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책:생각

태엽감는새

영혼기병깡통로봇 2004. 2. 26. 01:06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안쪽의 조용한 테이블로 안내되었다. 여자가 의자에 앉고 내가 그 맞은편 의자에 앉자, 그녀는 나에게 양복 바지의 주머니에 들어 있는 것을 모두 꺼내 보라고 말했다. 잠자코 시키는 대로 했다. 나의 리얼리티는 나를 놓치고 어딘가 이 부근을 어슬렁거리고 있는 듯 했다. '나를 잘 찾아낼 수 있으면 좋으련만' 하고 나는 생각했다.

 

 

무라카미 하루키 - 태엽감는새 중에서 -

 

태엽감는새에 대한 소설적 견해를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차피 그것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라운 분석력을 가진 전문가의 몫이며 나는 할줄도 모른다.

단지...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하루키에게 인간은 그다지 위대한 존재는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무한한 존재이유를 내재한 까닭에 작고 보잘것 없지만  존재한다는 것 그 자체 만큼으로 가치를 지니는 것... 쯤... 이라고 해석하고 싶다.

 

활발하고 아름다운 명랑사회의 충직한 시민일 수 없는... 가치를 상실한채 타인과의 관계조차 단절된 현대인을 그리는데 있어서 하루키 만큼 리얼한 작가를 본적이 없다. 도시적인 차가운 감수성과 현실과 몽상사이에 적당히 거리를 두는 냉소, 또는 허무 또는 힘없이 떨어지는 유머...

 

그는 스스로 보잘것 없다고 생각할 뿐더러 세상에 흥미로운 것도 없고 관심 갖고 싶은 것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바보도 아니다. 뭔가 예민하게 신경을 자극 하는 것들이 있음을 느끼지만 그 본질을 알 수는 없다. 그저 존재하고 있으나 존재하는 이유도 알 수 없다. 그리고... 아무일 없듯이 살아 내었던 일상에 조그만 틈으로부터 균열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주인공은 눈감았던 현실에 직면하면서 자신이 잃고 있는게 무었인지를 찾아간다..

 

오늘 아침...

그저 책을 읽으면서 걸었다고 치자. 또는 옆사람과 어제있었던 대통령의 기자회견에 입고나온 그의 넥타이 색에 대해 심드렁한 얘길 하고 있었다고 치자. 그러다 보니 나는  8차선 도로의 한복판에 서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유를 모른다.

 

또는 어느날 갑자기 복면의 사내가 나타나서 나에게 리비똥 가방과 샤넬의 스트렙슈즈를 신겨서 빨간 페라리에 태워 푸른 에메랄드 성에 앉혀주고 다 네것이다.. 라고 말했다고 치자. 난 별로 기쁘지도 놀랍지도 않다. 궁금하지도 않다.

아무것도 모르겠을 뿐이다.

 

나는.. 나의 리얼리티라는게 뭔지 모르겠다.

리얼리티라는 말의 사전적의미는 실제하는... 실제적인... 실질적인.. 진짜와 같은... 그정도 일까..

때로는 뭐가 뭔지.. 아무것도 모를 것 같은 때가 있다.

어디서 부터 뭐가 잘못된 것인지.. 어디로 가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조차 알 수 없는 혼란속에 빠지는 때가 있다.

자신을  마치 이것은 누군가의 잘못도 아니고 어쩌다 눈 떠보면 아무일도 없던 것처럼 처음으로 되돌아 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느날 갑자기 깊고 어두운 어둠속에 갇혀있는 것처럼 느껴질때...

그저 눈을 감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나의 리얼리티가 내 주변을 서성이고 있는거야... 어서 돌아와야 할텐데...

눈을 감고 기다리는 것이다.

철저한 어둠속에서도 내가 존재하고 있음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