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휴가철임을 가장 절실하게 실감하는 것이
출근시간에 차가 안막힌다는 것이다.
아무리 가깝다고는 하지만 인천에서 서울의 거리가 만만치 않은지라
하루 4시간 이상을 꼬박 길에 버리고 다니는 일이
어느땐 아깝기도 했었으나
출근시간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서 버스를 타고
두어시간쯤 자는 것만이 나의 유일한 낙이었는데
요즘은 그 달콤한 수면의 시간마저도 여름 땡볕에
도둑맞은 것 같아서 그도 역시 억울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언제부턴가 웬만해서는 지각을 잘 안한다.
물론 예전엔 지각을 밥먹듯이 했다.
어릴때는 지각을 해도 그냥 좀 죄송하기만 하면 됐었는데
지금은 그렇지가 않아서 인가보다. 조금 더 책임져야 할 것이
많은 나이가 되서인가...
미안한생각보다는 민망함이 먼저 고개를 든다.
또 한편으로는 열받을때 애들이라도 쥐잡듯이 잡아야 되는데
쪽팔린 일이 있어서야 어디 말발에 힘이나 서겠나 싶기도 하고^^
어쨌든 사무실에서 막내이던 시절과는 사뭇 다른
세월의 쥐약을 조금씩 흔들어 먹고 있음이다.
오늘도 여전히 버스를 탔고 버스는 강남대로에 8시 20분에
나를 떨궈주고 달려가 버렸다.
지금 들어가면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혼자 창문열고 환기시키고 직원들 들어오기 기다리게 될것이다.
약간 늦는 직원들은 조금 미안한 표정으로 슬금슬금 들어오겠지..
오늘은 조금 분위기 있게 커피전문점에 아침일찍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보는 내가 되어 보기로 했다.
교보문고가 있는 빌딩의 커피전문점에는
종로에 있는 교보문고의 비지니스홀에 비하면 그다지 인테리어가 수려하진 않지만
잡지에서 부터 베스트 셀러 까지.. 다양한 종류의 책들이 비치되어 있었다.
그중에 내가 앉은 테이블에 가장 가까운 책이 눈에 띄었다.
아침형인간...
책을 고르는 기준이야 사람 마다 다르겠지만
난 인쇄 상태가 좋지 않은 책은 싫다.
첫째는 종이질이고, 둘째는 인쇄상태고, 셋째는 표지다...
야.. 책이 악세서리냐... 라고 하겠지만
난 아무렇게나 고른 종이에
교정도 보다 만것같이 오탈자 가득한 글무덤에,
그나마 인쇄상태도 고르지 않은채
책마다 가진 멋을 조금도 살려주지 못하는 표지... 정말 맘에 들지 않는 일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고급스러운 좋은 종이에 럭셔리한 디자인을 원하는 건 아니고 뭐랄까...책에는 그 책마다 어울리는 종이가 있다는 것이다.
펄감이 좋은 수입지에 단아한 컬러의 인쇄가 어울리는 책이 있는가 하면
최대한 촌스러운 빨간 글자에 반딱반딱한 싸구리 비닐 코팅을 하고
세네카에는 멋없이 커다란 제목이 찍힌 책에 손이 갈때가 있다.
그것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유쾌한 책을 좋아한다.
그리고 하나 더 꼽자면 내용의 종류다. 물론 남들은 이걸 으뜸으로 치겠지만...
아침형인간, 10억만들기, 부자들의 돈버는 습관, 재테크....등의 처세술에 관련된 책을 그닥 좋아 하지 않는다. 감수성 풍부한 문학 도서에 심취하는 사람도 아니고 어찌보면 만화책을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런책을
대하고 보면 거부감이 밀려오곤 한다.
처세술이 싫어서라기보다.. 내가 경제관념이나 인생에 대한 계획 따위가 없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그건 순전히...
아름답고 매력적이지 못한 문체 때문이다.
자칫 몹시 설득력이 있어 보이는 전문적인 용어들이 쓰이지만 결국은 전문지식에 대한 깊이를 파고들수도 없는 분야일 뿐더러(그랬다가는 경제학박사말고는 아무도 안살거다)
하고싶은말, 설득하고 싶은 이야기만을 골라서 집중적으로 세뇌하며
검증되지 않은 자신의 경험적 이론들을 줄곧 쏟아내는 상업적인
문체가 맘에 들지 않아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다 손에 들게 된 이책...
