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통로봇의 노래

나는 냄비다.. 그러나 누가 냄비에게 돌을 던지랴..

영혼기병깡통로봇 2002. 6. 19. 09:42
내나이 12살
반대항 피구대회에서 상대편 수비(그땐 그게 수비라는 건지도 몰랐다.)가 공을 달라길래 가슴에 안겨줬다.
그리고 쫓겨났다. 이유는 몰랐다.
내나이 16살때 백미터를 23초에 뛰었다.
그리고 꽃다운 열여덟.. 대입고사의 문을 두드리고자 체력을 겨루던 날
내가 던진 작은 고무공은 1미터 원을 겨우 벗어나 데구르르 굴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스무살...
거칠 것 없던 나이 스무살...
생활체육 기말고사에서 멋진 스매싱을 땅으로 내리 꽂으며 선전했다.
시험종목은 베드민턴 이었다.
베드민턴은 네트가 머리맡에 있는 것인줄 졸업할 즈음에 알았고 그때까지
체육교수를 저주하는 나날을 보냈다.

그리고 아름다운 나이 스물일곱에 나는 스포츠에 미친 인간들을 만났고
내 남자는 스포츠가 직업인 사람만 아니면 된다는 평소의 인생관과는 달리
스포츠로 밥을 벌어 먹는 수많은 인구중에 하나가 되어 있었다.
"인생은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난생처음 축구장에 서서 흐르는 두루마리 휴지 세례를 바라보는 나를 발견하였으며
운동장에서는 중계방송이 나오지 않는다는 놀라운 사실을 깨닫는다.

어린애 머리통보다 좀 큰 공하나를 쫓아다니면서 저게 뭐하는 짓인지 이해 못하는 순간이 더 많다.
이기고 싶으면 가위바위보를 하던가 한대씩 번갈아 가면서 패다가 먼저 죽는 놈이 진다거나
돈 좀 있으면 돈 있는 놈이 이기면 그저 간단하게 순위 정하고 서열정하고 깨끗하게 정리 될 것을
저 중노동이 의미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의심하는 순간이 더 많기도 하다.

그러나 16강에 오르는 순간 산더미처럼 떨어질 일거리들의 두려움과 승리의 기쁨이라는 온국민집단 패닉이 주는 짜릿한 유혹의 딜레마 속에서도
이기길 바란다. 그리고 오늘 8강에 오른 기적앞에 심장의 강력한 파동을 느끼면서 내 나라가 자랑스럽다고 생각했다.

인생도 억울하고 생긴것도 억울한 을용이.. 노친네가 몸으로 만든 pk를 하늘로 날린 을용아... 그래도 사랑한다.
황선홍의 똥볼 징크스를 그대로 이어 받은 듯한 기현아... 국민들이 널 죽이진 않을 거다. 너도 사랑한다.
전천후 듬직맨 상철이...
아직 솜털 보송보송한 애기 천수야(아줌마의 느끼 멘트를 날리고야 말았다.. ㅡ.ㅡ)너의 근성에 찬사를 보낸다.
지성아... 넌 꼭... 반드시 유럽에 다녀와야 한다..
아.. 두리야.. 나의 윤기 흐르는 종마...(또 다시 날리고 말았다. )언젠가 너의 능력을 제대로 보여주길 바란다.

그리고 가장 사랑하는 황새...
오랜동안 똥볼의 멍에를 지고도 아름다운 날개짓을 멈추지 않는 나의 선홍... 정말 사랑한다.

난 이들이 어느 팀 소속인지 정말 모른다.
우리나라에 축구팀이 몇개 있는지도 모른다.
삼보엑서스가 축구팀인지 야구팀인지 허재가 얼굴을 비쳐줘야 분별이 가능하다.
해설자가 없으면 경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나는 어쩔땐 송재익의 어이없는 만담이 더 귀에 쏙쏙 들어 올 때도 있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가슴 설레는 꽃미남들이 떼거지로 모여서 뛰다가
눈탱이라도 찢어 지면 어찌나 안스러운지... 이 누나의 따뜻한 손길을 기다리고 있지나 않는지..

역시나.. 난 냄비다.
그러나 부끄럽지 않다. 정말 냄비이기 때문이다.
스포츠를 많이 알지 못하고 스포츠를 그다지 사랑하는 팬도 아니다.
하지만 난 자랑 스럽다. 즐길 줄 알기 때문이다.

