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도곡동 이다.
그 유명한 부와 명예의 상징...타워팰리스
의 바로 옆건물에 있는 서버호스팅 회사에 와있다.
지금 나는 바이러스와 씨름을 하고 있는 중이다.
지난번 웜바이러스 대란때문에 돌아버린 서버를
진정시키고자 왕진을 나왔다.
간단한 소독약과 구충제 몇알들고 나오면서
옆집언니와 소주한잔을 약속했건만
막상 와 보니 이놈이 간단한 구충제 정도로
해결될 상태가 아닌 것이다.
어찌나 그동안 지저분하고 꼬질꼬질한 생활을 했는지
요즘세상에 발견하기도 힘든 트로이목마라는
벼룩에다가 갈고리촌충보다 더 독하다는
님다바이러스까지 온몸에 끌어안고
해소천식과 고열에 시달리고 있었던 거다.
내 어찌 하루저녁 음주가무를 위해 어리석은 민초의
불행을 가벼이 여기고 바람과 같이 사라지리...
......라고 생각하기엔 여긴 정말 더럽게...춥다.
에어콘보다 송풍기에서 나오는 칼바람때문에
해골이 흔들리고 손이 굳었다.
이러케 오래 걸릴 줄 알았으면 만화책이라도
빌려오는 건데... 젠장젠장...
그래서 지금 5년째 웹진을 운영하고 있는
서버의 바이러스 검사를 하고 있는 중이다.
5년째 웹진을 운영하고 있는 컴퓨터를
검사한다는 말인 즉슨...
20만명이 넘는 회원이 있고 20만명이 넘는 회원이
5년동안 들락거리던 자료와
20만명의 회원을 위해 만들어 놓았던 데이타를
전격적으로 검사한다는 뜻이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학생이 천오백명쯤 댔다.
천오백명의 신체검사를 하기 위해 인근 병원에서
나온 간호사 언니와 의사선생님들은
똑같은 일과 똑같은 말을 하며 하루를 보낸다.
아 하세요.. 팔을 위로 드세요...
나는 오늘 낙도 어린이 신체 검사를 위해
목검 옆구리에 차고 산넘고 물건너 모터보트타고
헤엄치면셔...셔.. 셔...
엔터와 네.. 아니오를 선택하는 일로 모니터와
눈싸움 중이다.
우리집 컴퓨터도 엊그제 포맷을 했다.
보통 요즘 바이러스는 네트워크를 통해서들어 오는
경우가 많아서 치료를 한다고 해도 완벽하게
깨끗해지기 어렵다.
그래서 웬만하면 속편하게 포맷을 해버리고 만다.
고치고 자시고 해봤자 안댈놈은 첨부터 포기하는게 좋다.
남여상열지사도 그렇다.
처음 남자를 사귈땐 어떻게 해야 되는지 잘 모른다.
어떻게 알겠는가.. 남자라는 놈의 구조도 모르고
성향도 모르고 뭔가 잘못된듯 해도 이유조차 모를
때가 더 많다.
어리부리..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하다가...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돈잃고 몸버리고(ㅡ.ㅡ///이건 아니던가...)
어쨌든.. 결국은 돌멩이 거둬내면서 밭고랑을 다시 갈면서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라고 외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두번째 사랑병이 도졌을땐 조금 다르다.
마치 자신이 프로페셔널한 애정행각의 경험자인듯 멋모르고 덤비게 된다. 뭔가 잘 되어 가는 것 같기도 하다.
즐겁다.
그러나 대책 없이 시작된 사랑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나와 다른 성향의 무언가가... 나와 다른 환경의 무언가의 침투로 인하여 조금씩 어딘가가 무너져 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럴때 어설픈 전문가는 어떻게든 초기화 되는 것만큼은 안해보려고 가진 노력을 한다.
일명 개노가다...
새로 바이러스 검색을 하고 치료를 하고 패치를 설치한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숨어 있는 바이러스가 나타나면 또 치료하고 또 전체 검사한판 때려 준다음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래도 어딘가 석연치가 않다.
그때쯤 누군가 옆에서 이렇게 말한다.
"야.. 그렇게 고생하느니 그냥 포맷 해버려!!~~"
그러면 그 어설픈 전문가는 이렇게 말한다.
"안돼~~ 내가 어떻게 만든 시스템인데 이걸 포맷해.. 이제와서 포맷하면 또 언제 다시 시스템깔고 복사하고 설치하고.. 그 복잡한 과정을 또 다시하란 말야?
난 못해.. 안해.. 그리구 다 지우구 정상으로 돌려 놀 수 있어.. 나는 원리를 좀 알거든.. 갠차나 이렇게 하면 될꺼야"
하하하..
