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통로봇의 노래

학생부군신위

영혼기병깡통로봇 2004. 6. 19. 05:58

"선배.. 오랜만이에요."

 

"그래.. 오랜만이다.. 잘지내지?"

 

"이혼할일 있거나 하면 전화해라"

"아직 결혼을 안했냐? 그래가지고 언제 이혼하냐.."

 

가정법률상담소의 조성의 선배, 가정의 행복을 지키는 파수꾼..

 

"담배요? 다시 피워요... 우리 회사가 요새 분위기가 안좋아요. 좀 피워줘야 돼요"

 

담배인삼공사의 말단 영업사원, 후배 이종민, 일명 바보이종민

녀석이 조금씩 인생을 배워간다 싶었는데 벌써.. 애아빠가 되었다.

 

"난 30억 부도 맞았다. 아 씨... 우리 공장에 외국인 노동자가 있어.. 근데 이것들은 망치 들고 인상을 써야 겨우 일하는 척한다고.. 근데두 나 부도 맞을때 걔들 퇴직금까지 다 챙겨주고.. 일자리 다 알아봐준다음 난 쪽박찼다고.. 문닫았어~"

 

예전에도 부담스럽게 말이 많던 선배, 그의 파란만장 인생역정을 15년만에 리바이벌하다. 그새 많은 내용이 업데이트 되었다.

 

"난 말야...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후회되는건... 학교다닐때... 젊은 혈기에 그게 옳다고만 믿었지... 늙은 교수님을 학원정상화,,, 배울권리.. 어쩌구 하면서 쫓아낸거... 참.. 그 늙은 교수님을 말이야.. "

 

"선배 사실 그거... 그때 그 밑에 2학년 담임교수 있죠? 그분이 주도 한거에요.. 제가 학생회장이었잖아요"

 

"그래.. 그놈.. 그럴줄 알았다. 철학과 폐과 될때 아무말 안하고 교무과장 자리 받아먹고 폐과에 손들어 줬지... 그게 학자가 할짓이냐.."

 

유난히 웃는 얼굴이 선해보이던 선배, 허리는 39인치쯤? 어느덧 40을 바라보는 선배의 허리띠 만큼, 살아온 날들 배운 지혜만큼 그의 본질은 더욱 짙어져 간다.

 

"아... 선배 그런 얘기 그만해요.. 선배 애가 몇살이야?"

 

"큰애가 중2, 작은애 4학년.. 그렇지"

 

"벌써요? 와 징그럽다.. 징그러"

 

"내가 정상이지 임마.. 넌 왜 시집안가?"

 

"안가긴요... 특별히 눈이 높은것도 아닌데 못가요 ^^"

 

"괜히 콧대 높이지 말고 주위에서 찾어. 그나이까지 빡세게 돈벌기 피곤하지두 않냐?"

 

"선배... 걍 일하는게 행복한가부다.. 그렇게 생각해주면 어디가 덧나"

 

"진짜루?" 

"아니 ㅡ.ㅡ;;"

"짜아식~"

 

"선배 근데... 이건 선배들 책임두 있어... 맨날 우루루 몰려다니면서 술먹을 줄이나 알았지... 연애하는것두 안가르쳐 주는게 무슨 선배냐..."

 

이대목에서 누군지 말안해도 다 알까?

여전히 내이름보다는 깡패라고 기억하고 있는 선배...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이 개기는 깡통로* 이었다.

 

"야아~.. 데꾸 다니면서 사람 맹그러 줬더니 이젠 보따리 내노라네.."

 

" 예전에 생각나? 선배 자취방에서.. 다같이 술먹구 퍼져 잔적 있자나... 담날 눈뜨니까 선배가 내옆에 누워있고... 동기놈 하나는 발밑에 누워 있고 그렇더라..

그땐 몰랐는데 지금 생각하니까.. 끔찍한거야~ 안그래? 남녀가..

근데 또 생각해보니 화가 나대? 선배들이 엄청 착한 거 아니면.... 내가 여자로 안보였다는거지.... 그렇게 매력이 없냐?"

 

"캬캬캬캬.... 야... 그걸 대놓구 물어 보면 어떡하냐.. 니생각엔 우리가 착할거 같냐?"

 

"아니...ㅡ.ㅡ"

 

눼.... 선배라는 존재는 나보다 많은 것을 알고, 더 많은 것을 이해하고,

늘 내가 모르는 것에 대한 이해를 도와준다.