어느새 나는 11시에 잠들고 새벽 5시에 일어나 가볍게 운동을 하고
우유한잔을 마시면서 신문을 뒤적이는 나의 생활을 머릿속에 나도모르게 그리고 있었다!
이 놀라운 설득력...
마치 TV 홈쇼핑 방송을 보면서 쇼호스트의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정말 다시 없는 좋은 기회거든요"
라는 말에 갑자기 초조해져서 전화기를 들고 정말 사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들어
시계를 자꾸 쳐다 보게 되는 것처럼
아침형인간에 대한 논리는 나의 생활을 자꾸만 휘젛어 놓으려 하는 것 같았다.
그는 저녁은 두뇌활동이 약해지고 이성적이기 보다는 감성적이며
새벽 5시에는 가장 신체 리듬이 좋을 때이므로 반드시 깨어 있는것이 건강에 좋다고 아주 단호하게 말한다.
맞다.. 그럴 것 같다.
누구나 다 그렇게 말하니까...
그런데 잠시 생각해 보면 정말 그게 근거가 있는 이야기 인가.. 싶은 생각이 든다.
내 경험상 나는 새벽 5시에 가장 상태가 안좋다.
물론 밤을 꼬박 새고 일을 할때는 새벽 5시쯤되면 강력한 집중력으로 작업 속도가 빨라지긴 한다.
그러나 밤을 샜을때의 일이다.
동이 틀때쯤 되면 심리적으로 불안도 하고 시간이 얼마 안남았다는데 대한 심적 압박이 극에 달해 있기 때문에 손가락에, 두뇌에 모터를 달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학적 근거가 있다는 그 말을 나의 일상에 적용 시키지 않는 것이 나의 객기일 뿐인걸까 하는 것이다.
문제는 내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그책을 읽는 순간은 새벽에 일어나서 조깅을 하며 신문을 보고 초저녁에 잠드는 나를 상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얼마전에 쇼호스트가 분홍 양피자켓을 광고하는 방송을 보면서
정말 사고 싶어서 안달을 한적이 있는데
그 쇼호스트는 이 양피 자켓은 가로로 절개선이 있어서 뚱뚱한 사람도 절대 뚱뚱해 보이지
않고 너무나 날씬해 보인다고 말했다.
핫...
난 너무나 유혹적이고 매혹적인 그 한마디 말에 빠져들고 말았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고 마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호스트의 말에
심장까지 두근 거릴 정도 였으니까..
그런데... 가로로 절개선이 있는 일이 뚱뚱한 사람을 날씬이로 만들어 준다는 것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이더냐... 게다가 핑크색이라니..
기주씨의 핑크돼지도 아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말을 믿고 싶었다!! 아주 절실하게...
지금으로 부터 100년도 더 전에 쇼펜하우어는 "토론의 법칙"이라는 책을 썼다.
토론을 하거나 누군가를 설득하고자 할때는 옳고 그름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
이기느냐 설득하느냐.. 그것만이 중요하며
그러한 전쟁같은 토론테이블에는 몇가지 법칙이 존재한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토론의 법칙에 대해서도 글을 쓰면 좋겠다라고 생각만 하고 있다.
아직은 나의 내공이 부실하여 엄두를 내진 못하겠으나
그 옛날 쇼펜하우어의 날카로운 지적은
오늘날 현대인이 먹구 사는데 필수적인 먹이사슬, 비굴한 을과 거만하기 그지 없는 갑의 회의 테이블에서도
각종 파렴치한 정치인들의 청문회에서도
그 빛을 발하며 통렬하게 비웃고 있음을 알게 된다. 소름끼치는 일이다.
두번째 법칙, 논증이 안된 내용을 기정사실화 하여 전제로 삼는다.
아직 증명되지 않은 내용을 기정 사실화 하여 은근슬쩍 자신이 주장하는 내용의 근거로 삼는것을 말한다.
처녀의 순결성을 "미덕"이라고 가정하여 정말 아름답고 착실한 여인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순결한 것이 미덕인지는 아무도 정한 바 없다.
그리고 순결한 그녀가 착실하고 성실한 여인인지에 대해서도 검증된 바가 없으나
은근슬쩍 논증되지 않은, 논증할 수 없는 애매한 내용을 기정사실화 하는 것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 나는 사람은 성실하고 부자다... 이런 비유..
