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통로봇의 노래

구두닦이의 허접한 인생살이

영혼기병깡통로봇 2002. 6. 27. 16:25
요즘 신입 사원 면접을 보면서 많은 것을 생각한다.
면접을 많이 보기도 했고 보러 다니기도 했다.

사람을 만나면 만날 수록 내가 하는 질문에 대해 저사람이 어떤 대답을 할지.. 대충 짐작할 수 있게 되곤 한다. 그의 눈을 보면 그가 어떤 갈등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그러한 몇가지 경험들은 또 다른 경험의 밑거름이 되어주기도 한다. 기특하게도...
누군가 나에게 무슨 질문을 할때 그 질문의 요지를 파악하게 되는 것이 그 하나..
그래... 나도 저런 질문을 할때 이런 생각을 했었지.. 짜식 웃기는군.. 그래 니가 그게 알고 싶다 이거지... 니 혼을 쏙 빼주마...
하하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의 생각을 엿보게 될때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특히나 나의 현재 위치에 대한 고민을 털어 내는 방법의 하나로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 가야 하는가에 관한 몇가지 원칙들을 세우곤 한다.

첫째... 끈기와 집착의 경계선상에서 벗어나자.

둘째... 솔직해지자.

셋째... 좀더 미쳐야겠다.

넷째... 사람에게 관대하자.

다섯째... 정석을 무시하지 말자 .

대충 그런 것들이다.

첫째는...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과 앞으로 노력해도 가질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묘한 집착의 끈을 놓고 다른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밥을 벌어 먹는 방법으로 일찌기 구두닦이를 시작했다고 하자.
나름대로 배운 것도 없고... 아는 것도 없지만 돌아 다니면서 본 눈대중으로 구두를 광내는 방법을 터득했다.. 아주 최고의 구두닦이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배운 거 없는 처지치고는 꽤 잘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날, 구두닦는 방법을 가르치는 학교가 생기고... 학교에서 이론과 실습을 제대로 배우고 온 젊디 젊은 것이 자본과 기술을 가지고 나의 허름한 깡통좌판 바로 옆에 시청에서 허가 받은 콘테이너를 설치 하는 것이다.
거기다 설상 가상 그는 어리고 이쁜데다 성격두 좋고, 젊은이 특유의 톡톡튀는 감각마저 있다.
하하하...

그럴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내가 힘겹게 시작하여 넓혀온 시장에 신흥세력들이 들어섰다면 난 치고 빠져야될 시기를 제대로 알아야 하는 것이다. 어설픈 기술이 먹혔던 초창기에서.. 이제 중흥기에 접어들었으니 힘없는 퇴물이 되기전에 말이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가장 결정적인 순간은 나이 어린 지원자들이 정말 가슴 떨리고 두려울 정도의 포트폴리오를 가져왔을때가 아니다. 그것은 나이많고 경력 많은 지원자가 너무나 허접하고 낡은 취향의 포트폴리오를 가져왔을때이다.

둘째, 솔직해지자.
나 자신에 대해 솔직해 져야 한다는 걸 느낀다. 그들의 목소리가 떨릴때.. 아, 자신이 없구나...라고 느끼게 된다.
내가 3-4년 전에 내가 하는 일에 가장 보람을 느끼고 밤을 새워 일을 하고도 무기력해지지 않을 만큼 자신감이 있었을때 나의 목소리는 늘 맑고 또랑또랑했던 것 같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안으로 씹어먹지도 않았다.

간혹 질문에 대한 답을 혼자 머리속으로만 생각하고 밖으로 내놓지 못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머리속에 무지하게 많은 생각들이 흘러가는 것이 보이는 듯하다.
나에게 솔직하다는 것은 객관적으로 판단해서 나의 실력과 능력에 대해 폄하 하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인정할거 인정하고.. 내것이 아닌 것은 과감히 버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가진 유니크한 능력에 대해 자부심을 갖는 것!
그 시작점이 스스로 솔직해 지는 것이다.

셋째, 좀더 미쳐야 겠다.
그래... 좀더 미쳐야겠다고 생각한다.
의욕적으로 일하고 싶어 하는 젊은 사람은 너무도 많다. 그들은 앞으로 1년정도만 갈고 닦으면 다음세기의 리더가 되리라.
매너리즘에 빠져서... 혹은 나이먹은 여자의 히스테리에서 오는 무기력한 증세 때문에... 이도 저도 못할 좌절들로 새가슴이 되어 가는 날 보며 그래.. 늙었구나.. 한다.
좀더 미쳐보자.. 누가 뭐래든... 미쳐보자.
미쳐야 겠다는 생각이 좌절 되는 순간들을 나열해보면...

