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통로봇의 노래

대천해수욕과 무장공비

영혼기병깡통로봇 2004. 7. 26. 12:13

내고향은 대천이다.

초등학교 사회교과서에서 부터

선데이서울의 미혼모체험수기 그여름의 바닷가...에 이르기까지,

근래에는 세계적으로도 유래없이 풍부한 미네랄 함량을 자랑하는 진흙에 힘입어

관광명소에서 부터 특산물 판매에 까지 자력갱생에 힘쓰는 동네...

대천해수욕장이 있는 곳이다.

 

어릴때의 고향은 여름에는 빠글빠글한 여름 관광객이 적잖이 있었지만
참 별 재미 없는 동네였다.
나처럼 엄마 아빠 손잡고 아이스박스에 커다란 수박이랑 김밥을 싸들고 온

소박한 바캉스가 대부분이었다.
그외엔 뭐 그닥 할만한게 없었으니까...


지금은 여름 한철 관광지에는 온통 유흥, 환락을 위한 첨단의 시설을 갖춘

도시로 변모했고
흔해빠져서 처치곤란이었던 진흙은 머드축제란 이름으로

세계적인 돈벌이의 여왕이 되었다.

게다가 길을 가다 보면 하얀 티셔츠에 발목이 잘록한 왕주름 바지를 입은

일명 형님들...
형님들의 90도 각도의 위용을 자랑하는 인사법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그 대천 해수욕장은 그 옛날

깡통이 코흘리개 시절에는 꼬부랑 꼬부랑 논밭길을 헤치며 학교가는 동네 였고

학교 뒷산에는 아카시아 나무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던 그런 동네였다.

그리고 바닷가에는 "무장공비"들이 수시로 들락 거려서 통금제도가 없어진 후에도

한동안 통금이 서해안 지역만은 지속되었다.

 

기차 역에는 그때마다 "남파 간첩의 무기전시회"가 열려서

빨갱이는 정말 무시무시한 괴물임을 잊을만 하면 한번씩 일깨워주곤 했다.

 

그당시에도 기차도 다니고...

나름대로 관광도시인데다가 연탄이 잘 나는 지역이어서

산업이 아주 발달해 있었던 지라 아주 시골깡촌은 아니었음에도

그래도 서울과는 많이 달랐다.

 

그 사실을 안것은 초등학교 4학년때 처음 서울을 방문 했을 때였다.

 

당시 우리 이모는 서울 만리동에 살고 있었다.

 

만리동은 가파른 구릉지대인데다가 아주 오래된 재래시장이 있고

계획적인 도시와는 거리가 먼... 아주 오래되고 지저분한 동네다.

 

그러니 인구밀도도 아주 높다.

그리고 남산, 남산타워가 정말 적나라하게 보이는 그런 동네다.

 

이모네 집에 올라가는 길목에서 내려다 보는 서울 시내의 전경은 장관이었다.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은 반짝 거리고 있었다.
아! 서울은 별이 정말 많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서울은 별도 색이 총천연색이네.. 그래서 사람들이 서울을 좋아하는가보다..

그렇게 일기장에 썼던 기억이 난다.


그게 다 빌딩에서 새어나오는, 혹은 가로등 불빛인줄이야 아주 나중에야 알았다.
나름대로 순진한 어린이였던 거다.

 

시골에서 상경한, 때꾹물 꾸질꾸질한 여자아이가

낡은 기와집이 빼곡빼곡한 만리동 고개에 낡아빠진 난간을 붙잡고 서서

 

"와.. 서울은 별두 대게 이쁘다~~!"

 

했던거지.

 

달동네 가난한 창문으로 삐져나온 형광등불빛이거나
어설프게 돈좀 있는것들이 노는 동네의 네온사인인줄도 모르고...

그때의 나는 이모가 사준 환한색 꽃무늬가 있는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엄마가 사주던 까끌까끌한 반바지와는 차원이 다른 옷이었다.
위에서 부터 아래까지 하얀 단추로 잠그고 단주가 있는 부분과 목둘레, 소매에는
하얀 바이어스테잎이 두껍게 둘러져 있는 원피스를 입고
두명한 반짝이가 붙은 슬리퍼를 신은 나는

처음으로 놀이동산에 가서 청룡열차를 탔다.

 

바람을 가르던 청룡열차와 화려한 별빛의 기억은 그후로도 아주 오랫동안
서울에 대한 나의 믿음의 뿌리였던 것 같다.


그때의 감동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도 난 서울이 좋다.
적당히 매연도 있어 주시고( 맘이 편하다..)


좀더 나이가 들고 생활이 안정되면 아마 생각이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흔히들 푸른 숲이 무성하고 너른들판에서는 잠자리가 날아 다니는 광경을
창녋은 거실로 내려다 볼 수 있는 전원주택을 꿈꾸거나...

 

선산이 있는 시골 산자락 밑에서
노루농장을 하는게 소원이신 울아버지처럼 시골생활을 꿈꿀지는 모르겠지만.

 

난 아직 몹시 젊거나
아니면 몹시 욕심나는게 많은가보다.

 

욕심의 정체는 잘 모르겠다.
잡지책에서 연예인의 머리를 만지는 무슨무슨 원장이 직접 한다는
강남의 미용실에서 나도 한번 파마를 하고 싶고

 

그나마 가끔이라도 만나는 친구를 연락해서 맥주한잔을 하더라도
서부의 카우보이들이 앉아 있다 나간것같은
월넛 나무바닥이 동네 치킨집의 네모난 테이블보다 맘에 들어서 일까?

 

아직은 아버지의 노루농장보다는
도시의 매퀘한 더위속에서 시원하게 들이키는 한잔의 맥주가
더 좋은것 같다.


흐흐흐.... 난... 도시의 음주가무, 향락문화가 체질인것 같으다.

잠시 화류계를 떠나 있었지만...

곧 프릴달린 화려한 레이스 브라우스와 함께 컴백을

꿈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