 

 

 

 

 

 

 

10년 쯤 지났다. 학교를 졸업한지..

선배들은 아마 그보다 훨씬 더되었다.

어쩌면 우리는 다시 만날일이 예정되어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 서울에서 3시간을 차를 몰고

칠갑산 산자락이 너울대는 한 농가의 상가집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그렇게 다시 만났다.

 

학교를 다닐때도, 졸업한 후에도, 과가 폐과되던 그 암울한 싸움에서도..

늘 잊지 않고 우리에게 힘이 되어 주던

대빵 선배네 아버님이 별세하셨단 소식을 들었다.

 

마치 아무도 모르게 세상속에 숨어 있던 의로운 초인들이

어느날 누군가에 무슨일이 생겼을때

홀연히 나타 나는 것처럼...

선배... 후배들이 좁은 마을의 어귀에 모여든 것이다.

 

 

 

마치 김창완의 노래처럼..

 

네가 기쁠 땐 날 잊어도 좋아

즐거울 땐 방해할 필요가 없지

네가 슬플 땐 나를 찾아와 줘 너를 감싸안고 같이 울어 줄께

네가 친구와 같이 있을 때면 구경꾼처럼 휘파람을 불께

모두 떠나고 외로워지면은 너의 길동무가 되어 걸어 줄께

 

잔디광장에 앉아 종이컵에 막걸리를 돌리던 그때처럼

우리는 또다시 하루살이와 모기가 전쟁을 치루는

가로등 밑 논두렁에 아무렇게나 주저 앉아

비를 맞는다.

 

비에 젖은 안주와

하루 살이와 함께 삼키는 술잔이

이다지 낯설지 않음은

 

그때와는 어쩐지 다른 얼굴이지만

본질은 변함 없는 탓일 것이다.

 

그리고 선배...............선배 옆에 앉은 그분..

지난 연말 모임때 그분 인것 같다.

같은 회사에 근무한다고 소개하시던 그분..

그분이 상복을 입고 계신다!

 

아... 그새 사랑이 자라버렸구나..

 

상중이라 말은 못했지만..

49제가 지나면 앙큼한 선배를 좀 못살게 굴어야 겠습니다.

 

선배.. 축하한다고 해도 될까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첫차를 기다리며 PC방에서

먼길 가시는 당신

당신의 푸른 꽃상여가 대문을 나섭니다.

 

젖은땅 도려내어

당신을 묻고

 

산을 휘감는 빗소리 더불어

한가락 흐르는 곡조

 

달구질 한발에 당신의 한숨을 묻고

달구질 한발 걸을 때마다 당신의 한숨이 내 옷자락에 파고듭니다.

 

달구질 한발에 당신의 환한얼굴을 묻고

달구질 한발 걸을 때마다 당신의 힘든 눈물이 내 어깨를 짓누릅니다.

 

당신을 묻고 돌아서는 산아래

길게 늘어진 그림자에 몸을 묻습니다.

 

뒤돌아 보아도 그림자만 길어진

산자락에는

이제도...당신의 체온

 

 

박철수 감독 / < 학생부군신위 > 감독 메모

 

1992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급하게 고향 청도로 내려 갔다. 고향집에 도착한 첫날,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에 한없이 슬펐다. 곧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바쁜 상가집이 눈에 들어 오자,슬픔 대신 상가집의 구경꾼이 되어버린 나를 발견했다. 나는 더없는 불효자다. 상주 노릇을 하면서 7년전부터 머리 속에 넣어 두었던 < 아비 >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병풍 뒤에서 상가집 현상들에 대한 메모했다. 상가는 잔치집과 같고, 비극적이고 폭력적이며, 죽음 앞이기 때문에 용서와 화해도 쉽게 되는 곳. 한마디로 엄청난 코메디다.
 온갖 사람들을 보며 그들 모두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어 보자 하고 생각하니, 또 자신이 없어졌다. 하나의 줄기로 된 스토리 영화는 도무지 불가능 할 것 같았다. 재미는 전면에 놓인 드라마가 아니라 바로 뒤에 있는 현실에 있는데, 굳이 일정한 방향으로 짜맞춰진 영화를 만들 필요가 없지 않는가? 아무래도 난 불효자다. 내가 아버지를 보내드리면서 마음속으로 이런 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면 아버지는 어떤 표정이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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