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통로봇의 노래

비오는 추운 새벽, 어둠속의 고양이를 추억하다.

영혼기병깡통로봇 2004. 10. 16. 02:12

도대체 왜그랬는지 이해하고 또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이냐.
이녀석!
이녀석을 이제 어쩌지?

나는 교문앞을 서성이고 또 서성였다.
수업시간은 다가 오고 나는 그앞에 서있었다.

순간 발끝 용천혈에서 부터
지옥불처럼 뜨겁게 불타올랐던, 주체할 수 없는
측은지심의 정체는 무엇이었는지..
내안에 숨어있는 또 다른 누군가의 존재를
깨닫는 서늘한 아침이었다.

가방속에서 꼬물대는 이녀석!
조막만한 새끼 고양이 한마리가 문제였던 것이다..!

 

그날도 겨우 감긴눈을 뜨고 커다란 책가방을
어깨에 걸쳐 들고 집을 나섰다.
너무 오래전 일이라 내가 고교시절 몇시에 집을
나섰는지 정확한 바늘의 각도는 기억나지 않는다.
몹시 어슴푸레 했었다는 것뿐
그리고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늦가을 어느날이었다.

 

새벽부터 비가 오는 깜깜하고 서늘한 가을날
가뜩이나 학교 가기긿은 수험생의 마음은
새벽찬비보다 더 우중충하기만 했다.

터덜터덜 걸어서 골목 모퉁이를 빠져나오던 순간..
어딘가에서 모기가 앵앵거리는 듯한 소리가 났다.
주위는 어둡고 사람도 없는 외진길...
젠장, 더럽게 무서웠다.

그러나 전설의 고향에 어린시절을 단련하였음을 잠시 깨닫고
계속되는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고개를 돌려보았다.

어느 식당 문앞에서 비에 흠뻑 젖은채
떨고 있는 새끼고양이 한마리...

아, 녀석의 눈과 마주치고야 말았던 것이다.
손바닥만한 녀석..
녀석은 그렇게 나의 새벽을 흔들었다.

 

그 당시 나는 의사소통이 이루어 지지도 않는 주제에
꼬물꼬물 거리는 이땅의 모든 생물들을 싫어 했다.
바퀴벌레에서 부터 어린아이에 이르기까지...

더구나 야릇한 소리를 내며 밤의 창을
뒤흔들던 동네 도둑고양이들임에야...

 

그런 내가 대체 뭐에 홀린 걸까..
그만 녀석을 덥석 안아서 가방에 넣어 버린 것이다.

 

자, 이제 이일을 어쩌랴..
오전 자율학습 시간은 다가 오고
시간 만큼 빠르게 학교 정문이 시야로 들어 오고 있었다.

조용히 해야 한다.. 할 수 있지?
야옹..
할 수 있을리가 없지.. 들어가자..

 

살금 살금 교실로 들어가서 가방을 바닥에 내려 놓았다.
조금씩 시간이 지나고 자율학습을 지키는 선생은
슬금슬금 걸어서 창가에 걸터 앉았고 아이들은 제 나름대로의
사업에 골몰하기 시작했다.
하이틴로맨스에서 부터 도시락까지...
또는 진정 국사책에서 부터 수학에 이르기까지..

 

그때였다.
갑자기 아이들이 일사불란한 파도타기시범을 보이며 책상위로
올라가고 언젠가 시청앞을 가득 메웠던 대한민국만큼이나
거대한 함성이 교실가득 폭탄처럼 터지고 있었다.

 

그랬다. 녀석이 이제 좀 따뜻하고 살만하니 가방을 박차고 나와
어린아이 특유의 호기심으로 교실 바닥을 유람하기 시작한 거였다.

예상 못한일도 아니지만... 너무 빠른거 아니니... 내가 미쳤다.

옆반에서도 원정을 왔다. 무슨일일까?
영문 모르는 선생님은 무슨일이냐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잽싸게 뛰어서 고양이를 낚아 챘고 가방에 꾸겨 넣었다.
그리곤 아무일 없었던 듯이 수업이 진행되었... 으면 좋겠지만
아이들은 대략 웃고 난리가 났고
몇몇 안티세력들은 혀를 차고
아뭏든 교실은 순식간에 복도까지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그때 그 선생의 어이가 없는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뚱뚱한 사회선생이었는데 세상사가 별 재미 없는 시큰둥한 표정과
힘없는 말투가 특징인 사람이었다.

