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리코,
역시나 오늘도
제목하나 써놓고 점하나 찍는데 하루가 걸렸다.
글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지 않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해.
그리고 점하나만을 찍었을 뿐이다.
그냥 일기려니..
내 일기, 내가 쓰거나 말거나
점하나 찍는데 하루를 버리던 말던 무슨 상관이겠냐고
마음을 다독여본다.
그래도 실상은 한심하다.
점점 나는 내 마음을 잃어 가고 있는것 같다.
아니, 내 잃어간다기 보다
마음을 얻고 싶어 하는 것 같아.
타인의 마음을 빼앗고 싶은 어린애가 된 기분이다.
어떻게 쓰면 조회수가 높아지는지
어떻게 쓰면 꼬릿말이 더 많아지는지가
내 하루를 지배하는 모양이야^^
허긴... 지금의 나에겐 그것도
나쁘진 않은것 같다.
그랬다.
만약 내가 작가가 되었다면
아마 서점 앞에서 할인권이라도 나눠줬을지도 모르겠다.
농담처럼 동료에게 협박도 했을것이다.
사인을 받아두면 자자손손 재산이 될거라고
허풍을 떠는 내게
엔리코, 너두 아마 책 몇권을 강매당해야 했을거야.
거 책한번 더럽게 재미 없다는 소리가
얼핏 스쳐들리기만 해도
위장과 간장, 대장, 소장이 마구 뒤엉켜서
주체할 수 없는 자괴감에 시달리다가
결국은 땅속에 몸을 묻을지도 모른다.
다행이다. 다행이다.
허튼소리...
이제 고백해야겠다.
아니, 나에겐 정리가 필요해졌다.
정리할것이 많아져 버렸다.
실없는 농담도,
구질구질하게 늘어놓았던
푸념.. 넋두리...
너는 알고 있지?
오랜동안 잊어보려.. 잊고살자고
죽을힘을 다했던거...
풍선을 크게 크게 불어서 날리면
풍선 크기만큼 에너지가 부풀어 오를거라고
믿고 싶었다.
먼지 같았어... 그래 그 대사가 내내 마음에 걸렸다.
먼지처럼 그냥 살아지길 바랬었다.
그러나 내안에 있는 것들이 결코 먼지가 되어 주지
않음을 어찌하랴..
축축하게 젖어 온몸으로 흘러드는 그 많은 것들이 쌓이고
풍선에 들어간 바람만큼 가슴이 비어져 간다.
내가 애써 모른척 하려 했던
갖혀진 본질들이 뻘건 속살을 드러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글속에 마음을 담기도 어려워졌다.
이제와서 즐겁고 유쾌한 파티따위 사실은 다 뻥이었으며
샴페인도 다떨어지고 파티는 끝났으니
어서들 돌아가라고 소리지르기도 민망한 일이다.
엔리코,
나는 정말 또라이라고 소리 지르고 싶었다.
나도 너희들만큼 외롭고 쓸쓸해서 어쩔줄을 모르겠다고 말하고 싶었다.
이젠 헷갈리고 헷갈리고 또 헷갈려서 뒤돌아 서도
걸어 온길을 찾지 못하겠으며 앞으로 난 길도 보이지가 않는다고...
난 완벽하게 갖힌것 같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래, 돌려말하지 않을께
사실은 또다시 시작된 어긋난 관계를
털어놓을 대나무 숲이 필요했어.
미안하다.
난,
그 사람... 사랑하냐고 묻진 않겠지...
사랑이라는 단어따위... 수분이 다 빠져나간 나뭇잎처럼
가슴속에서 서걱거리는 기분이다.
글쎄.. 아마 외로웠던가 보지..
엔리코,
그건 아주 힘든 일이었다.
언제 올지도 모르는 사람을 기다린다는거...
이미 떠나버린 사람을 그리워한다는거...
난 그냥 좀 외롭고 지쳐있었어.
누군가 어깨를 감싸안고
마치 나의 내면을 꿰뚫고 있는 것 같은 따뜻한 손으로
토닥여주면 그걸로 그만이었다.
그때 그가 있을 뿐이었어.
비가 오는날은 일찍 집에 들어가라고
메시지 한줄로 손끝까지 전달되는 온기란..
11월의 우동국물 같은 거 아니겠니... 웃자... 그냥
언젠간 이렇게 된걸 후회하게 될 것이다.
물이 흘러 바다로 스며들듯이
나도 언젠가 세상속에
조용히 스며들게 되는 건지도 몰라.
글쎄..
그걸 지금에야 어떻게 알겠어.
시간이 흐르고 이런 일들이 이렇게 슬프지 않게 되면...
... 그래도
아마
또 다른 후회와 깊은 슬픔으로 너를 찾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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