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책:생각

춘곤증 만연한 봄날의 편지

영혼기병깡통로봇 2004. 3. 16. 10:42

지현이에게...


졸리면  나한테 사랑이 담뿍 담귄 편지 한장 날려~
라는 말에 나도 걍 할일 없이 편지를 쓴다. 정말 심심하긴 디게 심심한가보다.

3일을 내리 쉬고 회사에 왔더니 졸립고 피곤하고 삭신이 쑤신다.

역시 죽으면 늙어야 되는거시야... 이렇게 몸이 힘들 줄이야.

담엔 우리 나이에 맞는 일정을 짜서 놀도록 하자.

사당동에서 부킹, 반포에서 떡볶이, 등촌동에서 부킹, 길고 특이한 영화한편, 소문난 스파게뤼 외식, 그리고... 새벽 5시까지의 길고 긴 도박판...

게다가 난 예식장에 가서 남 결혼식 보면서 복장이 터졌더랬지.

또 권여사는 일때문에 제주도 간다고 좋아라 하믄서 가더니만 4시간여 동안 배멀미에 초주검이 되어 돌아 오다니...

얼핏 듣기만 해도 서른 넘은 여인네들의 휴식과는 거리가 멀지 싶다.

만약 또 다시 이박 삼일간의 휴가 일정을 잡게 된다면
우리 이렇게 하자.

첫째날 스파! 그리고 아로마 맛사지!  

를 했으면 좋겠지만 이건 솔직히 돈이 좀 든다. 우리 다같이 대박의 그날이 오기까지 기도 하며 찜질방정도로 만족하는 것도 좋겠다. 그리고 맛사지는 야메지만 만인이 인정한 내가! 내가 싼값에 해주도록 하겠다!

둘째날 영화를 보자. 딱히 할일도 없으니 조금은 움직여야지. 그리고 멋진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칵테일을 한잔 하도록 하자!

그리고 밤이 되면 솔직히 이걸 빼놓을 수는 없다.

후손에 길이 길이 남길 우리의 놀이 문화 빅투! 이건 솔직히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해주지 않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글쎄... 축구경기전의 애국가 제창을 하는 이유와 같은 것이며 빅투를 하지 않는 모임이란  애무없는 섹스와 같은 것이라고 본다!!

그러니 반드시 하자!

셋째날은 아주 조촐하게 아침 식사를 하자.

된장국에 김을 싸서 하얀 쌀밥을 먹자. 현미밥도 좋다. 꼭꼭 씹어 먹으면서 또다시 다음 모임을 기약하도록 하자.

아... 혹시 모르겠다. 우리중에 그래도 가장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네가 남정네를 하나 데리고 온다면 또 일정을 달리 할 수도 있겠다.

남정네의 취미에 맞춰서 뭔가 새로운 이벤트를 준비해 줄 수도 있다.

왜냐?

우린 너그러운 언니들이니까! 후배하나가 남정네를 물고와서 염장을 지른다해도 기꺼이 염장에 소금을 좀더 뿌리고 배춧잎 간해서 보쌈을 해먹을 용의도 있다.

올해는 꼭... 착하고 부드럽고 이해심 많고 너그러운데다가 돈까지 많아서 지금까지 너만을 기다려온게 틀림없어 보이는... 그런 남자를 만나도록!

본인은 잘 모르는 것 같지만 사실 너에게는 강력한 무기가 하나 있다.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너의 미소!!

언제나 화이팅이닷!

하긴.. 올해는 소연여사가 기필코 결혼을 하겠다고 하였으니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점쟁이가 올해는 좋은 남자를 만날거라고 했다면서? 그러니 웬만하면 걍 사귀다가 결혼할꺼라고 결심을 다진 소연여사에게 건투를 빈다.

그러나 한마디를 덧붙이자면.. 지현아 너두 알고 나두 아는 사실이지...

늘 사람을 만나기 전엔 웬만하면 걍 만나자... 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란다.

그러나 막상 얼굴을 보면... 늘 웬만치가 않다는게 문제다.

남들이 보기에 웬만한듯 보이는 사람인데도 아닌건 아닌것이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소연여사가 이편지를 보고 삐질지도 모르겠다.

그래 이것들아 ... 초를 쳐라...

그건 아니다.. 내가 초를 칠려고 한건 절대 아니다..

알아줬으면 좋겠다.

세진이는 날이 갈 수록 신랑하고 사이가 돈독해 지는것 같다. 부럽다. 아마 난 세진이처럼 잘하지 못할 것 같다. 물론 시간이 흐르듯이 너무 자연스럽고 아무일 없이 이루어진것은 아닐거다. 조개가 진주를 품어내듯이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꾿꾿하게 이겨냈기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직도 이겨내고 있는 와중일꺼다. 그러니 부럽다는 말따위를 함부로 해선 안될 테지만... 그래도 부럽다.
난 세진이처럼 지혜롭지 못할테니까 말이다.

어찌되었든....소연여사도 꼭 올해는 좋은 남자를 만날 것만 같은 예감도 든다.

요즘에 언니를 만나면 이전과는 조금 달라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냥 내 느낌일까?  솔직히 뭐가 달라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걍 느낌이... 그렇다.

그게 좋은건지 나뿐건지도 잘 모르겠다.

그래서 생각하다 보니 나도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왕 달라지는 거면 좋은사람을 만나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좋은 사람이 되어가는 거였으면 좋겠다.

그 있잖아 왜....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라는 영화에서..

잭 니콜슨이 이렇게 말하잖아.

"당신은  내가 좋은 사람이 되고 싶도록 만들어요"

누군가 내옆에서 좋은 사람이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 나를 위해서 좋은 사람이 되어 주면 나도 그에게 아주 좋은 사람이 되어 줄 수 있을 것 같다.

아닌가...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주어야 하는게 마땅하겠지?

암튼...넌 내가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드는 사람 중에 하나다.

이건... 정말 사랑고백이 틀림없다고 본다.

이상... 너무 졸립고 피곤하고 3일간의 여독이 풀리지 않은채 춘곤증까지 들이닥친 오후에 날리는 편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