그런 그의 표정이란... 일평생 그런 표정은 지어본적도 없으리라..

그리고 그는 느그 담임한테 얘기 할테니 알아서 해라.. 면서
교실을 나갔다.

 

일은 벌어졌으나 어찌하랴..
우린 아직 어리고 마냥 재밌는 일만이 중요한 나이였던 것을..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고양이 구경에 여념이 없었다.

게다가 몇몇은 동작도 빠르게 매점에 가서 우유를 사다 상납을 했고
나름대로 귀엽고 보드라운 그 녀석은 영문도 모르고
땡그란 눈을 굴리기에 바빴다.

그렇게 교실이 난리 법석이 나고 있을 무렵
역시나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으나 예상 보다 빠르게 어두운 그림자 하나가
복도 저편에서 부터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또로로록... 복도 벽에 긁히는 나무막대의 소리..
담임이 다가 오고 있다.

 

담임은 고양이를 번쩍 들고 앞장서 나갔고
예의 외침... 교무실로 와... 하고 사라져 버렸다.

 

아이들은 걱정과 불안에 떨며 떠나는 나를 바라보았다.
나도 떨리긴 마찬가지였다.

교무실 따위를 들어갈일이 별로 없는, 그닥 존재감이 없던 나는
두려울것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교무실이 그리 반갑지 아니했다.

1교시 수업이 시작되었고 1교시 내내 교무실앞에 서 있었다.
서 있는 것은 좋았다.
이제 곧 수업이 끝나면 선생들이 하나둘씩 들어올텐데..
확실히 벌을 서는 것은 사람을 반성하게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 정말 쪽팔리다.. 내가 왜 그런짓을 했던가.
이쁘지도 않은 것을 주워다가 뭐 어쩌겠다고 학교길에 녀석을 덥썩안고
가방에 넣었더란 말인가..

그리고 그녀석은 또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는건가...

그 고양이 녀석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거지? 나는 또 어떻게 되나..

혼자 서있는 뻘쭘한 시간이 익숙해지고 교무실 문이 친숙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벌서는 것도 하다 보면 재미도 있겠다 싶을만큼

머리속에 수많은 생각이 우주를 헤엄치고 있었다.

 

그리고 정말 1교시 종료를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선생들이 하나 둘씩 교무실로 복귀했다.

 

역시나 그들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나를 훓고 지나갔다.

키득키득... 선생이라는 작자들이 어찌나 체신머리 없이 웃어 대던지..

지금 생각 하면 기껏 지금의 내나이 이거나

나보다 조금 더 많은 그들일 게다. 이제와서야 이해 못할 것도 없지만

나는 그들의 그 가벼움이 억울했다.

대체 뭐가 그렇게 웃긴건지..남은 쪽팔려 죽을지경인데...

 

그러다 결국 그둘 중 하나가.. 국사선생님이었다.

야... 느이 집 고양이가 이쁘면 집에서나 키우지 학교는 왜 데리구와! 이자슥아!

 

한마디를 하고 선생들이 까르르 웃으며 지났다.

아..

쪽팔리고 다리 아픈건 참겠지만 억울함만큼은 못참겠다.

우리집 고양이 아니에요~! 아침에 오다가... 비 맞고 있길래... 주워서...

 

아... 말하다 보니 더 쪽팔렸다.

솔직히 그러네.. 차라리 집에 있는 고양이 데리구 왔다고 하는게 낫지

지가 무슨 순정만화 주인공도 아니고... 길에서 고양이를 주웠단 말인가...

아.. 난 대체 왜 그짓을 했으며

왜 또 순간 참지 못하고 불끈 했던가...

 

게다가!

 

왜 또 훌쩍거리고 서있는가...

 

얘 우네... 야야.. 그래 알았어.. 그만 그쳐! 뭘 잘했다고!!

 

아... 바람은 창밖에서 불고 그칠일이 아니었다.

비 또한 창밖에 내리고 말것이 아니었다.

뭐든 가리고 싶었고 뭐가 됐든 난 좀 숨겨줬으면 좋았다.

 

이래저래 비참하고 처참한 한시간을 버틴 나에게 이제 교실로 돌아가라는

통보를 전해왔다. 나름대로 고마웠다. 치사했지만...

 

그리고 어제와 같은 수업시간이 계속 되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수업마다, 들어오는 선생마다...한마디씩 건네는 걸 잊지 않는다.

