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통로봇의 노래

어디서 거지같은게...

영혼기병깡통로봇 2005. 5. 6. 13:01

일주일 내내 눈에 쌍커플이 사라지지 않던 4월이었다.
죽고 싶을만큼 피곤한게 이런 건줄 몰랐다.

이전의 피곤한 경험이란건
그저 졸리운거였구나.. 라고 생각될만큼
온몸으로 "피곤"을 느끼던,
그래서 난생처음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구나란 사실이,

쌓이는 나이만큼 무겁게 마음을 짓누르던

 

잔인한 봄이었다.

이대로는 비현실적인 인생설계는 커녕
늪에 빠져 정신도 마음도 황폐해질 것 같아
학원은 다음학기로 미루고 휴학을 신청했다.

서류 뭉치를 싸들고 집으로 오는 길..
그냥 갑자기 마트에 가서 먹을거라도 사들고
가고 싶었다.

카트를 들고 올라가는 길
2층 플로어가 눈에 보이고
무빙트레이에서 내려서야 하는 찰나
내 눈 앞에 카트 몇대가 엉켜 있었고
난 내려서지도 움직이지도 못하게 막힌 상황이었다.

그때 등뒤에서 앙칼진 목소리그 들렸다.

"아줌마!"

잠시후 카트가 사라지고 나도 카트를
옆으로 밀고 겨우 상황 정리 되자
뒤에서 앙칼진 소리로 날 부르던 여인은
카트에 서너살 가량의 아이를 태운채
나를 위아래로 째려보면서

'어딜 멍청하게' 서있느냐고 소리를 질렀다.

당황스러워 잠시 말을 못하던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같이 소리 지른다.

"아줌마 나도 내앞에 카트가 서있어서 그런건데
갑자기 그렇게 소리를 지르면 어떻게 해요"

"미안하면 미안하다고 할것이지 뭘 잘했다고
큰소리야"

상황은 점점 웃기게 돌아가고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내가 미안해해야 할 상황도 아닐 뿐더러
그냥 좋게 넘어가자고 미안하다고 한마디 인간적으로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어차피 도의적으로라도 미안하다는 말을 하진 않을 거였다.
그러니 더더욱
강요에 의해서 할 필요는 없는 상황이라고 하면 나도 똑같은 인간인건가..
그래도 상관 없었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소리를 지르고 지랄이야~

그 여자는 갑자기 아줌마 특유의 들이밀기작전을
펴기 시작했다.
내얼굴앞으로 얼굴을 들이밀더니 두눈 똥그랗게 뜨고
소리를 버럭버럭 질러대기 시작한다.
뽀뽀하러 오는 줄 알았다.
아줌마들은 그렇게 얼굴을 들이미는게 상당히
위협적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가까이 오길래 가만히 서서
똑같이 소리를 질러 주었다.
아줌마와 똑같이..
나도 아줌마인것처럼...

분한 것 만큼은 일평생 참지 말고 살자라고
다짐한 사람처럼 사력을 다해 소리지르고 싶었다.
마치 스트레스를 풀어 준다는 소리지르기 방이나
접시던지기방에 온것처럼...
기회는 이때다 싶은 심정으로...

그때 그녀의 남편이 그녀를 데리고 가려 하고 있었다.
그만해.. 그만해..
하면서..

데리고 가는 남편..
그때 뒤돌아서 나를 훓어보며 내뱉은 한마디는

"어디서... 거지같은게"

였다..

어디서 거지같은게...

그 한마디로

초사이언체로 돌변하며

전투력 2만을 돌파하려던 나의 에네르기파가

일시에 홑바지 사이로 방귀새듯 새나가고

다리에 힘이 쭉, 풀려버렸다.


그랬다.
나도 알고 있다.
내가 거지 같은것 쯤은 나도 알고 있다.

그렇다고
마트에서 만난 어떤 정신나간 여인의 남편에게서
듣고 싶지는 않은 진실이었다.

분하고 속상해서 잠이 안올것만 같았는데
너무 피곤하니 잠도 잘온다.
그것도 억울하다.

울다 잠들고 보니
다음날은 아무렇지 않게 잊혀지기도 한다.

역시 정신건강에는
몸을 혹사시키는 것 말고는 약이 없다.

그리고 혼자 외치는 나의
마음속 비명이란 것이..

"남편있으면 다야..."

나도 누가 옆에 있었으면 그렇게 당하진
않았을거라는데로 생각이 뻗어 가는 거였다.
노처녀 히스테리의 시작이란건
고작 이런 사소한 일에서 부터
시작하는 일인거였다.

모르겠다.
내가 정말 거지 같은 인간이란 걸
그자식은 어떻게 알았을까...

애아빠가 되거나 여인의 남편이 되면
그냥 알게 되는 건가..