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통로봇의 노래

물고기는 결국 바다를 떠나

영혼기병깡통로봇 2005. 3. 8. 00:49

우리 사장은  A 형이다.

소심남 삐돌이계의 대부라고나 할까

소심한 사장은 일단은 착한 사람이다.

일단은 그렇다.

 

통장에 적힌 숫자 만큼만 행복한 나와

뭉게구름 피어나는 동화를 꿈꾸는 사장이 있다.

 

사장은 하루중 일정시간을 할애하여 나에게 그의 동화를 들려 주는 일을 한다.

그리고 나는 그의 동화에 피바람을 일으키며 비수를 꽂는것으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낸다.

우린 끝없이 싸워댔다.

 

내가 꿈을 꾸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다.

그래도 끝없이 그는 말한다.

그리고 나는 끝없이 풍선에 바늘을 던져 댄다. 퐁퐁...피시식...

그의 마음속에서 바람이 새나가고 있을 것이다.

 

그가 우리의 이상과 비전이 가족이라고 말했을 때는

참을 수 없을 만큼 역겨웠다.

 

그의 이상이 가식이어서가 아니고

그를 믿지 못해서도 아니었다.

그는 진심일 것이고

진심이라는 것은 아마도 이상을 실현하든 못하든 변하지 않을 것이다.

 

역겨움의 근원은 내안에 있다.

빌어먹을...

그의 이상을 아름다운 꿈으로 받아들이기엔

내 발 밑의 모래는 지랄같이 뜨겁고 머리위에 태양은 너무 건조했다.

 

그러나 이젠 솔직히 적응이 되기 시작하는 편이다.

그도 나에게 적응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그를 조금씩 이해하고 그의 방식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처럼

사장도 그랬다.

 

지난밤

사장하고 둘이 월미도에 다녀왔다.

 

전날 클라이언트에게서 날벼락이 떨어졌다.

조만간 일이 터질 것이라고 내내 걱정을 했지만 대응할 인력이 없었고

그 폭탄을 내가 떠안고 있다가

내가 잠시 자리 비운 사이 폭탄이 터진것이다.

펑...

 

내가 없는 동안 사장이 나서서 수습했고

사무실은 초비상 상태가 되어 다들 똥씹은 표정이 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다음날 알았다.

내가 외부에 나가 있는 사이 벌어진 일이었다.

 

그 때문이었나보다.

사장은 내 맘이 좋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고

그래서 월미도 행을 결심한것이다.

데이트나 하죠... 월미도 어때요? 하더니만

서울에서 월미도까지 논스톱으로 직행했다.

 

참으로 할말도 없었다.

서울에서 월미도 까지 두시간

월미도에서 두시간...

그의 연애와 결혼과 아이의 유치원과 또래집단과 어울리는 아이를 보는

아버지의 일상에 대해 물었다.

알고 싶지 않았다.

묻지 않으면 공격당할 것이다.

 

그는 내가 월미도를 가고 싶어 하는지 집에가서 발닦고

잠이나 자고 싶어하는지 관심이 없다.

그의 머리속에 있는 회로는 1차원이다.

 

사고가 났다. 내가 속상할 것이다. 자신이 달래주어야겠다. 월미도는 어떨까...

 

마치 시야가리개를 단 경주마처럼

그는 그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 하나 밖에 생각할 줄 모르는

단순한 사람이다.

아마 일평생 바람도 피지 못하거나

한번 바람 피면 그걸로 모든게 끝날 사람이다.

요령이라고는 없는 단순한 사람..

 

착한사람...

한없이 밉고 한없이 미안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6년쯤 전이었다면 그와 함께 회사를 키워보겠다는 욕심이 생길법도 했을텐데...

나는 그와 같은 곳을 바라보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다.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해서 미안하다.

 

나는 이 지긋지긋한

일상으로부터 벗어나는 일만을 꿈꾸느라

그에게 너무 미안하다.

 

주말에 또 친구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그 녀석은 우리나라에 몇 없는 스페셜리스트로 말로만 듣던 억대연봉자다.

성공한 그 녀석의 또다른 성공한 친구들을 겨냥하였으나 계단에서 어깨를 부딪히고 가방을 떨어뜨리는 일따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깡통로봇의 노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돌아갈 곳이 있었던가..  (0) 2005.04.12
남겨지는 일  (0) 2005.03.30
삼일절 아침  (0) 2005.03.02
생로병사의 비밀  (0) 2005.02.24
비콘서트 후기- 어느 팬의 고백  (0) 2005.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