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이상 지속되기 힘든 대화방식의 끝은
언제나 침묵을 동반하는 방어형 보복으로 이어진다.
역시 인간관계는 단순한 공놀이가 아니었다.
내가 공을 던지면 공을 받거나 피하거나 다시 던지거나... 이 명백한 룰이
인간관계에도 분명 존재하거늘
문제는 심판도 없고 점수내는 포인트도 불분명한 채 지리멸렬하게 이어지기만 한다.
그런 까닭이다.
이제 겨우 서브 한번 던졌을 뿐인데 공놀이 하던 파트너가
갑자기 내가 졌으니 음악감상하자고 하는 와중
나는 혼자 광분하는 것 이외엔 아무것도 할 수 있는게 없어 지는 일...
나의 파트너는 공놀이가 지겨워진것도 아니고
놀리려는 것도 아니고
무시하려는 것도 아니고
그저 상대방을 배려하는게 좋다고 배운 도덕교과서의 1장 1절만 외운 탓이다.
신문의 헤드라인만 �어보는 전법만 몸에 익히고
행간의 이해를 통해 생활의 발견에 적극 응용을 해야 한다는 사실은 미쳐 배우지 못한 채
무조건 먼저 미안하다고 말하라는
배운 도덕적 무결성원칙을
철저히 고수하려는 삶의 자세
이유를 물었는데 그는 미안하다고 말한다.
젠장...
나는 다시 화가 난다. 그때 또 다시 미안하다고 말한다.
싸우면 큰일 난다고 배운걸까
뭐가 미안한걸까 미안한 이유는 알고 있는걸까... 난 정말 모르겠는 것 투성이다.
이혼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확신이 든다.
하긴.. 결혼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내가 전통과 가족의 울타리를 신봉하는 인류는 아니었다. 원래...
결혼속에서 따뜻한 가족이나 사랑하는 나만의 무엇이던가 하는
닭살이 파도치는 인생관을 갖지도 않았을 뿐더러
울컥쏟아지는 분노와 납득할 수 없는 사고방식을 참아낼 만큼의 인격도 갖출 생각이 없다.
삼일간의 침묵속에서 나는 수많은 생각을 한다.
내남편의 "미안해"의 의미에 대해서...
내가 앞으로 50년 동안 "미안해"속에서 살아 남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
당신은 왜 청소기코드를 빼놓지? 쓸때마다 충전안되어 있으면 짜증나고 다시 충전될때까지 기다려야 되는데 우리가 시간 널럴한 사람도 아니고 오밤중에 퇴근해서 잠깐 시간냈다가 죽은듯이 자고 일어나서 출근해야 하는 사람들이 왜 합리적으로 살지 못하는 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원을 빼놓는건 이유가 있을꺼야? 왜그러는거야? 전기요금이 많이 나와서? 지구를 살려보려고? 난 뭐라고 하는게 아니라 이젠 정말 궁금해서 그래... 당신 생각이 듣고 싶다구... 내가 여러가지 생각을 해봤는데 이게 습관적으로 당신 몸에 밴거라서 그런걸까 싶었어 근데 왜 티비는 코드 안빼고 다녀? 두번째 가정은 이래, 사실은 늘 코드를 꽂아 놓는게 죽어도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 사고방식의 소유자다... 근데 왜 내가 처음에 코드 꽂아 두라고 했을때 알겠다고 했어? 그때도 미안하다고 했지? 두번, 세번, 네번... 쓸때마다 충전 안되서 내가 열받았을때마다 얘기 하면 그때마다 미안하다고 했어... 그건 무슨 뜻이야? 나 엿먹으란 뜻이야? 내가 학생주임 선생이야? 교문앞에서만 무사히 지나면 다시 신발꺽어신고 껄렁하게 담배피면서 쾌감느끼는... 그런거야? 세번째 가정은 당신이 저 청소기를 너무너무사랑하고 아끼거나 물자절약이 몸에 배어있을지도 모른다는거야. 내가보기엔 전혀 아니지만 어쨌든 그렇게 가정을 해봤어 그렇다면 정말.... 청소기 아끼려고? 정말 저걸 아낄 생각인거야? 그거말고 다른건 왜 안아껴? 청소기는 아껴야 되고 물, 가스, 담배값, 주유비... 아낄게 얼마나 많은데 지금 청소기에 정열을 쏟는거야? 저게 유명한 지도자 사인을 받은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보물정도 되는거야? 청소기가 인생의 전부야? 내가 편하고 내가 이딴거에 광분하면서 살지 않을 수 있다면 저딴게 뭘 그렇게 아낄 대상이야... 청소기 고장나면 새로 사면된다고.. 시간은 안아까워? 청소기하고 시간을 바꿀셈이야? 청소기 하고 편리한 생활을 바꿀 셈이야? 청소기 아까우면 그냥 걸레로 청소하고 빨아? 그거 할 수 있어? 그럼 청소기를 내가 버려버리게,... 난 저거 하나도 안아까워 내인생에 비하면...
라고 말하지 못했다.
정작 하고 싶은 말은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여자의 질문과 대화시도에 대해 남자는 공격받는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그래서일 것이다.
이 전쟁을 빨리 끝내야 한다는 사명감에 심장박동수가 빨라진 남자는
반드시 져줘야 한다는 남자들만의, 여자들은 결코 받아들이지 않는 방식의
기사도 정신을 발휘 하며 뿌듯해 한다.
여자는 그 기사도 정신 때문에 미쳐가고 있는데...
개처럼 짖으며 핏대를 세운다면 여자에게 또 남자는 미안해라고 말할 것이다.
난 침묵하기로 했다. 쭉...
청소기 전원을 꽂지 않은 것때문에 화가 난거라고만 믿는 남자는
침묵이 서운 할 것이다. 쭉...
미안하다고 말했는데... 너무한거 아니야...
'깡통로봇의 노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첫번째 무엇에 대하여 (0) | 2007.11.20 |
---|---|
밤을 잊은 그대에게 (0) | 2007.07.23 |
정정당당 사이트 (0) | 2007.06.28 |
날 더워지면 찾아 오는 깡통로봇의 노래 ㅡ.ㅡ;;; 이렇게 미쳐가는거지 (0) | 2007.06.21 |
제자리에서 (0) | 2007.04.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