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날,
나무이야기를 일찌감치 나와 올레길을 걷고 쇠소깍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다가 버스를 타고
타시텔레로 가서 신비로운 무리들이 함께 하는 공연을 보리라... 계획 했지만
아침부터 여자방 멤버들과 뜻하지 않은 수다삼매경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수다의 시작은 비타민으로 부터 비롯되었습니다.
40이 넘으니 여행에 꼭 지참하는 것이 비타민 뭉탱이 입니다.
종합비타민, 프로폴리스, 칼슘, 간보호제, 비타민C, 홍삼진액을 1회용 팩에 하나씩 담아서 갖고 다니다가
길에서 만난 분께 힘내라고 하나씩드리기도 하지요.(무척 좋아들 하십니다....)
아침일찍 출발 준비를 하고 나서 나보다 한두살 많아보이는 분께
비타민 드시고 오늘도 힘내라고 드렸더니...
받자마자 하시는 말씀이...
어머.. 나 이런거 너무 좋아하는데~~ 이런거 챙기는 거보니 그쪽도 연배가 좀....
..... 라고 하셨습니다. 하하하... 아무렴요!!
그래서 시작된 수다.
25세 취업준비생인 참한처자와 셋이 차한잔과 라면 하나, 갓 지은 밥에 짱아찌로 아침 식사를 하자고 꼬셔서
공동식당에서 만났습니다.
어떻게 오게 되었으며 어제는 어디를 다녔고 오늘은 어딜 갈 계획이며... 원래는 여길 갈 계획이 아니었는데
버스에서 만난 주민이 급 추천한 곳을 다니다 보니 엄청난 곳을 발견했다는 둥...
그러다 보니 어느새 10시가.... 흠흠....
수다를 떨다 보니 초등학교 보건선생님인 것을 알고 내가 선생님을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를 한다는 사실을 말하니 또 한번 소름돋는 인연의 장난질(ㅋㅋㅋ막 같다 붙여)에 놀라며 명함 주고 받고 헤어졌습니다.
묵직한 가방을 다시 둘러메고 어떤 길이 펼쳐질지 설레는 마음으로
부랴부랴 길을 떠났습니다.
오늘의 걷기는 15km
올레길 중 가장 아름 답다는 5코스,
남원포구에서 큰엉산책로를 지나 동백꽃군락지를 지나고 쇠소깍 까지 걸어 보렵니다.
올레 5코스가 시작되는 남원포구
바다를 따라 걷는 길모퉁이에는 둘레마다 감성돋는 글들을 새겨 놓았네요
아... 위로되는 기분...
길을 혼자 걷기로 마음 먹었을 때는
나처럼 그들도 길위에 놓여진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한톨씩 세어서 생각을 버려내면서 앞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일꺼라고...
25세 취업준비생, 그 녀의 마음도 그럴거라고... 왠지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일정거리를 유지해 봅니다.
누가 뭐랄 것도 없이 비슷한 시간에 나왔음에도 그녀도... 나도... 일정 거리를 유지 하며 걷습니다.
남원포구를 떠나 이제 큰엉산책로로 접어듭니다.
아.... 정말 아름답다는 말 밖에요..
그리고 떠나길 잘했다.
참 잘했다.
그 녀의 표정이 보일락 말락한 거리쯤에
나도 자리를 잡고 앉아 멍때릴 채비를 합니다.
길을 떠나기 직전 대학원에서 연락을 받았습니다.
뭐 좋은 연락이었으면 좋았겠지만 아니더라구요 ^^
만약 내가 오늘 이 바다를 마주하고 있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이불속에서 전날의 과음과 사투를 벌이다
연락을 받았더라면 이렇게 의연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싶습니다.
아닌가? 훨씬 더 덜 감성적이었을까요? ㅎㅎ
그저 바다가 토닥토닥 등을 쓸어 주는 것 같고
내가 뭐라고 얼토 당토 않은 투정을 부려도 ... 너 뭐냐... 라는 표정으로 쳐다 볼 것 같지도 않고
그래서 나도 멍때리고 앉아 슬쩍 내몸에서 나온 짠물을 바다에 흘러 보냈습니다.
뭐 어때요.. 그 물이나... 그 물이나..
아.. 여기... 큰엉산책로의 출구...
여기에서 사진을 찍으면 출구가 우리나라 지도 모양이 나온다고 하는군요..
지도모양 같은가요?
출구로 잘 나왔는데...
내가 그렇지요...
나도 길을 모르겠는데 어쩌라구요..
25세 취업준비생에게는 차마 하지 못한 말
그보다 20년이 지난 후에도 역시나 내가 하고 싶은게 무언지, 내가 가야할 길이 어디인지..
잘 알아지지가 않는 다는 그 말을 차마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길가에서 맛있는 커피향과 마주한 김에
뒤 따라 오는 청춘을 불러 세워 봅니다.
이봐... 청춘... 차한잔 하고 가자...
