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래전의 일이다.
한 8~9년 쯤 전의 일인 것 같다.
언니랑 둘이 지하단칸방에 살때의 일이다.
지하방은 현관이라고는 왠만한집 안방 나무 문보다도 허술하기 짝이 없는 너덜너덜한 문이라 가끔 열쇠를 놓고 가면 공중전화 카드로도 쉽게 문이 따지는.. 그런 문이 달린 집이었다.
방안에는 장농하나 놓고 화장대 하나 놓고... 티비..
그외의 공간은 두사람 누우면 짜투리 공간 하나 없는, 말그대로 단칸방이었다.
반지하도 아니고 햇빛한줌 들어오지 않는 철저한 지하방..
숨이나 겨우 쉴 수 있을 만큼의 작은 창문으로는 바람보다 먼지가 더 많이 들어 오는 그런 방이었다.
그러니 훔쳐갈 것도 없을 뿐더러 누가 봐도 훔쳐갈 것 없이 생긴 집이었으므로 도둑따위에 걱정을 늘어 놓을 필요도 없었더랬다.
그리고 어느날
퇴근하고 돌아왔는데 문이 살짝 열려 있는 것이다.
언니가 들어왔으면 저렇게 문을 열어 놓지도 않았을텐데...
갑자기 심장이 두근 거리기 시작했다.
슬며시 문을 열어 본 순간...
옷장은 열려 있고 서랍은 뒤집어져 있었고...
누군가 방안에서 내 옷을 입고 누워 자고 있었다.
놀란 마음에 그대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무 집이나 초인종을 눌렀다.
윗층에 살던 아저씨가 나온다.
아저씨.. 우리집에 이상한 사람이 있어요..
경찰에 신고좀 해주세요..
그 아저씨 하는 말은...
글쎄... 그런일이면 그냥 저 아래 파출소 가지... 전화는... 점 그런데..
갑자기 그아저씨가 더 무서워졌다.
그 빌라에 내가 10년을 살았는데... 10년 가까이 얼굴을 알고 지내던 아저씨였다.
그래... 자기도 그순간 봉변당할까봐 겁도 났을 것이다.
이해하자...
그리고 3층 꼭대기 층의 반장 아줌마네 가서 겨우 경찰에 신고를 했다.
그리고 경찰이 집에 왔다.
내방에서 내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은 왠 젊은 남자였다.
모르는 사람...
술에 취한 남자를 경찰은 두들겨 깨워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주머니에서는 방안에 있던 사탕과 내 시계가 나왔다.
상의 티셔츠의 위쪽 주머니에서는 서랍에 있던 생리대도 들어 있었다.
그리고 나도 동행하여 파출소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후 파출소로 언니가 연락을 받고 왔다.
그당시에도 험한일을 당했을때는 늘 유별나게 명랑했던 자매였는지라
씩씩하기가 이를데 없었다.
파출소의 밤풍경은 코메디가 따로 없었다.
술먹고 싸우던 두남자가 서로 고소를 한다는둥 지랄을 떨더니만
경찰이 그럼 서로 고소하시라고.. 두분다 그럼 오늘 집에 못들어가시고
하루 구류 하신다음 서류상으로는 빨간줄이 그어진다고...ㅡ.ㅡ;;
얼핏 들어도 말도 안되는 협박을 하는 것 같은데도
술취한 두남자....
잠시 담배피우고 오겠다고 하더니 나갔다 들어와서는
알고보니 학교 선후배라고... 그냥 집에 가겠다고 한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옆쪽 책상에서 정말로 드라마에서나 본 대사가 이어진다.
왠 아줌마가 내가 누군지 아느냐를 묻기 시작했고
그 옆책상에서는 술취한 노인이 책상을 두드리고 있던
파출소의 진풍경...
밤마다 이 푸닥거리를 하는구나... 진짜 웃기다. 했다.
그런데 시간은 간다.
정체모를 남정네의 가택침입사건을 신고한 두 여인은 그렇게
파출소의 시간을 멍하니 앉아서 지키고 있었다.
7시에 시작해서 밤 12시를 넘겼다.
조금 있으니 경찰한명이 이젠 파출소에서 서류 끝나고 간단한 신변조사가 끝났다고 말했다.
끝인가보다... 했으나..