친구 - 그러니까 니가 남자가 없지
직장동료 - 술먹었어?
부모님 - 엄마 틀니 다시 해야 되는데...
사장님 - 그냥 결혼이나해
점쟁이 - 평생 10원 벌면 100원 나갈 팔자야..

그것보다 사실은 미쳐서 날뛰었는데 아무결과 없을때다... 정말 진심으로 반성하게 된다.
제대로 미치긴 한거야..? 미친게 아니라 병신인게 아닐까?


넷째, 사람에게 관대해지자.

내가 좀 나쁘다는 생각은 든다.
기껏 포트폴리오 들고와서 열변을 토하는 지원자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묻는다.
본인의 작업물이 어느정도 점수 인거 같으세요...
연봉은 어느정도 원하세요
본인에게 적당하다고 생각하세요
5년 후에 뭐하고 있을 것 같으세요..
이걸로 밥벌어 먹을 수 있을 거 같으세요
어떤 노력을 해보실건가요
클라이언트의 의견을 무조건 수용해야 될때 본인의 작업물은 쓰레기가 될때도 있습니다. 어떻게 대처하실꺼에요

나 자신에게 묻는 질문들이 대부분이다.
구두를 닦으면서 또는 뒷굽이라도 갈라치면 내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신기를 발휘해서 구두에
해와 달을 띄웠다 해도 손님은 화가 날때가 있다.

그냥 그런 생각을 하면서 묻는 실없는 소리들이다.
쓸데 없이 코너로 몰아놓고 나자신에게 들이 대야할 칼날을 사람에게 들이 댄다.

뾰족구두를 신은 사람도 있고 둥근 구두를 신은 사람도 있고 낡고 더러운 구두를 신주단지처럼 싸안고 사는 사람도 있다.
매일매일 새로운 구두로 갈아 신고도 매일 광을 내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다.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노력... 그걸 해야 할 때인 것 같다.

다섯째, 정석을 무시하지 말자.

어쩌면 내 인생의 모든 것이 흐트러지는 말이며 인생의 기초를 파헤쳐서 새로 쓰지 않고서는 도달하지 못할 질문일 것이다.

내가 구두닦이를 시작하고자 했을 때 나의 구두닦이에 대한 생각은 그저 닦으면 되지 였다.
모서리부터 닦아야 한다거나 바닥부터 닦아야 한다거나 하는 원칙을 세울 수도 없었고 나에게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었다. 배울만한 여유도 없었다.
지금 나는 수십가지 광을 내는 기술을 배웠더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가장 많이 절실할때가 언제인고 하니...
수십가지의 구두굽을 가는 기술중에 미쳐 익히지 못한 기술이 사람들에게 각광 받으면서 온갖 구두들이 새로운 콘테이너 부스로 몰려들때
내가 하는 짓이라고는 누군가 어설프게 패러디하여 옮겨 놓은 해적판 기술을 그대로 카피하거나 심지어는 만들어진 구두굽을 가져다 놓고
마치 나의 기술인듯이 팔아 먹을 때... 그럴때 아... 난 왜 내 인생의 적당한 시기에 원칙을 만드는 중요한 일을 하지 않았을까 반성하고 또 반성한다.

하지만 뭐 나도 그때는 그렇게라도 살아야 했으니.. 하고 스스로 위안하고 넘어갈때가 훨씬훨씬 많다.



인생은 예견하지 못한 순간에 급회전을 한다.
원칙은 원칙일 뿐일지도 모르지만... 그 원칙은 인생의 급물살에 휩쓸릴때 내가 서는 기준이 되어 줄지도 모른다.

또 면접을 보러 온 여인이 있다.
학번은 같지만 나보다 한살이 많다. 흐흐.. 내가 영재교육을 점 받아서...학교를 일찍 들어간 관계로...
무척이나 시리어스한 여인이다.
난 또 같은 질문을 할 것이다.
그리고 저여인은 아마도...
무척 많이 질문하고 자기의 생각을 정확이 말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서른 즈음의 사회에서 몬가를 이루고자 발악하는 여인네들의 특징일테니..

역시..그녀는 날 보자 마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이러케 말한다.


죄송하지만 제가 여기까지 오느라 좀 힘들어서.. 물한잔 주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