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에세이

아버지의 텃밭

영혼기병깡통로봇 2004. 5. 11. 12:08

우리집의 허름한 담벼락밑에는 올해도 고추가 자랍니다.

 

t

 

그리고 아버지의 젊은 날을 함께했던.. 낡은 자전거가 있습니다.

이젠 더이상 움직일 생각조차 하지 않는 녹슨 자전거...

 

어쩌다가 아버지는 자전거 뒷자리에 저를 태우고 학교까지 달리십니다.

어린 저는 아버지의 등에 매달려 올망졸망 걸어 오는

같은반 동무들에게 손을 흔들어 대곤 했습니다.

 

저녁 무렵엔 골목을 돌아 들어오는 아버지의 자전거 소리를

우리 백순이가 제일 먼저 알아듣고는 꼬리를 흔들어 댑니다.

 

자전거를 배워보겠다고 다리도 닫지 않는 아버지의 자전거를 힘겹게 끌고나가

개울창에 곤두박질을 치던... 그 어린날의 기억도

이젠 자전거처럼 녹이 슬고.. 아버지처럼 화석이 되어 갈 것입니다.

 

i

 

집앞의 공터...

우리집앞엔 쓰레기가 난지도처럼 덮여 있는 공터가 있습니다. 

집없는 고양이도 어슬렁 거리고..명절만 찾아오는 못된 아들들의 차도

공터안에서 부릉거리곤 합니다.

 

9

 

구러니..이 공터의 주인은 이름모를 잡초들뿐입니다..

이게 엉겅퀴던가요? ^^ 잘 모르겠습니다.

잡초와 쓰레기와 고양이들의 놀이터에.. 아버지는 어느날 농사를 짓기로 하신 모양입니다.

 

0

 

아침일찍 기차를 타고 도착했을때 아버지는 이 공터에 묘종을 심고

계셨습니다.

오후 쯤엔 비가 올테니 서둘러 심어야 한다시며 분주 하십니다.

아버지는 심장 수술을 하신후에 몸이 많이 안좋으십니다.

아버지땜시 올해는 기필코 시집을 가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엄마는 잘됐다고... 하십니다.

노친네 너무 할일이 없어도 또 더 아푸실테니까 이렇게 뭐라도 하는게 낫다고...

 

이녀석은.. 가지입니다.^^

0

 

이녀석들은 고추...

아주 매운고추입니다. 우리집 식구들은 매운 고추를 무쟈게 좋아하거든요..

맵지 않은 고추는 맛이 없다고...

그러니.. 그렇게 속이 탈이 나지 ㅡ.ㅡ;;

 

9

 

혼자 뭔가 열씨미 하시는듯했으나..

일평생 선비인듯이 험한일 않고 살아 오신 울 아버지...

고추 묘종을 너무 촘촘히 심어놓고 또 엄마한테 타박을 당하십니다.^^

 

아이고... 이양반아... 이렇게 촘촘히 심으면 고추가 어떻게 뿌리를 내려..

비켜봐유... 꼭... 내가 손을 대야혀..

 

 

9

 

엄마두... 뭐.. 과히...

옆에서 아버지가 또 한소리 거드십니다.

 

고추는 그렇게 깊게 심는게 아녀어~ 뿌리만 살짝 가려지게 심는거랴..

 

7

 

고추가 산으로 가게 생겼습니다.

두 노친네가.. 손바닥 만한 텃밭하나 맹글면서

어찌나 투닥투닥 애들처럼 다투시는지... 밭농사를 지었으면 큰일날뻔 했습니다...

 

8

 

어찌어찌 하다 보니 고추 묘종이 50포기나 심어 졌습니다.

가지도 심구요... 호박도 심었습니다.

호박 순이 아주 이쁜데... 사진두 이쁘게 찍혔는데..

그만 제가 지워버렸습니다.

ㅡ.ㅡ;;;

 

o

 

묘종을 다 심고 나니.. 기다렸다는 듯이 비가 옵니다. ^^

비를 조금 맞고 나더니

신기하게도 힘없이 고개 숙였던 녀석이 건강하게 하늘로 뻣었습니다.

자연이 싱그러운 건 역시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 지는건 아닌가 봅니다.

 

0

 

옆집 어부 아저씨네도 길가에 야채를 심었습니다.

이건 뭔지 잘 모르겠네요^^ 무슨 쌈종류 같기도 하고.. 화초 같기도 하고 ^^

저 뒤에는.. 아 파를 심으셨네요..

 

녀석들도 비를 맞더니 더 싱그러워졌습니다.

 

-

 

아버진 이제 걱정이 늘었습니다.

저녁무렵 부터 화장실을 가실때마다 한번씩 밭을 내다 보십니다.

잠자리에 들어서는 고추에 대를 심어 줘야 할텐데.. 걱정 하시더니

내일은 철물점에 가서  비닐을 한두룸 사다 고랑에 엎어 놓아야 겠다고 혼잣말을

하십니다...

엄마가 또 한소리를 참지 않고 하시네요..

어이구... 아주 그냥... 농사꾼으루 나섰구먼... 야.. 느이 아부지 아주 올해

소홀차니 수확허실라는 갑다...

 

ㅡ.ㅡ;;;

 

아부지 왈..

잉.. 그려... 낼부터는 퇴비두 맨들 텡께 음식 먹구 남은거 있으믄 다 뫄놔봐~!

흐미... 아부지.. 음식물 썩혀서 퇴비꺼정 만드시게요??

동네 사람들한테 쫓겨나요 흐흐..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는 충청도 토종 고집불통 할아버지는

남는 비닐은 옆집 아저씨네 텃밭에도 얹어 주자 하고 퇴비 만들면 다같이 쓰고

좋다 하시며 잠을 청하십니다.

 

ii

 

우중충한 먹구름이 동네를 덮고

이제 곧 해가 집니다.

 

0

-

 

낡은 기찻길 옆 오막살이 우리집엔

정원에서 꽃도 피고 밭에서 고추도 자랍니다.

아기도 잘 자면 좋을텐데 ^^ 아기는 없네요 ㅎㅎㅎ

u

 

아버지의 텃밭이 비를 맞고 햇빛을 쪼이면서

싱싱한 태양초를 풍성하게 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싱싱한 태양초를 올해도 맛있게 잡수실 수 있게..

내내...건강하시길...

 

아버지의 고추가..

멀리 떠나는 아버지를 잡아 주었으면... 지켜주었으면 하고 생각합니다.

 

'포토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닭도리탕에 관한 인생보고서  (0) 2004.05.18
헤헤헤... 웰빙이라굽쇼?  (0) 2004.05.12
엄마의 뜰  (0) 2004.05.10
깡통로봇의 마구잡이 돼지고기 김치볶음  (0) 2004.04.29
꽃게의 계절이 돌아와땅  (0) 2004.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