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말 콩나물처럼 자랐나...
자식을 낳아봐야 알꺼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아버지는 짐이고 엄마는 한숨이다.
아버지에게도 나는 오래된 종기 같은 걸까.
나는 매일매일 허공에 발을 딛고 서있는 기분이다.
착하고 상냥한 딸이 아니어서 미안하긴 한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아직 활기왕성한 젊은인가보다.
엄마를 보면 화가 나다니!
미친게 아닐까...
이젠 엄마를 이해하고 엄마의 친구가 되어주어야 할 나이인데...
난 아직도 철없는 사춘기 계집아이처럼
서운하고 서럽고 화가난다.
돈없는 인생이 서러운 건
서러워 보지 않으면 모른다.
그러니 천박하다 말하지 말라.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도 진실인양 포장하지 말라.
엄마는 돈만 있다면 늙은 홀애비도 좋고
얼굴이 틀어져서 누군가가 옆에서 시종 침을 닦아주어야 하는
그런 중증 장애인도 좋다고 말했다.
돈만 있으면 그까짓게 무슨상관이냐고 했다.
그럴 거 같았다.
나도 그렇게 결혼해도 될거 같았다.
사랑 따위는 젊어 한때 기분삼아 한두번쯤 해봤으면 된거지 라고 생각했다.
선배는 유학생활 5년 내내 나를 기다렸다.
나는 그의 집안의 재산과 작곡가의 타이틀이 맘에 들었으니
그의 장애 따위는 10여년의 우정으로 극복 할 수 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가 더 늙기전에
나도 착한 딸이 되어 보고자 했다.
철없는 딸년이 뒤늦게라도 민생고에 허덕이며 차가운 사무실에서 밤을 새는일을
그만 두기를 바라던 엄마 소원을 그렇게라도 들어드렸으면 싶었다.
글쎄..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는 절대 결혼하지 않겠다거나
행복하게 살겠다거나..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진 않았다.
무지개 너머 황금 항아리의 존재를 믿고 살지도 않을테지만
사랑에 대한 아름다운 꿈을 꾸지도 않을테지만...
적어도 사람을 미워하게 되지는 말아야 할텐데
그나마도 자신이 없다.
이 극악한 인간의 실체라니..
이 차가운 사무실에서 밤을 새는일이
정녕 민생고 해결만이 이유였던가... 그걸 잘 모르겠다.
전엔 확실했는데 이젠 모르는 것 투성이다.
인생은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는 것과
시간이 지날 수록 흐려지는 것들이 있다.
낯선 땅에서 시작해야 할 새로운 삶도 또 다시 사무실의 지긋지긋한 아침도
매번 화가 나는 엄마의 푸념도..
엄마의 푸념을 닮아가는 소름끼치는 나의 푸념도..
어디쯤 가면 끝이 나는 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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