치사하고 유치하다.. 선생들이 그렇게 까지 유치할 줄 몰랐다.

 

너네반에 알프스소녀 하이디 있다매?

까르르르르르....

젠장...

 

한숨이 절로 나오는 끔찍한 하루가 겨우 겨우 지나갔다.

이렇게 하루가 조용히 마무리 되었으면 좋겠지만

고양이...

정작 사건의 주인공인 녀석을 마무리 짓지 못했다.

도통 그녀석의 행방을 알 수 없었다.

그러다고 담임이 해결을 할리가 있나... (해결해줬으면 더 좋았겠지만.. 애물단지..)

결국 전쟁 같았던 하루의 하일라이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수업이 모두 끝나고 종례시간에 담임은

청천벽력 같은 한마디를 급기야 던지고 말았던 것이다.

 

니 고양이 찾아가라... 교장실에 있다.

 

햐... 교장실이라는 거다.

이젠 교무실에 이어 교장실 카펫을 밟게 되었다.

난 이래저래 전교에 유명인사가 되었다.

 

교장실 문을 슬그머니 열었다.

늦가을 비오는날,

전교의 교실이 서늘한 냉기에 젖어 있을때에도 

따뜻한 전기난로와 부드러운 빨간 카펫이 깔린 교장실만큼은

그야말로 럭셔리 오피스였다.

 

그리고 빨간 카펫위, 난로가에 팔자 좋게 늘어져서 자고 있는

고양이 녀석!

 

교장선생님이 날 보더니 씨익 웃는다. 두렵다.

 

추운데서 떨다가 따뜻한데 오니까 애가 몸이 녹나부다. 니들 우유 먹였냐? 카펫에다 우유 토했다. 청소하구가라~!

 

역시... 녀석.. 여기서도 한건했다.

니가 지금 그렇게 늘어지게 코골구 있을 때가 아니다. 너때문의 내가 오늘 하루 어떤 일을 당했는지 알면 그렇게 뻔뻔스럽게 누워있진 않을거야.

어차피 넌 청소를 도와주지도 않겠지. 난 고양이가 싫어..

 

교장선생님의 배시시 웃는 얼굴을 뒤로 하고 괭이새끼를 안고

교실로 돌아왔다. 이제 이녀석을 어떻게 처치할지...

집에 데려 갔다간 나도 같이 쫓겨날게 뻔하고 나도 키우고 싶지 않았다.

고양이라니... 내가 미쳤나.. 쥐라도 잡아 오면 어떻게 하냔 말이다.

 

그때 고민을 해결해줄 천사들이 나타 났다고나 할까...

청소를 마친 이반, 저반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이게 그 고양이야? ㄲ ㅑ ~~ 너무 이쁘다...

 

그래.. 짜식들.. 고맙다.. 감동이다. 아이들이 그렇게 동물을

사랑할 줄은 몰랐다. 그렇게 천사 같을 줄이야.

 

그리고 급기야 바라고 바라던 천사의 음성을 들었다.

 

" 이거 내가 키우면 안돼? "

 

오~ 예쓰!

 

이거였다.

그래... 정말 키우고 싶니? 아쉽지만 그렇다면 나는 이녀석과 작별을 해야 겠구나

잘 키워줘야해~~ 흑흑...

 

천사는 고양이를 안고 입맞춤을 하며 돌아 섰다.

카펫에 토했다는 얘기는 차마 못했다.

 

아... 이렇게 인생이 홀가분 할 줄이야..

그리고 이렇게 길고 힘든 하루는 내인생에 다시 없으리라 믿었다.

 

사실 그후 10년도 훨씬 훨씬 지난 지금에 생각으로는

그보다 힘든 하루야 많고도 많았다.

하지만 고민꺼리를 일시에 힘하나 들이지 않고 무혈종료케 해준

그 천사 만큼은 다시 생각해도 고맙기 그지 없다.

 

살다 보면 나도 모르게 홱.. 돌때가 있다.

그날처럼 미친 측은지심이 발동하거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도 모르겠고 원인도 모르겠고

결과는 더더욱 모르겠는 일을 나도 모르게 저지를 때가 있다.

생각한대로만 살아지지 않기 때문이겠지..

 

어느날 훌쩍 여행을 떠나도

마음안에 소용돌이 치는 쓸쓸함 따위로 하루가 무너질 듯 가슴으로

눈물이 흘러도 나는 대체적으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저... 어느날 또 갑자기 내가 미쳐지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