길가의 커피집은 수염이 덥수룩한 아저씨가 직접 로스팅을 하고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려서 아주 차갑고 커다란 유리잔에 아주 배터질만큼 담아 주십니다.
향기도 맛도 참 좋습니다.
청춘에게 묻습니다.
어른들은 의례 그래야 하는 것처럼
그렇지 않으면 직무유기 처럼 느껴져서 어름으로써의 의무를 회피하는 무책임한 사람이라도 되는 것 마냥
청춘의 고뇌를 나에게 말해보라고 합니다. 뭐 좋은 말 해 줄 준비도 되어 있지 않으면서요
다만... 나도 그때 누군가에게 나에 대해서 말할 기회가 있었으면 나도 한번쯤
정리해 볼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순전히 주관적인 이해를 근거삼아봅니다.
청춘은 기다렸다는 듯이 말들을 쏟아냅니다.
그리고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웃어 줍니다. 이 언니도 그랬어.
청춘들은... 왜 다 이 하찮은... 사소한,,, 이 가벼움 때문에
눈이 짓무르나요...
근데 그 짓무른 눈은 또 왜 마흔이 넘어서도 마르지 않나요?
흠...
그래도 언니는 어땠어요... 라고 묻는 청춘에게
머뭇거리지 않고 말해 줍니다.
언니도 그랬다. 그런데 지나고 나면 지금도 그렇다? ㅎㅎㅎ
삶은 더 나아지는게 아니라 그저 앞으로 가는 거라고...
매 순간에 매달려서 그 고비를 넘겨야 한다고 생각 하지 말라고...
여행에서 무언가를 얻으려 하지 말고... 꼭 달라지고 싶다면 무언가를 버리라고....
생각을 정리하려 하지 말고 굳이 뭔가를 하려면 생각을 한번 버려 보라고요...
음..... 지나고 보니 ....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말들을 하고 말았습니다.
쇠소깍 까지 쉬엄 쉬엄 걷다 보니 하루가 다 지났습니다.
이제 그녀와 이별 할 시간...
내일 비가 오지 않길 바라며 그리고 다시 만나게 된다면
다음엔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길 바라며 헤어집니다.
헤어지는 일은 참... 익숙치 않아요 ^^
커피 한잔 하고 가자고 손을 건넬 때는 참.. 쉬웠는데
잘가라고... 또 만나자는 신뢰감 없는 멘트와 함께 이별을 하자니
이게 깡통로봇 성미에 맞지가 않아서
아.. 처음부터 말을 건네지 말걸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죠 뭐... 제가 마무리를 잘 지으면 제가 아니지 않겠습니까.
오늘의 임무 15km 걷기 완수...
내일은 우도와 성산일출볼 올레 길을 걸을 예정이었지만 생각 좀 해봐야겠습니다.
엉망진창 숙소 정해 놓고 길을 떠나려니 .... 이게 참... 코스가 웃겨져서 말입니다.
숙소인 타시텔레로 향합니다.
타시텔레는 티벳어로 안녕하세요 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목공, 천연염색, 요가, 바느질... 마음을 내려놓는데 특효약인 몇가지 들을 하면서 살고 계시는 쥔장이 있는 곳입니다.
타시텔레는 표선쪽에 있습니다.
표선에서는 그런데 차를 갈아 타야하고.. 해안에서 조금 육지로 올라가는 느낌이 듭니다.
성읍과 가꿉습니다. (민속마을 등등....)
그리고 오늘의 저는 운수대통!
꿩먹고 알먹고!
대박행운의 날이었습니다.
타시텔레만의 공연이 시작되었네요.
아... 정말 좋았습니다.
그리고 공연이 끝나자 모닥불 아래서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맨발에 춤을 춥니다.
머리가 헝클어진 이외수선생님 삘의 신사도, 약간 타짜냄새나는 스님도
젊고 어여쁜 여인도 다함께 정체모를 음악에 맞춰 춤을 춥니다.
한동안 계속 되는 공연을 뒷뜰에 앉아서
벽을 마주 하며 들었습니다. 오늘은 저들의 대화에 끼기엔 내공이 부족하여...
누울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자.
조금 비겁하게 길게 살다 가자... 라는 주의
타시텔레는 이런 분에게 좋아요!! -->
일정이 빠듯하지 않고 특정 지역을 집중 탐구 하고자 하시는 분
제주도의 아름다운 오름과 자연에 취하실 분
게스트하우스 특유의 문화에 빠져서 사색과 명상으로
하루를 보내는데에 큰 의미를 부여하실 수 있는 분
모닥불 피워놓고 정체모를 불춤을 추는 전생을 기억하시는 분
음! 이런분에게 타시텔레는 좀 고민이실 거에요 --> 잠만 잘 곳이 필요한 분,
바베큐파티에 대한 로망이 있으신 분
제주도 해안을 일주 하실 분, 한라산 가실 분
---> 완전 저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소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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