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가 나를 임신 하셨을때 우리 옆집에는 사냥꾼 아저씨가 살았다.
사냥꾼 아저씨는 임신한 엄마를 위해(이유는 모른다..ㅡ.ㅡ)
노루고기와 사슴피, 멧돼지 간... 등을 선물했고
엄마는 나를 위해 아주 열심히 그것들을 먹었다.
그리고 매일 불경을 외웠다.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관자재 보살행 심 반야 바라밀다시 조견오온 개공도....
화려한 피의 그림자를 뒤집어쓴 유아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방망이 깍던 노인과 비스끄무리한 스토리의
우여곡절끝에 죽을 고비를 넘겼다.
죽을고비를 넘기고 첫돌을 맞은 나는
눈탱이가 새까만 것이 사슴눈을 보는 듯했다고 전한다.
그리고 여섯살
당시 내가 살던 동네에 유치원이라는 것이 처음 생겨났다.
딱 내가 여섯살이 돼던 해였으므로 내 위의 형제들은 아무도 유치원이라는
교육과정을 접해 보지 못했다.
지금도 내 윗대가리들은 넌 남들보다 1년이나 더 많이 공부해 놓구
왜이리 애가 딸리냐... 라는 소리를 밥먹듯이 한다.
anyway...
그곳은 천주교 성당에서 포교차원으로 운영하는 유치원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회색옷과는 인연이 많은 나는 수녀님의 회색 원피스가
무척이나 좋았다.
성당 마당에 깔린 하얀 석영들을 헤집으며 투명한 수정을 찾는 일도,
피아노 치는 수녀님의 손을 잡고 매달리는 노래 시간도 좋았다.
빨간 서울우유 마크가 찍힌 하얀색 머그컵과 그안에 담긴 따뜻한 전지 분유,
한사람당 두개씩 쥐어 주던 사브레 쿠키를 먹는 간식 시간도 좋았고
간식 시간이 끝난 후에 유치원 홀에 다같이 누워 자던 낮잠 시간도 꿀맛 같았다.
낮잠시간에 깔고 자던 코끼리 그림의 분홍담요에는 아직도
엄마가 새겨준 내이름이 있다. 삐뚤빼뚤...
그리고 크리스마스에 갖고 싶은 선물을 그리면
산타 할아버지가 다 가져다 준다길래
마론인형을 그렸더니만
비닐로 척척 감긴 못생긴 솜인형을 가지고 나타난 산타에겐 실망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최소한 엄마한테 내가 그린 그림이 마론인형이라고 귀뜸이라도 했어도 좋았을것을..
그때 깨달았어야 했다.
그림그리는 것을 직업으로 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중학생이 되던해,
간간히 백설기를 얻어먹으러 가던 교회가 아닌,
본격적인 기독교적 문화에 젖어들기 시작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뺑뺑이돌려서 결정된 나의 학교는 미션스쿨이었다!
성경공부 시간과 거대한 강당 바닥에 천오백명이 앉아서 예배를 보는 시간은
나에게 주어진 시련의 시작이었다.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을 외워서 쓰는 필기시험으로 부터 시작된
기독교의 압박...
3월에는 각반 대항 이쁜 달걀 바구니 만들기를 했고
5월에는 성가를 위주로한 합창대회...
가을, 추수감사절에는 이쁜 추수감사바구니를 만들어 축제를 한다.
이쁜 바구니 선발대회가 끝나고 교장선생님의 축도가 끝나면
본격적인 방송반의 방송제가 시작된다.
방송제가 끝나면 온 교정에 울려퍼지던 해피송...
그 당시 획기적이었던
꽃미남 뮤직비디오로 한반도의 지표면을 들썩이게 했던
듀란듀란과 웸의 목소리가 온 교정에 울려퍼졌고
반마다 형광등에 색색의 셀로판 테잎을 붙여 놓여
오후내내 댄스파티가 벌어진다.
그리고 다시 깨닫는다.
교회와 무도회장은 한 나무에서 다른 가지를 치고 자란 형제였음을..
나무이름은.. 광분.. 이런것이 아닐까..
그리고 인생이 또다른 이름으로 꽃피기 시작하는 대학생활..
그 대학이 기독교 학교란 사실을 미리 알았다해도 다른 선택의 길은 없었겠지만
목사님의 축도로 시작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라니!
인생의 앞길은 언제나 쓰레기차를 피하면 똥차가 나타나고 똥차를 피하면
똥 뒤집어쓴 기차가 덤비는.. 그런거였다.
총장은 이렇게 말했다.
채플 4학기를 이수하지 않으면 졸업을 할 수 없다...
성적이 우수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다기에 기를 쓰고 들어갔던 기숙사는 더욱 가관이었다.
매주 수요일 새벽 예배 불참자는 퇴사,
2주에 한번있는 목요일 저녁 8시 성경공부 시간 불참자 퇴사..
그 와중에도 몰래 담을 넘어가 남자 기숙사에 입성하는 대범함을 보였던 나는
각 방의 남정네를 모아다가 소주 파티를 벌이면서 기숙사의
압박으로 부터 자유를 모색하곤 했다.
하지만 정말 좋은게 하나 있었다.
기숙사앞의 작은 잔디정원을 가로질러가면 보이는,
기숙사 전용의 아담한 교회당
주말마다 아무도 없는 어두운 교회당의 문을 열때의 두근 거림때문에 한주가 즐거웠을 만큼 나에겐 소중한 공간이었다.
음계가 맞지 않는 낡은 피아노를 칠때면 마음이 평온해 지곤 했다.
그러다 어느날 교회당 문이 열려 있길래 슬그머니 들어다 본 나는
혼자 방언을 중얼거리며 흐느끼는 한 남정네를 발견한다.
그렇다.
비가 와도 초연히 나가 중얼거리는 비맞은 중이 내뿜은 그것과
같은 강도의 종교적 에너지를 방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학교를 졸업한뒤
나의 종교적 성찰은 끝이 나는 줄 알았다.
졸업한지 10년이 지난 지금
막 아침 회의를 끝내고 자리로 돌아왔다.
생명의 삶이라는 월간지를 전 직원이 낭독을 하고
주기도문을 끝으로 조회를 끝냈다.
내가 아직 세포분열에 골몰해 있을 즈음
엄마는 나를 위해 불경을 외우셨다.
수많은 세포가 하나 둘씩 죽어가는 앞으로의 어느날엔
몹시 회의적이긴 하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는 성도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
예수를 믿지 않는 자들은 사탄과 악의 구렁텅이에 빠진 자들이며
주를 믿어 영생을 얻으라는 메시지를 목놓아 외치게 되는
일이 내생에 없으리란 법은 없음을 깨달았다.
직장..
나의 고단한 민생고와 더불어 지난밤의 질펀한 술자리에서
술김에 질러버린 카드값...
사장님... 저는 같이 기도하고 싶지 않은데요?
라고 말하고 싶은데...
그냥 한번쯤 해도 될거 같은데...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짐싸들고 나가라고 할 거 같지도 않은데...
말하지 못하는 소심한 샐러리맨
호환 마마보다 무서운 민생고의 압박에 시달리는 깡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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