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통로봇의 노래

4차원 A형

영혼기병깡통로봇 2006. 12. 26. 15:16

견디기 힘든일이란게 없다.
어차피 시간에 안겨서 흘러가게 되어 있는 것을...
오히려 이럴줄 알았으면 그때도 참았으면 좋았을걸
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기특하기도 하지...

넌 커서 뭐가 될래 라는 질문에도
난 정말 굳은 신념을 가지고 대답해 본적도 없고
무엇이건 대답이란걸 하면서도 내안의 나라는 놈은
과연 내가 이룰 수 있을까 라는 의문만
주렁주렁 매달고 있을 뿐이었다.

난 지금 뭐가 되어 있는 걸까?

차장님은 디자이너가 아니니까 괜찮아요.. 디자인쯤 못할 수도 있어요... 라던 그의 말이
심장을 후벼파며 밤마다 꿈속을 분탕질 쳤던
새봄의 일들이 전혀 다르지만 아주 똑같은
패턴으로 반복되었다.

이팀장은 솔직히 디자이너에 가깝습니다.

이팀장이 무슨 기획잡니까...

기획자가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이 가상해서 기회를 주는겁니다.

...

 

정... 반... 정... 반...

변증법적 역사의 발전과정을

한 인간이 봄과 가을과 겨울에 걸쳐서

온몸으로 체득하게 된다고는 배우지 않았다.

난 뭘까... 지금 난 뭘 하고 있지?
난 똑똑한가 멍청한가..
창의적인가 고루한가
열심히 일하고 있나 게으름을 피우고 있나
생각이 많은가 아무생각이 없나
욕심이 많은가 아무 욕심이 없나
사랑하고 있나 미워하고 있나
돈이 많은걸 좋아하나 사람이 많은걸 좋아하나

대체 어떤 종류의 행복을 원하고 있길래
다른 사람에게 비춰지는 나의 정체라는 것이
이렇게 비참하게 일그러 진단 말인가..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흘러들어 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그놈이 와달라고 사정해서 왔다는 말따위도
이젠 민망하기 그지 없네..
현재 디자인팀장이 공석이니 디자인팀이 안정될때까지만

제발 겸임해달라고 사정해놓구

1년동안 디자인 리뉴얼만 했다..
그래.... 다 중요하지 않다. 구차해...

구차해..

억울하다고 말하는 것도 쪽팔려
오죽 하면 나이를 이렇게 쳐먹고 직장생활을 15년
가까이 하면서
기획질이 몇년짼데...
오죽하면 그런 소리를 듣고 살겠니..

그래도...디자이너야? 기획자야?
거참...
이시점에서 내가... 이 고민을 하고 있을 줄이야..

직장을 계속 다닐까 전업주부가 될까
혹은 걍 조그만 가게나 할까...
이런거 고민할 시기 아니야?

그렇다면 둘다 아무것도 아닌 채로
어디든 살아 남아야 겠기에 현실적으로 가장
합당한 선택과 결정을 했다고 봐야 했다.
역시...보헤미안 컴플렉스의 전형이로군...

그렇다면 나는 진정 보헤미안처럼..
그냥.. 이대로 흘러가면 되는 거였다.
왜 흘러가야 하는지도 묻지 말고
어디로 흘러가야 하는지도 물지 말아야 했다.
그리고 나의 흘러가는 모양새에 대해
각기 다른 사람들이 각기 다른 해석을 가지고
마녀사냥을 나섰다 해서
억울해 하거나 절말해서는 안되는 거였다.

그러나
나는 절망한다.

그러서
난감하다

대체 이 시점에서 나는
무슨 노력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다시 훌륭한 기획자라고 인정받기 위해
노력해?
기획자의 길은 나의 길이 아니었구나...
돈오점수, 정혜쌍수.. 깨달음의 손뼉을 치고
또다시 자리를 털고 일어나?
아니면 어떤 개자식들이 지들 꼴리는대로
개소리를 지껄이든지.. 그냥 무시하고
에브리데이... 마이 페이스..

라고 생각하면서도
지금 몇일째 틈만 나면 그생각을 하고 있다.
"....열심히 노력하면 훌륭한 기획자가 될 수 있습니다......"

잊혀지지 않는 울림이
시간과 공간과 상관없이 사방에서 기습적인
공격을 시도 한다.
언제나 그렇듯이.. 스스로 무능과 열등감에 시달리는 중생은
소심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이 우주의 진리..

O형이거나 B형이었다 해도
풍파에 시달리고 졸라 더러운 상사에게
개무시를 당하거나
별것도 아닌 것들한테 배신당해서 연애의 쓰디쓴
피맛을 본 사람들이
어느 순간 무능과 열등감에 눈을 뜨면
피의 정기가 A형으로 둔갑한다.
물론 이건 4차원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구로역앞의 헌혈의 집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진실이다.

우주는 신비로운것...
나는야.. 4차원 A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