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통로봇의 노래

연말결산

영혼기병깡통로봇 2004. 12. 27. 08:50

 

하루가 지날 때마다... 한달이 지나고 일년이 지날때마다...

4분음표... 혹은 온음표... 혹은 16분음표...

 

템포가 정해지거나...

기쁘고 행복할때는 길게 길게 늘이고 또 되돌이표를 찍고

불행 할때는 대충 악장하나를 건너 뛰고...
시간이 그렇게 흘러 주면 좋겠다.

 

내일도... 모레도 어제도

머리속에 있는 생각은 늘 되돌이표... 되돌이표...

어느순간까지만이라도... 그렇게 되돌이표만을 생각하고 있는 하루...


 

그러나 시간은 그저... 악보도... 템포도.. 연주자 따위도 없는 거였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말이다.
제와 다를 것 없는 아침 이지만 조금 다른 기분으로 방안을 둘러 보고

하드디스크도 한번 더 뒤져보는 일따위... 그것뿐이다.

 

그리고 잊어야 할 것들을 발견해 내는일.

이젠 없는 사람의 흔적을 발견하는 일은 시간이 아무리 흐른다해도

결국은 마음을 다치게 마련이다.
녀석을 떠나 보낸지가 햇수로는 벌써 4년이나 되었다.

거울 앞에 걸린 곰돌이 푸우...
술에 취한 녀석이 500원을 넣고 뽑았다며... 신나하던 얼굴과 겹쳐진다.

 

다이어리...다이어리에 새 달력을 끼워 넣고...

맨뒤에 붙어 있는 사진을

겨우 이제서야 떼어내려고 하다가 결국 떼어 내진 못했다.

하지만 곧 이것도 떼어 낼 것이다.

 

메일함도 정리했다. 보내지 못한 메일들이 수북히 쌓여 있다.

이젠 받아줄 사람도 없는 메일들.

차마 보내지 못하고 묻어두었던 마음이 저 구석에 쌓여 있는걸

그가 알아줬으면 싶었다. 미련하게도.

아직도 그가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아주 잠깐 생각했다.

결국은 이것마저 지워낼 것이다.

책상 두번째 서랍 구석에 세워진 빨간 중국식 비단천에 싸인 상자...
첫번째 해외출장, 첫번째 비행기여행.

첫번째 해외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녀석이 들고온 선물이다.
키가 다른 붓들이 나란히 누워있다. 이걸 어디에 쓰라고 사온걸까.

좀 한심한 녀석이었다.


어느날 밤엔가는 내가 녀석에게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해서 말했다..

 

회사에서 간판달때 쓰는 와이어 있지? 것좀 가져와...

왜?

암튼 쓸데가 있으니까 꼭 갖고와 나사랑 같이...

정말 한밤중에 나사와 연장들과 와이어를 종류별로 들고 왔다.
내가 그걸로 무슨 짓을 했냐면.... 그냥 열쇠고리를 만들었다...

이쁘지 않냐.. 아까 낮에 갑자기 이걸로 열쇠고리 만들면 좋을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너... 너 이거 만들려구 이밤중에... 날더러 이거 갖구 오라그런거야? ....
...응...

책상서랍 안쪽에 찌그러져 있는 열쇠고리도 이젠 버리기로 한다.

 

작은 향수하나, 컵하나...

민이에게 물어 뜯겨 얼굴 없는 괴수가 되어버린 백곰까지...

사방엔 아직도 녀석의 이름을 지워내고는 존재할 수 없는 것들 뿐이다.


주인의 이름은 이제 없는데도 그것들은

존재감을 가득채워 놓는다.

매일 아침 화수분처럼 새롭게 채워 놓는 것이다.

 

눈을 감는 일이 많아졌다.

즐겁거나... 새로운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대신...

눈을 감는 정도가 시간이 내게 해준일의 전부다.

그러니 이젠 버려야 겠다.

또 다른 나무 한그루가 뿌리를 내리는 날이 오면

아낌 없이, 줄 수 있을 만큼의 사랑을 그에게 되돌려 줄 수 있을까를 걱정한다.
그렇게 따뜻하게, 아프지 않게 사랑하는 방법을 알게 될까.


 

이나이에도 주접스럽게 따뜻 내지는 아프지 않은 사랑따위의

단어를 들먹거리는 일때문에 더 한심스럽지만

 

어쨌든 연말이다.

 

정리할것들 정리해서

세금도 내고

얼결에 더 낸 세금 있으면 다시 찾아오기도 하고

 

내년엔 또 얼마나 쓰디쓴 고배를 뒤짚어쓸지

마음의 준비를 다져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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