3. 자기에게 유리한 비유를 잽싸게 골라잡는다.
아침형인간의 저자는 수많은 업무에 치이고 거래처 사람을 접대하느라 술을 마시고그때문에 잠자는 시간이 줄어 드는 어떤 직장인의 인터뷰를 일례로 삼으면서
그때문에 그 직장인은 생활이 모두 파탄이 나고 있다고 말한다.
그 사람은 결국 그 모든 것들로 부터 벗어나서 새벽에 일어나고 운동을 했더니
삶이 풍요로워졌다더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주장에 아주 설득력있는 좋은 예를 만들어 내었고
무쟈게 부럽고 따르고 싶었다.
나도!!!
나도 그렇게 풍요로운 인생을 살고 싶다는
욕망이 몽실몽실 생겨났다.
그는 일찍 일어나면 건강해지고 부유해지고 현명해진다고 말한다.
늦잠을 좋아하면 밤만 찾아오며
가난은 늦잠과 친하다.. 등등의 격언들을 예로 들었다.
우리 엄니도 할머니도 할머니의 할머니도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실질적인 나의 생활과 하루의 스케줄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나는 5시 40분에 일어난다.
씻고 머리감고 어느땐 좀 늑장부려서 화장을 할때도 있다.
그리고 2시간여에 걸쳐서 회사에 도착하면 9시가 좀 안된 시간이다.
그때부터 이메일 확인하고 몇가지 뉴스나 블로그, 커뮤니티를 살펴본후
또 바쁘게 업무를 시작한다.
그리고 늘 클라이언트의 X같은 요구를 맞추겠다 못맞추겠다 실랑이를 하다가
결국은 야근을 한다.
내가 오늘은 칼퇴근을 해야겠으니 내일까지 기다리라는 멋진 말을 내뱉을 만큼
간댕이가 붓지 않은관계로..
늦으면 찜질방에서 자거나 12시에 출발하는 막차를 타고 간다.
허나 조금 일찍 퇴근하기로 작정했다 해도
일단 야근을 시작하면 8-9시까지는 야근을 하는 뱁!
그럼 집에 도착하면 또 훌쩍 11시가 넘는다.
씻고... 이것 저것 정리하고.. 칼럼에 글도 올리고...어쩌고 하면 또 새벽 1-2시가 된다.
잠이 들면 또 4-5시간쯤 자다가 출근 하는 거다.
이 스케줄은 친구와의 약속따위도 없고
꽃미남과의 데이트 같은 사치스런 핑크빛 시츄에이션도 없고
회식따위는 절대 참석하지 않을때의 일이다.
평범한, 너무나 노말한 나의 일상은
아침형인간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내가 회사를 때려치고 칼퇴근 가능 한 편의점 점원이 되지 않는한...
친구도 다 필요 없이 잠과 운동만을 선택하지 않는한...
아침형인간의 길은 인평생 나에게 열리지 않는다.
좋다.. 그래 다 무시하고 칼퇴근 한다 치자.
아무것도 안하고 운동하고 열씨미 집에 뛰어 들어가야만
겨우 11시에 잠자리에 들 수 있다.
실은 이 책을 끝까지 다 읽진 못했다.
내일 또 커피를 마시며 끝까지 다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마 그럴일은 없을 것 같다.
내가 좀 냄비가 되놔서 처음에 맘에 들지 않으면 끝까지 진득하게 덤비지 못하는 편이다. 너무나 초반에 광분해 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혹시 그렇다면... 이책의 후반에는 나와 같은 스케줄의 일상을
사는 사람이 아침형인간이 되어도 일에 지장을 주지 않는 방법이
나와있는건 아닌가.. 잠시 소심해 진다.
혹시 읽으신분 있으시면 뒷부분에 대해... 말씀을 좀 해주셨으면 좋겠다.
아침형인간..
정말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하루를 아주 가볍고 상쾌하게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책이다.
간절히 바란다.
가난은 늦잠과 친하다?
일찍 일어나면 건강해지고 부유해지고 현명해진다?
그건 잘 모르겠다.. 일찍자고 일찍일어나야만 가능 하다면
난 아마 평생 거렁뱅이가 될거다.
울엄니는 일찌기 나에게 이렇게 말씀 하셨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개가 뜨끈한 똥을 먹는다"
일단은 거기까지만 동의 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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