 자신만의 세계가 독특해서 좀 위태로워 보이는 사람이었다.

어느 방송국에 그가 쓴 단편극이 대상에 당선되어 방영 되었던 적이 있는데

한 마을 버스 기사가 우연히 주운 수첩속의 여인을 만나기 위해 가명으로 인터넷 채팅을 하고 어느날 갑자기 일상에서 일탈하여 마을버스를 끌고 시내를 빠져나가는...

아주 무미건조한 인간의 일상에 대한 드라마였다.


그의 글은 홍상수 감독의 소름끼치는 리얼리즘과 닮아 있었고,

은희경의 무미건조하고 냉소적인 문체와 닮아 있었고,

언젠가는 레오까락스나 장자끄베넥스 같이 인간의 내면에 깊은 파장을 던지는...

그런 글을 쓰고 싶어했다.
작가라면 누구나 겪는 갈증 같은 것이었으리라.


그러나 그의 현실은 무드라곤 찾아 볼 수 없는 씩씩한 아내의 남편이었고

4살짜리 똘똘한 아들의 아빠였고,

그의 시나리오는 영화사에서 영화로 만들기에 너무 부담스러울 만큼 위험한 스토리여서

그의 글을 최고로 인정은 하지만 선뜻 계약은 하지 못한채 세월만 죽이는,

한마디로 안팔리는 작가였고

성인용만화의 스토리를 가명으로 써서 하숙비를 버는 그저그런 작가일 뿐이었다.

아... 그리고 22살짜리 음대생과 사랑에 빠져있는 유부남이기도 했다!
그는 그 음대생과는 매일 끝내고 싶어했다.

그러나 그는 늘 그녀와 함께 있었다.



그는 그녀와의 잠자리에 대해서 얘기하곤 했다.

나로서는 충격적인 일이었지만(그당시에는...)충격받을 이유가 없었다.

그에게는 그것이 일상이었고 그에게 있어 그런 종류의 대화는

어제본 영화에 대해 객관적이고 리얼리즘적 관점에서 토론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는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와이프와의 잠자리와 그녀와의 잠자리를 비교하면서 두 여인의 성격을 비교분석하기도 했다. 마치 고등어 자반의 크기를 재는 듯한 눈빛으로..

난 한번도 만난적 없는 그의 와이프에 대해 아주 많이 알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의 와이프는 좀 다른 의미에서 무서운 여인이다.
그의 바람기를 잘 알면서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며... 그의 일에 관해 묻지 않고 성내지 않고...

그렇다고 살랑거리지도 않았다.

그것이 그를 두렵게 만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한편 안심하게도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언젠가는 저여인에게 돌아갈 것이다.... 그렇게 될 것이다.. 라는 믿음을 갖게 하면서...

놀라운 일이다.

그리고 음대생인 젊은 그녀는 그의 아이를 낳고 싶어했다.

그와 헤어져도 좋으니 아이만 낳게 해달라고도 했다.

그녀는 목소리가 천사 같았지만 그에 대한 사랑 만큼은 너무도 완고 했다.

그녀는 교회에서 아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쳤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고

그의 남루한 자취방에서는 일상에 찌든 한 유부남을 지배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남루한 나무집을 불태우며 폭주하던 베아트리체 달처럼.

나와 합석했던 술자리에서 나를 경계하며 나의 직업과 성격에 대해 캐묻던 그녀를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그 1년 뒤쯤 아주 시끄러운 rock 바에서 그 작가를 우연히 만났다.

그는 그녀에게서 헤어나오지 못할 것 같이 보였지만 결국은 헤어졌다고 한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프랑스영화를 봐도 그들이 왜 우는지 잘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그들이 사랑하는 이유와 그들이 헤어지는 이유를 제대로 파악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대충 이해는 할 것 같았다.


그냥 그런 인생도 있구나.. 하면서...

그러나 결국은 나의 일상과는 그다지 닿아 있지 않은  삶이었다.

 

나는 팜프파탈의 여인을 사랑한다. 되고도 싶었다.

베아트리체 달을 보며 참 사랑스러운 여인이라고 생각했고,

니키타를 보며 가슴저릴만큼 그녀를 안아주고 싶었고,

샤론스톤을 보며 그녀에게 압도 당하였다.

오히려 그들의 인생이 나보다 더 단순 한것 같이 생각되기도 한다.

나의 관계를 둘러싼 모든 것들에 눈감고 귀막고...

정면만 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일 터이니 말이다.

절대 복잡할일 없는 두사람만의 감정회로를 감당하는 것도 이렇게 버거운데...

그 많은 것들과 단절하며 그안에 또다른 세계를 만드는 건 더더욱 불가능 한 일일 게다.



그리고... 그저 그런 일상이지만 나에게도 소중한 하루임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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