끝났으니 이제 용산경찰서로 이송하고 그쪽 가서 형사한테 진술서를 써야 한단다.
생전처음 그날 경찰차를 탔고 그 유명한 용산경찰서를 방문하게 되었다.
진술서....
형사는 너무나 형식적인걸 반복해서 물었다.
없어진게 있나..
사탕, 시계, 팬티, 내옷, 생리대...(형사는 생리대는 민망하니까 빼라고 당부했다. 그때는 왜냐고 묻지 못했다. 지금이었으면 물었을텐데..)
금액으로 따지면 얼마인가..
글쎄요.. 얼마 안돼는데요
그래도 정확히 말해야 한다
대충 삼십만원이라고 하세요
처음 발견 한 것은... 발견당시 상태...
그때 기분은...
몹시 큰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는가..
처벌 하고 싶은가...
중죄인이라고 생각하고 고소를 하고 싶은가..
언니와 나는... 그당시 그건 사실 별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없어진것도 없고, 술취해서 벌어진 일이고...
크게 당한 것도 아닌것 같았다.
진술서를 쓰는 내내 했던말 또하고 또하고...
결국은 별일 아니라고 말하고 싶게 만드는
집요한 형사의 유도 심문에 결국은 내가 넘어갔던 것 같다.
어리석은 나는 형사가 묻고 또 묻고 ,,, 묻기를 반복하는 숫자 만큼
이게 아닌가.. 싶었다.
자꾸 물어 보는 거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는 거고
다시 생각해보라는 거는 뭐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하는 거 같기도 하고
생각해 보니 정말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았다.
게다가 진술서라는 것이 정확해야 하는 것이고 진술한 사람이
나중에 진술을 번복하는일이 없게 하기 위해서
반복해서 묻고 또 묻는 것이니까 사실 그럴 수도 있다고는 생각한다.
그러나 진술서를 다쓰고 지장을 찍고 나온 시간은
새벽 4시였다.
1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에 와서도 나는 문득 문득 그때 생각을 한다.
그때 다하지 못했던 일들이 후회와 분노로 남는다.
그리고 때로는 곰곰히 앉아서 진술서를 다시 쓰는 상상을 한다.
형사가 아무리 집요하게 캐물어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상상.
정말 무섭고 놀라웠느냐... 이사람이 중죄인이므로 엄하게
처벌 받기를 원하냐.. 라고 물었을때
당연히... 법으로 처벌하지 못하면
내가라도 처단하고 싶을만큼 분했고 무서웠다고 말하는..
반드시 처벌 받아야 한다고 끝까지 고집하는 상상...
상상 속의 나는 그리고 나올때 반드시 이말도 잊지 않는다.
나는 피해자이며 피해자로서 법의 보호를 받기 위해 경찰에 신고했다.
새벽 4시까지 잡아 놓을 줄 알았으면 신고 따위 하지 않았을 거다.
당신들을 어떻게 믿을 것이며 내가 무섭고 두려워서 신고했지
그럼 재밌어서 신고 했겠냐
무섭고 두렵다는데 왜 자꾸 똑같은 발을 잠도 안재워 가면서 묻냐..
내가 뭘 잘못한거냐..
내가 왜 경찰서에 새벽 4시까지 잡혀 있어야 하냐..
저 개자식은 저 안에서 쿨쿨 자빠져 자고 있는 동안
난 잠 못자고 이게 무슨 짓인거냐...
경찰은 다 개자식이다...
라고 말하는 상상...
혹시 그들은 지금쯤 경찰도 사람이다.. 그럴 수 있다..라고 말하고 싶을까..
그렇게 말할 거면
애초에 경찰할 마음을 갖지 말았어야지..
주둥이 함부로 놀리는데다 경찰의 대민원 업무에 대한 파악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
밀양의 빌어먹을 경찰놈이건
10여년전 용산의 어느 경찰놈 이건
누가 억지로 하기 싫은 경찰 시켜놓은 것도 아닌데...
그냥 그저그런 중소기업의 그저그런 과장쯤이라면 굳이 밥 벌어 먹는 일에
도덕적이지 않아도 된다.
그냥 나쁜짓 안하기만 하면 된다.
인권에 대한 남다른 소견 따위 갖고 있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경찰이 갖고 있지 않아도 되는 덕목은 아닌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