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렌지 후드 안에서 언제 부턴가 심상찮은 소리가 났다.
뭔가 퉁퉁 거리기도 하고
건드리는 소리같기도 하던 정체불명의 소리...
후드를 열어서 여기 저기 살펴 보았는데 아무것도 없었다.
이상도하다..
한 일주일 쯤 지나서인가 어느날
정체를 확인할 수있는 명확한 소리가 났다.
그것은 새소리..
앗...!!
1주일 사이에 이렇게나 크고 단단한 집을 지어놓았다.
생각해 보니 천혜의 요새가 따로 없었다.
게다가 따뜻하기까지 했으니 새 입장에서는 얼마나 반가운 보금자리였겠나
그러나 나도 힘들게 대출 갚아 나가는 입장이고.. 그래서
새의 무단침입에 대해 그래도 나도 내집에 권리 라는게 있고..
새가 산다고 해서 후드를 안틀 수도 없고...
조만간 알이라도 낳으면 어쩌나 싶기도 하여
녀석들의 무허가건축물을 철거하기로 했다.
뜯어내고 보니 어찌나 탄탄하게 지었던지..
새는 알을 낳으려고 부드러운 가슴털을 뽑아서 집을 짓는 다더니..
부드러운 이끼 사이사이에 가슴털이 송송 박혀 있었다.
남편은 주말 내내...
벌받을 거야.. 노래를 불렀다.
나는 나쁜놈이라며... 벌 받을 거라며.... 노래를 부르면서
세탁소표 옷걸이를 모기향 처럼 돌돌 말아서
연통 출입구에 방어막을 쌓는것도 꼼꼼히 해냈다.
나는... 벌받을거야.. 라면서..
지난 3월 뜬금없이 봄눈이 내리던날은
주방 창밖에 눈꽃이 멋드러지게 피어 나더니만
그리고 봄이 되니 벚꽃이 만개하고
또 목련도 소담스럽게 피어날 준비를 하던 창밖으로 부터
급기야 이름 모를 새까지 날아 들었다.
일요일 아침
느긋하게 잠을 깨어 물을 한잔 마시러
주방에 들어 오면
나른한 햇살이 냉장고 끄트머리까지 눈이 부시다.
오래 되고 낡고... 게다가 교통편도 불편하고
맙소사... 주변에 슈퍼하나도 없는 돈안되는 아파트...
새로지은 호화로운 아파트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이 주방의 4계절은 말그대로 환상적이다!
가끔 우리가 뭐에 홀려서 이 아파트를 덜컥 계약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뭐에 홀리긴.. 그저 주방에 홀렸지.. (미쳤구나!!)
우리 남편은 나한테 홀려서 결혼도 하고
민이 지지배 눈빛에 홀려서 열심히 할머니 민이에게 좋은 감자 밥을 만든다.
정신머리 없는 새 부부도 뜨끈한 바람에 홀려서
아무 생각 없이 남의집에 떡하니 집을 지어놓지 않았던가.
이렇게 홀려서 사는 거지 하는 생각을 한다.
취해서... 의지해서...
작은 것 하나가 갖는 반짝임에 희망을 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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