내가 즐기고 싶을 때 즐긴다. 즐기고 싶지 않을때 나의 일을 한다.
그러나 어쩌면 쭉 즐기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보다 아름다운 것이 있으랴..

그리고 지금 모든 스포츠의 아름다움은 결과에 있지 않으며
그 과정속에 흐른 인간의 땀과 열정에 있는 것이라는
닭살 스러운 멘트가 머리의 의지와는 달리 가슴에서 새나오곤 한다.


에필로그---------

폴란드전>>>>

에꼴 : 야... 우리 축구 같이 보지 않을래?
에꼴친구 닭살 : 나 축구 싫어해..
에꼴 : 응...

에꼴은 혼자 집에서 티비를 본다.. 혼자..

10시 30분경...
누군가가 엠에센으로 메시지를 날린다.

닭살 : 야~~ 봤어? 봤어? 오~~~ 필승 코리아...
에꼴 : ㅡ.ㅡ;;;

이날의 짧은 대화는 닭살부인이 냄비로 가는 길의 서막에 불과 했다.


미국전>>>>

에꼴은 혹시 모른 16강 결과를 지켜 보기 위해 회사에 남아 근처 맥주집에서
관전을 했다.
나의 황새에게 시련이 닥쳤다.
이임생의 하얀 붕대를 기억 하는 사람들은 또다시 가슴으로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늙고 지쳐보이는 황새가 몸으로 만든 pk... 을용이가 실축으로 마감한다.
그리고...
저녁때 닭살에게서 전화가 왔다.

닭살 : 야~~ 우리 나라 애들 너무 잘하지 않냐?
진짜 예술이야.. 미국애들 비겼지만 우리가 이긴거야.. 당근이지..
에꼴 : 그지? 아 정말... 너무 안타깝다.. 3:1로 이길 수 있는 경기 내용이었어.
난 정말 이임생 생각나서 눈물 날뻔했다니까..
닭살 : 이임생이 누군데?
에꼴 : ㅡ.ㅡ 미안....

닭살은 냄비로 향한 힘찬 행진을 계속하고 있었다.


포르투갈전>>>

에꼴은 회사에서 단체로 어찌어찌 구한 3등석 표를 들고 인천으로 향했다.
감기가 지독하여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기침이 나와 가지 않으려고 하였으나 주위의
끊질긴 꼬심에 넘어가 인천꺼정 원정을 떠난다.
그러나 표 10장에 모여보니 사람은 11명이다.
에꼴은 직원들 얼굴에 태극기 그려주고 서울로 향한 버스를 탄다. 혼자 쓸쓸히...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폐병환자처럼 기침을 하다가 진짜 우울한 인생임을 실감하며
집에 도착하니 후반전 시작했다.
혼자 소리지르며.. 집에서 봤다.
역시나 저녁때 닭살에게서 전화가 왔다..

닭살: 어머? 정말 인천까지 갔다가 그냥 온거야?
그럼 말하지.. 나 광화문에 있었는데...
에꼴 : 광...화..문.... ㅡ.ㅡ;;;

아... 그녀는 정말 축구를 사랑하나보다. 광화문의 50만 인파속에서 대한민국을 외쳤을
닭살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그녀의 머리에 냄비하나가 나타났다 사라진다. 음...


16강전>>>
안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16강 이벤트를 결국은 만들어서 사이트에 올려 놓고
일찌감치 퇴근했다.
5시 30분에 나와 머리라도 자르고 가려고 이대입구에서 하차하는 에꼴..
모두 영업을 안한단다... 하하하....
까페도... 미용실도... 술집도... 하다 못해 거리의 포장마차도...
티비가 없는 가게는 문을 닫고 거리에 나왔다.
집에 도착하니... 또 다시 후반전이 시작되고 있었다..
오늘도 후반전부터 관람하는 에꼴...

<에꼴의 집>
에꼴 : 와아~~~~~~~~~~~~
와~~~~~~~~~~~~~
너네 너무 잘한다~~~~~~~~~~~~~~
와~~~~~~~~~
두리야.. 너 너무 잘달린다... 어떡해..
와~~ 와와와와와 황새애애애애애애~~~~~

억~~~~ 정환.... 사랑해..... ㅠ.ㅠ


에꼴의 집엔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민이조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