그렇게 해서 바이러스가 치료되고 뭔가 문제가 아무문제 없이 깔끔하게 마무리 되면 그것처럼 해피한 결말이 어디있겠는가...
그러나 어딘가 남아 있는 어둠의 그림자는 조금의 습기만으로도 순식간에 늪 전체를 썩은 물웅덩이로 변화시키고 만다. 결국 시스템은 데이타 복구를 할 수 있는 기회마저도 상실한채... 초기화되는 지경에 이른다.
그리하여 사랑은 끝이 나고
다시금 게임오버...
리셋하고 다시 시작한다.
이제 몇번의 경험을 했다...
하하하...
내가 컴퓨터를 만지기 시작한 것이 10년쯤 됐다.
처음 드라이버를 들고 컴퓨터 뚜껑을 열어서 하드디스크와 메모리의 실체를 확인 했던 10년전에 비하면
지금은 어찌나 여유로운 베테랑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도 잘 모르겠는 것들 투성이다.
처음에는 다 아는 것 같았다.
하드디스크와 씨피유와 메모리.. 등등을 알면
조립하고. 설치하고 바이러스 치료하면 그만인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외에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커다른 씨피유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는
수십만개의 칩들...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하고
그 칩들의 역할이 모두 다를지도 모르겠구나 하느 생각을 하는 순간 내가 아는게 하나도 없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알 수 없는 것을 가지고 시간을 낭비하느니
이젠 깨끗이 날려 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음을 깨닫는다.
다시 시작해야 하는 두려움...
지금까지 경험을 바탕으로 차분히 시작하면 된다.
서둘지 말고 대충 넘어가지도 말고
정석에서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자신감만 있으면 된다.
지금까지 쌓아온 데이타가 날아갈지도 모르는
두려움...??
그것도 참 어리석은 미련이다.
솔직해 내 하드 디스크에는 10년이 지나도
다시 꺼내보지 않을법한 자료가 더 많다.
그래도 지워지는게 아까워서 전전긍긍하게 된다.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쿨해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다시 쓰지도 않을 것들이다.
버리고 새로 시작하는 것... 한번쯤 해볼만한 일이다.
해보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것도 알게 된다.
다시 시작하는 것...
도대체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이 이유가 뭔지도
모를때가 있다.
그럴땐 정말 다시 시작한다는 것 자체가 막막하기도 하다.
그렇다고 시스템 한구석이 조금씩 무너져 가고 있는
집안에 웅크리고 있어봤자 어느날 무너진 담벼락과
뻥뚫린 천장에 동그마니 남아 있는 초라한
자신을 발견 할 뿐일 것이다.
데이타를 복구 할 수도 없는...
어쩌면 조금 일찍 포기했더라면
데이타정도는 살릴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미련을 떨고 버티다가 결국
상처투성이의 패잔병이 되는 것이다.
생명체가 자기를 복제하기 위해서는 DNA와 RNA가 모두 필요하다고한다.
그런데 바이러스는 이 둘 중 한 가지만을 가지고 있다는군
이러한 까닭에 광합성이나 혹은 먹잇감, 숙주 등으로부터 영양만 얻어내면 스스로 번식이 가능한 다른 동식물, 미생물과 달리 그 자체로서는 복제를 못하는 것이다.
때문에 복제를 할 때에는 숙주의 세포 속에 비집고 들어가 그 안에서 자신을 복제한 뒤에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바이러스란 꼭 숙주의 세포가 있어야 증식이 가능 한 것이다.
한마디로 처음부터 뭔가를 파괴할 목적으로 숙주안에 들어 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살기위해 숙주를 찾아 들어가는 것 뿐이며
단지 어리석은 숙주일경우...
숙주는 그들에게 무방비상태로 있다가 생명을 잠식당하고 존재가 변형되게 된다.
나를 지키는 것...
바이러스로 부터 나를 지키는 것은 나의 자존심을
지키고 나의 정체성을 올곧게 세우는 것에서 부터 시작한다.
바이러스를 막기위해 무균실에 숨어 살수 없듯이 시스템을 지키기 위해 인터넷을 끊어 낼 순 없다.
그리고 사랑도...
어느날 갑자기 쳐들어온 사랑을 어쩔 것이냐...
그저... 그 사랑이 변질되는 순간에도 내가 무너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사랑은 늘, 언제나... 죽을때까지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삶의 비타민이다.
두려워하지 말고 시작해야 할 것...
그러나 변함없이 두려운 녀석이다.
아..... 바이러스 검사하는 동안 이 길고 긴글을 써야 하는 나도 나지만...
이 길고 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끝나지 않았다는...
나는 오늘 집에 들어 갈 수 있을까...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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